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정상 봉우리 사이 옹배기 형상 습지… ‘생태계의 보고’
전남 신안군 흑산면 장도(長島)는 두 개의 섬이 길게 뻗어 있어서 이름을 얻었다. 흑산도에서 장도를 바라보면 영락없는 장도(長刀)의 모습이 연상된다. 대장도는 긴 칼의 손자루 모양을 하고, 소장도의 능선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보인다. 큰 섬 대장도와 작은 섬 소장도는 하루 두 번 간조 때가 되면 바닷물이 빠지면서 연결된다. 과거 두 가구가 살던 소장도는 현재 무인도다.
장도를 유명하게 한 것은 습지다. 흑산도에서 바라보면 대장도는 그저 평범한 산으로만 보인다. 그 산의 정상(273m) 인근에 넓은 고산(高山)습지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다. 2003년 조류보호협회 회원들이 대장도에서 고산습지를 발견해 세상에 알렸다. 국내 최초로 섬에서 발견된 산지습지였다. 2004년 환경부가 습지 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경남 창녕 우포늪, 강원도 인제 대왕산 용늪에 이어 2005년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세계적으로는 1423번째 등록된 람사르 습지다.
장도 선착장에 내리면 주황색 지붕을 한 마을이 반긴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섬이어서 민박이나 식당, 가게도 없다. 섬마을 중턱에 1955년 개교한 장도분교도 폐교됐다.
습지는 장도마을 사람들이 ‘뒷산’이라고 부르는 곳에 있다. 뒷산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오르는 길이 급경사다. 마을 골목길의 왼쪽으로 접어들어 잠시 오르면 목재데크길이 시작된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꽤 가파른 탐방로를 따라 오르면 오른쪽으로 소장도의 기다란 능선이 웅장하게 보이고, 장도리의 아름다운 마을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30여분 지나면 목재데크길은 부드러운 돌길로 이어진다.
숨을 헐떡이며 깔딱 고개를 넘어서면 정자가 반긴다. 이곳에서부터 신우대·조릿대 숲길이 시작된다. 사람 키를 넘는 대나무는 신우대이고 키가 무릎 근처에 오는 대나무가 조릿대다. 신우대는 옛날에 화살을 만드는 데 썼다. 산죽(山竹)이라 부르는 조릿대로는 소쿠리를 만들었다.
대숲을 지나면 광활한 습지가 펼쳐진다. 정상 인근 양쪽 봉우리 사이에 옹배기처럼 파인 곳에 9만414㎡ 규모의 습지가 자리한다. 정상은 오목하고 하류부는 계곡이다. 한쪽이 터진 화산 분화구처럼 보인다.
산 정상에 습지가 형성된 것은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다. 화강암, 이탄층(泥炭層), 해무(海霧)가 3대 공신이다. 습지는 화강암, 주위를 둘러싼 산지는 단단한 규암이다. 화강암이 규암보다 빨리 침식해 중앙부가 오목한 모양을 만들었다. 주위 규암에서 침식된 모래 등이 빗물에 쓸려 내려 습지를 형성했다. 빗물은 대부분 모래입자와 점토의 함유율이 많은 사질(沙質) 토양에 침투한다.
산정에는 물을 흡수 보존하는 이탄층이 존재한다. 이탄층은 식물이 죽은 후 썩지 않고 수백 년 동안 쌓여 형성된 지층이다. 저수지와 수질 정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동물들에게 서식지를 제공한다. 이탄층 위 풀밭을 밟으면 스폰지처럼 물이 스며 나온다.
장도습지에 수분을 일정하게 공급하는 데는 해무도 큰 몫을 한다. 한국 서남부를 통과하는 난류의 길목에 위치해 1년 내내 남쪽에서 바람이 지나가고 안개는 산 정상에 머무른다. 해무는 수분 공급과 동시에 습지 수분의 증발을 억제해 주는 역할도 한다.
습지에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물이 흐른다. 과거 대장도 주민들이 식수로 이용하던 집수정(集水井)이 남아 있다. 습지 한가운데 솟아나는 용천수에 파이프를 연결해 마을까지 끌어와 식수로 사용했다. 이후 환경부가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면서 골짜기 물이 바다로 빠지는 짝지기미에 저수지를 만들어줘 식수로 쓰고 있다.
습지는 생태계의 보고(寶庫)다. 돌멩이를 들추면 1급수 지표종인 가재가 나온다. 가재는 달팽이, 유충, 벌레, 올챙이를 먹고 산다. 천연기념물인 매와 수달, 흑비둘기, 솔개, 조롱이 등 다양한 날짐승·들짐승이 살고 있다. 식물 294종, 조류 94종, 포유류 7종 등 500여 종이 분포한다. 멸종위기종인 흰꼬리수리와 흑산도비비추, 참달팽이 등이 서식하고 미나리, 천남성, 엉겅퀴, 억새, 구슬잣밤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찔레, 산딸기 등이 자라는 자연 식물원이다.
장도습지에는 10마지기가량의 논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보리와 고구마로 연명할 때 유일하게 쌀농사를 짓던 곳이다. 논농사를 그만두자 습지는 소 방목장이 됐다고 한다.
현재 장도습지 내부는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출입이 통제된다. 공공·교육 등의 목적으로 국립공원의 협조를 얻어야 들어갈 수 있다. 마을에서 정자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 한다.
장도(신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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