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대법원 ‘낙태권 2라운드’…女대법관 4명, 금지법에 맹공

김형구 2024. 4. 2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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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 대법원에서 아이다호주의 낙태금지법과 연방 법인 응급의료법의 충돌 문제에 대한 심리가 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낙태 이슈가 11월 미국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된 가운데, 미 연방 대법원이 24일(현지시간) 긴급 낙태시술의 허용 범위를 놓고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갔다. 앞서 지난 2022년 여성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하고 낙태권 존폐 결정을 각 주의 결정으로 넘겼던 연방 대법원에서 낙태권 논쟁이 재점화하고 있다.

아이다호주는 극도로 예외적인 경우만 빼고 임신 중 낙태를 금지하는 미국 내 14개 주 가운데 하나다. 2년 전 연방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후 자체적인 낙태 금지법을 만들어 시행해 왔다. 성폭행과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이거나 임신부 목숨이 위험한 상황일 때를 제외하곤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임신부의 건강 위험을 이유로 한 낙태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기고 낙태 시술을 하는 의료인은 최대 5년의 징역형 등 형사 처벌을 받거나 의사 면허가 상실될 수 있다.


‘낙태 엄격금지’ 州 법vs연방 응급의료법 충돌


미국 법무부는 이 법이 연방법인 응급의료법(EMTALA)과 충돌한다며 시행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응급의료법은 임신부 생명이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경우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연방 법이 주가 제정한 법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아이다호주는 연방 정부의 방침에 따를 경우 응급 상황을 이유로 한 낙태가 너무 과하게 허용될 것이라고 맞서면서 양측 간 다툼은 연방 대법원의 판단에 맡겨지게 됐다.
여성 낙태권을 지지하는 단체 소속 시위대가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 대법원 앞에서 ‘낙태는 생명을 구한다’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심리에서 연방 대법관들의 의견은 갈렸다. 다만 이념 성향과는 무관하게 여성 대법관들은 아이다호주 낙태금지법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을 비롯한 4명의 여성 대법관은 아이다호주의 낙태금지법이 연방 응급의료법보다 우선한다는 아이다호주 측 주장에 누구보다 맹공을 퍼부었다”고 보도했다.


진보 블록 셋에 보수 성향 배럿 대법관 가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중 지명된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명한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등 진보 블록 여성 대법관들은 낙태를 하지 않으면 합병증 등 추후 심각한 건강 문제를 겪을 수 있는 임신부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응급의료법 우선론’에 힘을 싣는 모습을 보였다. 케이건 대법관은 아이다호주 법무장관를 대행한 조슈아 터너 변호사에게 “연방 법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낙태 시술 허용 범위가) 임신부 사망 직전까지 기다려야 할 필요는 없다”면서 “여성이 생식기관을 잃게 된다면 병원 측에서 환자를 안정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임신 16주에 양수가 터져 응급실로 간 플로리다주 한 여성 사례를 들며 아이다호주 법이 의사가 환자 생명의 위험 여부를 선의로 판단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터너 변호사 측 반박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배럿 대법관은 응급 상황에서 의사가 (낙태 시술과 관련해) 얼마나 재량권을 갖고 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수차례 던졌다고 한다. 터너 변호사는 “법률에 따라 사안별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했지만 배럿 대법관은 “그가 위험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더힐은 전했다.

다만 더힐은 “배럿이 예리한 질문을 했지만 그가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지 그대로 대변하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연방 정부(법무부)가 승소하기 위해선 전체 9명의 연방 대법관 중 과반인 5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진보 성향 대법관 3명 외에 최소한 나머지 대법관 2명의 동의가 더 필요하다.

낙태 반대 단체 회원들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 대법원 앞에서 ‘낙태는 여성을 배신한다’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심리에서 연방 정부를 대표해 나온 엘리자베스 프릴로거 법무부 송무차관은 “아이다호주가 하는 일은 임신부 건강을 악화시켜 태아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평생의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대법원 인근 낙태 찬반 집회 세 대결


재판이 열린 연방 대법원 주변에서는 낙태 찬반 단체의 집회가 각각 열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임신 17주에 양수가 터졌지만 미주리와 캔자스에서 낙태를 거부당했다는 밀리사 파머(43)는 응급의료법 지지론을 폈다. 그는 “제가 겪은 일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반면 낙태 반대 단체 소속 10여명은 ‘낙태는 여성을 배신한다’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낙태 반대 단체 설립자인 베서니 얀젠(30)은 “연방 법인 응급의료법은 병원과 응급실을 낙태 클리닉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미 애리조나주 하원은 1864년 제정된 낙태 전면금지법을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주 상원으로 보냈다. 앞서 애리조나주 대법원은 지난 9일 임신부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를 빼고는 성폭행·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에도 낙태를 금지한 1864년 주법을 다시 시행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날 하원을 통과한 낙태 전면금지법안이 상원을 통과한 뒤 민주당 소속 케이티 홉스 주지사가 서명하면 해당 법 대신 2022년 제정돼 시행중인 ‘임신 15주 이후 낙태 금지법’이 유지되게 된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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