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인데 병원 옮기라니" 엄마는 돌 지난 딸 안고 울었다

채혜선, 문상혁, 남수현 2024. 4. 2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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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에 붙어있는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대자보. 문상혁 기자

“딸이 태어나자마자 치료를 여기서만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24일 오후 1시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 어린이병원 안요한 소아청소년과(신장) 교수 진료실 앞. 30대 여성 A씨가 돌이 갓 지난 딸을 품에 안고 이렇게 말하며 울먹였다. A씨 딸은 신장 결석이 생기는 희귀질환을 선천적으로 앓고 있다. A씨는 이날 안 교수 진료를 마치고 나오던 참이었는데 앞으로 진료 받기가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니 왈칵 울음이 쏟아지는 듯했다. A씨는 “다른 병원으로 무작정 가라는데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안 교수에게 매달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와 강희경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난달 말부터 환자들에게 “사직 희망일이 8월 31일”이라며 “믿을 수 있는 소아신장분과 전문의에게 환자를 보내드리고자 한다. 희망 병원을 결정해 알려달라”는 안내문을 나눠줬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등에 맞서 병원을 떠난다는 얘기다. 안 교수 진료실 옆에 “환자를 떠나는 건 마지막까지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라고 적힌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서울대병원은 소아 전용 투석실을 갖춘 국내 유일 소아청소년과 콩팥병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소아신장분과를 맡은 두 교수가 병원을 떠나면 후임자도 없다고 한다. 두 교수가 전국의 소아 투석 환자 100명 중 50~60명을 진료해왔다. 이 때문에 소아 신장병 관련 환자 카페에는 환자 가족의 걱정이 줄을 잇는다. “국내 딱 9명 앓는 희귀질환 환자 7명을 강 교수가 보는데 어쩌나. 눈물만 난다.” “희귀병이라 지방에서 치료가 안 되니 서울로 매번 올라갔는데 답답하다.”

조유주(34·여)씨의 생후 71일 된 딸은 만성 콩팥병(신부전) 환자이다. 조씨는 24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아이가 너무 어려 투석을 최대한 미루고 있었는데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 이게 웬 날벼락이냐”라며 “응급 투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제때 투석을 못 받게 되지 않을까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6월까지만 병원에 오라는데 너무 막막하다”라며 “교수에게 항의할 수도 없고, 정부나 대통령과 대화할 길도 없다. 진료 정상화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환자끼리 공유하면서 애만 태우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수술 연기될까 불안”…교수 휴진 예고에 애타는 환자들


서울대·서울아산 등의 주요 병원 교수들이 ‘주 1회 진료 중지’에 들어가기로 하면서 환자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날 갑상샘 관련 한 환자 카페에는 “이번 주가 ‘결전의 한 주가 되겠거니’ 했는데 지난 22일 수술 취소 전화를 받았다. 수술 날짜가 기약 없이 미뤄졌다” “내일 수술이라 입원해있었는데 수술이 갑자기 취소됐다. 황당하다” 등의 불만이 쏟아졌다.

진료 중단을 환자에게 이미 공지한 교수도 적지 않다.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한 교수도 휴진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소아 심장병 환자를 키우는 50대 B씨는 “소아흉부외과를 제대로 치료하는 병원은 전국에 2곳뿐일 정도로 치료가 힘든데, 교수님이 그만둔다 하고 휴진까지 한다 하니 환아 부모들 사이에선 걱정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의 수술·진료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라며 “그렇다고 교수에게 ‘왜 그러시냐’고 물을 순 없지 않나. 그저 눈치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아산병원 암병원에 외래교수 진료 안내가 붙어 있다. 채혜선 기자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이날 만난 몇몇 환자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24일 방광암 수술을 받는다는 한 60대 환자는 “제발 수술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왔는데, 휴진한다니 진료에 차질이 생길까봐 겁난다”고 말했다. 40대 C씨는 알레르기에 시달리는 초등학생 딸 때문에 이 병원 소아호흡기·알레르기센터를 주기적으로 찾는다. 그는 “교수들이 주 1회 휴진을 이미 하고 있었는데 통보가 제대로 안 됐다”라며 “그간 진료하던 교수의 진료를 받으러 어렵게 올라왔는데 다른 의사로 갑자기 변경됐다. 너무 억울해서 고객센터에 항의할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70대 최모씨는 암 환자 아들에게 응급 상황이 발생해 이날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최씨는 “응급실에 의사가 예전보다 없다고 하더라. 이번엔 고비를 넘겼지만, 다른 응급 상황에서 의사가 없을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수술·진료·항암치료가 계속 취소되고 밀려왔는데 주1회 진료 중지를 한다니 상황이 더 열악해질 게 뻔하다"라며 “말이 ‘주 1회’라고 하지만 환자 입장에선 진료가 20% 줄어드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 진료가 힘들어 2차병원으로 가고 있지만 그 마저도 한달 반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암 환자는 어디로 가야 하나”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정부가 암 진료협력병원을 확대 운영한다고 하지만 모든 치료가 가능한 게 아니라 부작용만 보는 수준”이라며 “암 환자에게 별 의미가 없다. 다른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채혜선·문상혁·남수현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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