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삼국지 제일 장수 강유의 탄식
“젊어서는 수호지를 읽지 말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옛말이 있지만, 나는 아직도 삼국지를 읽는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서울을 수복한 직후 1950년대에 던져지듯 서울에 올라와 시구문 시장의 작은 가게에서 일하던 열다섯 소년에게 삼국지를 읽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때 우리에게 꿈이나 소망이 있었다면 사치였을 것이다.
삼국지 제일의 명장이 누구냐는 질문에 나는 주저 없이 촉한(蜀漢)의 강유(姜維·202~264)라고 대답한다. 제갈량(諸葛亮)을 섬기면서 사랑받았고, 제갈량의 모든 병서와 지혜를 물려받아 촉한의 부흥을 위해 신명을 바쳤다. 비록 촉한 부흥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강유야말로 문무를 겸전한 삼국지 제일의 장수요, 충의지사였다.
제갈량이 죽은 뒤에 사마의(司馬懿)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가 조조(曹操)의 후손들을 모살하고 전권을 장악하면서 위(魏)나라의 민심이 어지러워지자, 강유는 이 틈을 이용해 위나라를 정벌할 것을 유비(劉備)의 아들 유선(劉禪)에게 진언한다.
대신들이 내정의 충실을 요구하며 출병에 반대했다. 그러자 강유는 “인생은 백마가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빨리 지나간다(人生如白駒過隙). 그러니 어찌 세월을 천연할 수 있으며, 어느 날에 중원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탄식한다.
이 경구는 다소 글자가 다르게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 장과 『예기(禮記)』 삼년문(三年問)에 나온다. 아마도 『장자』나 『예기』보다 『삼국지』를 먼저 읽어서 내 머릿속에는 강유의 말로 각인된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을 읽을 때면 지난날과 남은 날을 생각하면서 때로는 회한(悔恨)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몸을 추스르고 책상 앞에 다가앉는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데 돌아보면 인생이 참으로 빠르다. 그러니 어찌 인생을 흘려보내듯이 살 수 있겠는가?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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