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신장병 앓는 돌쟁이 딸, 다른 병원 옮기라니 막막”

채혜선, 문상혁, 남수현 2024. 4. 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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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주요 병원 교수들이 주 1회 외래 진료 휴진 등 진료 축소를 밝힌 가운데 24일 서울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줄지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딸이 태어나자마자 여기에서만 치료를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24일 오후 1시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 어린이병원. 30대 여성 A씨는 안요한 소아청소년과(신장) 교수 진료실 앞에서 갓 돌이 지난 딸을 안은 채 울먹였다. A씨 딸은 신장결석이 생기는 선천성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 A씨 딸은 안 교수로부터 막 외래진료를 마치고 나오던 참이었는데, 앞으로 진료받기 힘들어질 거라는 걱정에 울음이 터뜨린 듯했다. A씨는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데 막막하다. 그렇다고 안 교수에게 매달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수한테 항의할 수도 없고 애만 타”

안 교수와 같은 과 강희경 교수는 지난달 말부터 환자들에게 “사직 희망일이 8월 31일”이라고 알리며 ‘믿을 수 있는 소아신장 분과 전문의에게 환자를 보내드리고자 한다. 희망 병원을 결정해 알려달라’는 안내문을 나눠줬다. 두 사람 다 정부의 의대 증원 등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안 교수 진료실 옆에는 “환자를 떠나는 건 마지막까지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라고 적힌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서울대병원은 소아 전용 투석실을 갖춘 국내 유일의 소아청소년과 콩팥병센터를 운영한다. 소아신장 분과를 맡은 두 교수가 병원을 떠나도 후임자는 없다고 한다. 두 교수는 전국의 소아 투석 환자 100명 중 많게는 60명을 진료해 왔다. 이 때문에 소아 신장병 환자 관련 인터넷 카페에선 걱정이 이어진다. “국내 딱 9명만 앓는 희귀질환 환자 7명을 강 교수가 보는데 어쩌나. 눈물만 난다.” “희귀병이라 지방에선 치료가 안 되니 서울로 매번 올라갔는데, 답답하다.”

조유주(34·여)씨의 생후 71일 된 딸은 만성 콩팥병(신부전) 환자다. 조씨는 2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이가 너무 어려 투석을 최대한 미루고 있었는데,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응급 투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제때 투석을 못 받게 되지 않을까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6월까지만 병원에 오라는데 너무 막막하다”며 “교수한테 항의할 수도 없고, 정부나 대통령과 대화할 길도 없다. 진료 정상화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환자끼리 공유하면서 애만 태운다”고 답답해 했다.

서울대·서울아산 등 주요 병원 교수들이 ‘주 1회 진료 중지’에 들어가기로 결정하면서 환자와 그 가족의 불안이 극도로 커지고 있다. 이날 한 갑상샘 환자 인터넷 카페에는 “(수술받는) 이번 주가 결전의 한 주가 되겠거니 했는데, 지난 22일 수술 취소 전화를 받았다. 수술 날짜가 기약 없이 미뤄졌다” “내일 수술이라 입원했는데 수술이 갑자기 취소됐다. 황당하다” 등 불만이 쏟아졌다.

환자와 그 가족에게 진료 중단을 미리 공지한 교수도 적지 않다.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의 한 교수도 휴진에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소아심장병 아이를 키우는 50대 B씨는 “소아흉부외과를 제대로 보는 병원은 전국에 두 곳뿐일 정도로 치료받기가 힘든데, 교수님이 ‘그만둔다’ ‘휴진한다’ 하니 환아 부모들은 걱정이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이들의 수술·진료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며 “그렇다고 교수한테 ‘왜 그러느냐’고 물을 순 없지 않나. 그저 눈치만 본다”고 덧붙였다.

“주 1회 휴진…진료 20% 줄어드는 셈”

24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환자들도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방광암 수술을 받기로 했다는 한 60대 환자는 “제발 수술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왔는데, 휴진한다니 치료에 차질이 생길까 봐 겁난다”고 말했다. 40대 C씨는 알레르기 증세에 시달리는 초등학생 딸의 치료를 위해 이 병원 소아호흡기·알레르기센터를 정기적으로 찾는다. 그는 “교수들이 주 1회 휴진을 이미 하고 있었는데 통보가 제대로 안 됐다”며 “그간 진료하던 교수한테 진료를 받으러 어렵게 올라왔는데, 다른 의사로 갑자기 변경됐다. 너무 억울해서 고객센터에 항의할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70대 최모씨는 암환자 아들에게 응급 상황이 발생해 이날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최씨는 “응급실에 의사가 예전보다 없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고비를 넘겼지만 다른 응급 상황에서 의사가 없을까 봐 두렵다”고 하소연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의료 파행 이후) 수술·진료·항암치료가 계속 취소되거나 밀렸는데, (추가로) 주 1회 진료 중지를 한다니 상황이 더 열악해질 게 뻔하다”며 “‘주 1회’라고 말하지만, 환자 입장에선 진료가 20% 줄어드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 진료가 힘들어 2차 병원에 가지만, 그마저도 한 달 반 이상 걸린다고 한다. 암환자는 어디로 가야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암 진료협력병원을 확대 운영한다지만, 모든 치료가 가능한 게 아니라 부작용만 보는 수준”이라며 “암환자에게 별 의미가 없다. 다른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채혜선·문상혁·남수현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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