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품고 교육·의료 근대화 이끈 힘 ‘예수 사랑’

임보혁 2024. 4. 2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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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기독교 근대문화유산 답사] <중> 화해와 용서의 영성
전남 여수 ‘손양원 목사 유적공원’에 24일 조각상 ‘사랑과 용서’(김대길 작)가 전시돼 있다.


쪽빛 남해에 둘러싸인 전남 여수 ‘손양원 목사 유적공원’에는 안경을 쓴 남성이 10대 청년을 포옹하는 모양의 조각이 있다. ‘사랑과 용서’ 조각상이다. 안경을 쓴 이는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1902~1950) 목사다. 10대 청년은 손 목사의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다. 손 목사는 안재선을 양아들로 삼으며 그를 용서했고 평생 예수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순교했다.

국민일보는 24일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장종현 목사)과 함께 생전 손 목사가 기도하며 거닐었을 그 길을 함께 걸었다.

‘사랑과 용서’ 조각상에서 손 목사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켰던 애양원교회로 향하면 ‘고난의 길’이 나온다. 북한 인민군의 총살로 순교한 손 목사의 장례 행렬이 지나갔던 길이다.

이철(오른쪽) 기감 감독회장과 주형순 애양원역사박물관장이 24일 전남 여수 애양원교회 앞에서 환담하고 있다.


여정에 동행한 허은철 총신대 교수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손양원 목사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공산주의에 맞서다 죽음을 맞이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손 목사는 생명을 위협하는 일제와 공산주의자들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가족에게도 버림받았던 당시 한센인들을 죽음 직전까지 품었다. 꺾이지 않는 그의 신념은 앞서 호남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린 서양 선교사들의 헌신과 맥이 닿는다.

전남 목포 양동교회 1대 담임목사인 유진 벨(1868~1925) 선교사가 있다. 미 남장로교에서 파송된 그는 1897년 목포 개항과 맞물린 시점에 지금의 교회를 세웠다. 전남 지역 최초였던 교회는 개화기 기독교 선교의 전진기지였다. 1919년 4월 8일 일어난 목포 3·1만세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전날 찾은 양동교회는 1910년 준공된 서양 조적식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이 교회의 2대 담임인 WD 레이놀즈 선교사는 한글 성경 번역을 주도했고, 10대 담임인 박연세 목사는 일제에 맞서 신앙을 지키다 순교했다. 교회에는 이들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있다.

호남 지역 근대 기독교 역사는 순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벗하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교육의 길로 이끈 선교 유산도 있다. 전남 순천 매곡동 일대에 조성된 이른바 순천 매산등 선교마을이 대표적이다.

전남 순천에 전시 중인 휴 린튼 선교사가 타고 다닌 랜드로버 차량과 같은 모델.


1913년 미 남장로교 순천선교부는 이곳 난봉산자락, 조선 시대부터 죽은 아이들을 묻어온 버려진 땅 ‘풍장터’ 위에 교회 학교 병원을 세우고 소외된 이들을 품었다. 휴 린튼, RT 코잇, 조지 와츠, JF 프레스턴, JC 크레인 등 1986년까지 80여명의 선교사는 안력산병원, 매산학교, 애양원 재활직업보도소 등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지역의 교육과 의료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다섯 개 코스로 1.97㎞에 이르는 순례길을 따라 걸어보니 근대문화유산과 건물이 조화를 이룬 야외 박물관 느낌이 들었다. 선교사 가옥부터 한국형 1호 구급차까지 곳곳의 문화유산을 찾는 재미가 있다. 특히 애양원 재활직업보도소와 코잇 선교사 가옥 등은 이르면 다음 달 일반인에게 전면 공개될 예정이다.

허 교수는 “당시 서양 선교사들은 이름도 한국식으로 바꾸며 지역민과 하나가 되려 노력했다”며 “이는 지역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냈고 죽음의 땅이었던 풍장터를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땅으로 거듭나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제는 자신들이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고 주장하지만 기독교 선교사들이야말로 한국의 근대화를 이끈 주역들”이라며 “이를 통해 기독교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여정을 이끈 이철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도 “기독교 정신은 용서와 화해”라며 “한국교회가 갈등이 깊어진 우리 사회에 화해를 주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과 북이 전쟁이란 뼈저린 아픔을 겪었지만 서로를 용서하고 감싸안는 동시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생긴 갈등으로 인한 아픔을 치유하는 데 신앙의 선진들이 남긴 유산으로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목포·순천·여수=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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