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도 내고 장학사업까지…600살 '땅부자 소나무' 아시나요

김정석 2024. 4. 2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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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석송령 개방 행사를 찾은 탐방객이 석송령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예천군

소백산 자락에 있는 경북 예천군 감천면 석평마을. 마을 입구에는 언뜻 보기에도 영험(靈驗)해 보이는 고목이 있다. 외딴 마을을 전국에 알리는 데도 한몫한 이 나무는 수령 600년이 넘은 석송령(천연기념물 제294호)이다.
석송령은 높이가 10m, 둘레가 4.2m로 어른 3명이 팔을 뻗어야 겨우 안을 수 있을 만큼 크다. 위로 자라지 않고 우산을 펼쳐놓은 것처럼 옆으로 자라, 가지 길이가 남북으로 22m, 동서로 32m 넓게 퍼져 있다. 사방으로 퍼진 가지가 만들어내는 나무 그늘만 면적이 1000㎡에 달한다.


마을 지키는 고목…나무 그늘만 1000㎡


주민 사이에서는 600여년 전 홍수가 났을 때 마을 앞 냇가로 떠내려온 소나무를 주민들이 건져 지금 위치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나무 크기보다 더 관심이 쏠리는 것은 석송령이 매년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나무가 가진 토지가 상당해서다. 1999년에 납부한 종합토지세 등 세금은 6200원 정도였는데, 이후 공시지가가 올라 지난해엔 16만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지난 13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석송령 개방 행사를 찾은 탐방객들이 석송령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예천군

석송령이 ‘땅부자’가 된 이야기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석송령보존회 등에 따르면 1920년대 이 마을에 이수목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자식이 없어 죽기 전 자신의 토지를 이 나무에 바치고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으로 등기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에 따라 1927년 예천군 토지대장에 등기, 석송령이 땅 주인이 됐다. 석송령이 상속받은 땅은 대지가 3937㎡이고 전답이 5087㎡이다.


임대 소득으로 세금 내고 장학사업까지


석송령이 소유한 땅에는 보건진료소·마을회관·노인회관·공동화장실 등 건물도 몇 채 세워져 있다. 매달 여기서 나오는 임대 소득을 차곡차곡 저축하고 있다. 매년 임대료 등으로 벌어들인 돈은 세금을 내고, 남는 돈은 장학사업 등에 사용한다. 마을에서는 석송령보존회를 만들어 석송령 이름으로 장학금을 조성해 학생을 후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예천군은 이달부터 오는 6월까지 석송령 한시 개방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기존에는 울타리 바깥에서 석송령을 눈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석송령을 가까이서 보고 직접 만져보며 문화유산과 소통할 수 있는 ‘양방향 관람’ 기회를 위해 매달 둘째 주 토·일요일 개방 행사를 연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제294호 석송령. 사진 예천군

지난 13~14일 이틀간 진행된 개방 행사에도 예천군 주민 600여 명과 전국 각지에서 온 탐방객 400여 명이 석송령을 찾았다. 이들은 석송령 나무 둥치를 껴안으며 사진을 찍고 추억을 만들었다.

하미숙 예천군 문화관광과장은 “예천군민과 탐방객이 예상보다 많이 몰려 놀랐다"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규제 중심의 문화유산 정책에서 벗어나 군민과 함께하는 친근한 문화유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예천=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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