‘기독교인=사형’인데···아프간 출신 남성이 총대신 든 이것

최기영 2024. 4. 2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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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활 17년차, 아프간 출신 작가 데이비드 하니프가 그리는 ‘희망’
“평화 깃든 고향 땅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싶어”
아프가니스탄 출신 화가로 활동 중인 데이비드 하니프 작가가 최근 서울 종로의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와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끊임없이 복음의 확장이 이뤄지고 있지만 동시대에 4억명 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란 이유로 박해 받는 땅에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기독교인=사형’이 당연한 공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아프가니스탄은 매년 발표되는 기독교 박해 지수 ‘월드워치리스트’ 최상단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영적으로 척박하기만한 이 땅에서 나고 자란 한 작가는 고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캔버스에 수놓는 꿈을 품고 있다. 올해로 한국 생활 17년차, 데이비드 하니프(40) 작가 이야기다.

최근 서울 종로의 한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능숙한 한국어로 “붓이 아니라 메스를 드는 게 꿈이었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가 전한 유년 시절의 단상을 들으며 그 꿈이 단순히 사회적 성공과 명성을 좆는 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제 나이는 두 개입니다. 1978년에 태어났지만 1984년에 출생 신고가 됐기 때문이죠. 하루에도 수많은 아이들이 전쟁과 질병으로 생명을 잃습니다. 태어난 연도가 달라도 부모가 몇 년 지나 살아있는 아이들을 같은 날 등록하기 때문에 실제 나이가 다른데도 기록상으론 쌍둥이 세쌍둥이로 사는 이들도 많죠. 사람이 다치고 아프고 힘들면 의사가 먼저 떠오릅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간호학과도 졸업했는데 병원이 아니라 작업실에서 그림으로 희망을 전하고 있네요(웃음).”

데이비드 하니프 작가의 작품 '아프가니스탄'


하니프 작가는 6개 국어에 능통할 만큼 언어구사력에도 재능이 있다. 한국인 아내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교육 의료 활동을 펼치던 한국NGO로부터 통역 업무를 요청받으면서부터다. 당시 한국인 직원과 현지인 조력자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이다. 이듬 해 아내와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도 가족들은 격하게 반대했다.

“당시 아프간 사람들에게 외국이란 미국이나 유럽 나라를 뜻했어요. 삼성 LG가 일본 기업이고, 현대자동차 엠블럼을 보고 일본의 혼다와 같은 기업으로 알았을 정도였죠. 지도에서 한국이란 나라를 찾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아시아의 오지 마을로 가족을 보내는 거라 생각했던 겁니다. 한국에 와보니 정말 신세계였어요. 그중에서도 교회를 마음껏 갈 수 있다는 게 좋았죠.”

예배 중 실시간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회가 적었던 2008년, 아내와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를 드리면서 하니프 작가는 한국어 능력과 영성을 함께 쌓아올렸다. 그리고 1년 뒤, 삶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순간을 맞았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쓸 그림 교재를 만들어볼 요량으로 미술학원에 등록한 것이다.

학원에서 붓을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다.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운 지 3개월여 만에 공모전에 입선한 하니프 작가는 선생님의 권유로 기독교 미술대전에 출품하며 2014년부터 6년 연속 입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지난해엔 대중성 짙은 한국현대미술아트페어에도 참가하는 등 12차례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데이비드 하니프 작가의 풍선 시리즈 '호프(Hope)'


전시회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시선이 멈추게 하는 작품은 단연 ‘풍선 시리즈’로 불리는 ‘호프(Hope)’다. 거기엔 아프가니스탄의 아픈 현실과 놓치지 말아야 할 희망이 담겨 있다. 유년시절 내전으로 인해 고국을 떠나 파키스탄에서 10년여를 난민으로 살아야 했던 그는 당시 피난처에서 사역하던 기독교 NGO 단원들에게 사탕과 풍선을 받았던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니프 작가는 “지금도 가족들과 통화하다보면 전시 상황 때문에 총성이나 폭발음이 들리기도 한다”고 했다. 여성이란 이유로 여전히 외출, 교육, 운동으로부터 소외돼 있는 현실도 들려줬다. 조국의 끝모를 전쟁 상황, 총대신 붓을 든 채 살고 있는 그는 “내게 희망의 상징이었던 풍선이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 ‘생명의 물’엔 메마른 사막 한 편, 단 하나뿐인 우물에서 물을 긷는 남자가 담겨 있다. 그는 고향의 속담 하나를 들려줬다. “아랍어 속담에 ‘사막에서 물을 찾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지 않는 것은 죄’란 말이 있어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곧 ‘생명의 물’이죠. 이 진리를 알고도 알리지 않는 건 죄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알려줘야죠. 물이 없는 세상은 곧 죽음뿐일 테니까요.”

하니프 작가는 한국미술인선교회(회장 신혜정) 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총무를 지낸 그는 최근엔 미디어 부장을 맡으며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하고 토크쇼 영상을 담당하기도 한다. 지난해엔 크리스천 작가들과 몽골 선교를 떠나 학교와 마을에 벽화를 그리고 왔다.

그의 작업실 한 편엔 자신이 살던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향한 그리움이 묻어난 작품들이 놓여 있었다. 나귀에 앉아 아프가니스탄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진 작품도 그중 하나다. 작품 ‘마이 시티(my city)’엔 언덕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가 소망하는 미래가 오롯이 담긴 작품이다.

“고향의 힌두코시 산, 평화롭게 흐르는 카불 강, 파괴되거나 총탄의 흔적 없이 아름답게 지어진 집과 예쁜 골목들. 이런 모습이 온전하게 자유를 누리는 아프가니스탄의 미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마을에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학교 복도에 희망이 가득 차 있는 제 작품들이 걸린다면 아이들에게도 희망과 복음이 깃들지 않을까요(웃음).”

글·사진=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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