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송전탑에 병드는 충남… 火電 발전 최다, 선로 지중화는 꼴찌

김성준 2024. 4. 25.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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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화율 1.4%, 서울은 92.2%
고압선 관통하는 서천 홍원마을
주민 37명 사망·35명 질환 호소
지중화 비용 한전·지자체 부담
충남 서천군 서면 홍원마을 중심부를 고압 송전선이 지나고 있다. 홍원마을 주민들은 1983년 400㎿급 서천화력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하며 들어선 고압 송전선로 때문에 건강과 재산상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충남 서천군 서면 홍원마을은 고압(154㎸) 송전선로가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마을이다. 주꾸미 낚시로 유명한 홍원항 바로 옆 마을로, 주민들은 수년째 송전선로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다. 비용 부담을 이유로 지중화가 미뤄지는 사이 인근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고압 전류는 매일 주민들 머리 위를 지나 다른 지역으로 향한다. 5개의 초고압송전탑이 들어서며 붕괴된 마을공동체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홍원마을 주민들은 1983년 400㎿급 서천화력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하며 들어선 고압 송전선로 때문에 건강과 재산상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2019년 ‘미세먼지·철탑·고압선 피해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1990년부터 현재까지 주민 450여명 가운데 37명이 폐암과 간암, 피부암, 췌장암, 뇌질환 등으로 숨졌다. 채종국 홍원마을 피해대책위 사무국장은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는 전자파를 2B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며 “홍원마을 송전선로에서 나오는 전자파 탓에 마을 주민들이 수십 년간 고통 받고 있다”고 말했다.

숨진 이들 외에도 현재 마을 주민 35명은 각종 암과 뇌질환, 심혈관질환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일가족이 투병 중인 경우도 있다. 홍원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운식(66)씨는 십수 년째 협심증을 앓고 있다. 10여년 전 수술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도 움직일 때마다 숨이 차고 식은땀이 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그의 가족 역시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딸 김안녕(40)씨는 2020년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열흘 만에 깨어났다. 아들 김흥수(41)씨도 지난해 심근경색으로 수술한 뒤 여전히 병원을 오가며 치료받고 있다. 고압 송전선로가 들어선 뒤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송전탑과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에 의한 주민 피해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충남도는 2021년 고압 송전선로 주변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송전선로와 특정 질병과의 인과 관계를 따지기 위한 역학조사에 나섰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지난해 중단했다.

기존 서천화력발전소가 폐쇄된 뒤 2021년 6월부터 기존 발전소보다 발전 용량이 2.5배가량 큰 신서천화력발전소(1000㎿급)가 가동되면서 건강 피해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서천뿐 아니라 화력발전소가 집중된 충남 당진과 태안, 보령 등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충남에는 고압 송전탑 4164개가 집중돼 있다. 전국의 10% 수준이다. 특히 765㎸ 초고압 송전선로는 11만6270m로, 전국의 21.1%(55만1849m)가 충남에 몰려 있다. 연간 발전량(2022년 1억781만㎿h)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충남에서 생산된 전기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 등 다른 지역으로 보내진다.

송전선로를 땅에 묻는 지중화가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충남지역 지중화 구간은 전국의 1.4%(1만9709m)에 불과하다. 반면 서울의 지중화율은 92.2%에 달한다.

홍원마을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마을을 관통하는 송전선로 1.2㎞ 구간에 대한 지중화다.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송전선로 지중화 사업 비용은 한전과 지자체가 50%씩 부담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한전과 발전소 운영사인 한국중부발전은 수년간 사업비 부담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한국중부발전 관계자는 “송전선로 지중화 비용은 피해 발생에 대한 원인 제공자가 부담해야 하는데 중부발전은 원인 제공자가 아니다”며 “발전소의 실질적인 소유권이 중부발전에 있다는 게 한전의 입장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한전과 합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전과 중부발전이 책임을 미루는 사이 2019년 190억원이었던 사업비는 원자재 상승 등의 원인으로 현재 240억원까지 치솟았다.

한전과 중부발전이 비용 부담에 대해 합의하더라도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지자체가 사업비의 절반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서천군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서천군 재정자립도는 충남 평균의 3분의 1수준으로 최하위권이다. 한 해 예산 규모도 6826억원으로 인천 옹진군과 강원 홍천군 등 비슷한 규모의 다른 지자체 평균 예산보다 520억원가량 적다.

지자체와 환경단체는 송전선로 지중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종식시키려면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화력발전소가 위치한 지역 대다수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열악한 지역이기 때문에 지중화 사업비용 50%를 부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천군 관계자는 “충남도에서 마련한 정의로운 전환 기금으로 사업비 25억원은 마련했지만 나머지 95억원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검토 중”이라며 “엄밀히 따지면 중앙정부도 책임이 있는데 지중화 비용 절반을 부담하라는 건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 입장에선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김정진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발전소가 몰려 있는 지역은 대부분 군소 지역이기 때문에 지중화 사업비를 감당할 수 없다”면서 “지중화가 필요한 지자체의 재정 수준을 파악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은 중앙정부가 사업비 일부를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에서도 지중화 사업비 일부를 국가가 부담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업비를 국가가 일부 부담하거나 한전이 더 많이 지원하도록 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천=글·사진 김성준 기자 ks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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