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성추문 보도 막아" 트럼프 30년 지기도 등돌렸다
‘성추문 입막음’ 사건으로 형사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판이 그에게 불리한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23일(현지시간) 재판에서는 30년 넘게 가깝게 지낸 지인의 관련 폭로가 쏟아졌다.
이날 뉴욕 맨해튼지방법원에서 속개된 재판에는 타블로이드지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전 발행인 데이비드 페커가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페커 전 발행인은 2016년 대선을 한 해 앞둔 시점에서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마이클 코언 변호사를 만났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트럼프타워 음모’라고 부르는 이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추문을 은폐하기 위해 작전을 모의했다고 보고 있다.
페커 전 발행인은 이날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검찰 측 신문에서 자신이 그 모임에서 타블로이드지 등 언론 매체가 독점 보도권을 사들인 뒤 이를 기사화하지 않고 묻어버리는 ‘캐치 앤드 킬’(Catch and Kill)에 대해 설명하면서 “제가 여러분의 눈과 귀가 되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뉴욕 검찰은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 캐런 맥두걸(53)이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한동안 불륜관계였다고 폭로하려 하자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맥두걸에게 15만 달러를 주고 독점 보도 권리를 사들인 뒤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페커 전 발행인은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선거에 불리한 성추문 등 정보를 사들인 뒤 보도하지 않게 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검찰이 세운 첫 번째 증인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페커 전 발행인은 “나는 그를 도널드라고 부른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1980년대 후반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TV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를 진행하던 때 방송의 주요 내용을 내셔널 인콰이어러에 유출하고, 매체는 이를 기사에 담는 공생 관계를 형성해왔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페커 전 발행인은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트럼프에 대한 호의적 기사를 생산하고 경쟁 후보에 대해서는 흠집을 내는 기사를 만들어낸 일련의 사례도 진술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페커 전 발행인은 트럼프가 트럼프월드타워 여직원과의 사이에 혼외 자녀가 있다는 루머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선거운동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고 3만 달러에 독점 보도권을 사들인 뒤 대선이 끝난 뒤 두 달이 지날 때까지 숨겼다고 말했다. 그의 진술을 듣고 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고 WP는 전했다.
페커 전 발행인의 증언은 검찰의 혐의사실 입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소사실 요지는 그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성인영화 배우 출신 스토미 대니얼스(45)와의 성추문 폭로를 막기 위해 당시 ‘집사 변호사’ 역할을 맡던 마이클 코언 변호사를 통해 대니얼스에게 13만 달러를 지급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회사 영업기록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공생 관계에 있는 옐로우 저널리즘(선정적 보도 성향) 매체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성추문 폭로를 막아 선거에 불법적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날 재판에서 트럼프 측 변호인은 트럼프가 재판부의 ‘함구령’을 어긴 혐의와 관련해 다소 무성의한 태도로 보여 후안머천 판사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후안머천 판사는 트럼프 측 수석 변호인 토드블랑시 변호사가 제3자의 말을 인용하는 소셜미디어 게시 글은 함구령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자 구체적인 법적 판례를 제시하라고 했다. 블랑시 변호사가 “뒷받침할 판례는 없지만 상식”이라고 답하자 판사는 “(판례 제시를) 여러 번 요청했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당신은 재판부 신뢰를 잃고 있다”고 질책했다.
재판은 25일 재개되며 페커 전 발행인도 다시 증인석에 설 예정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다른 여성 스캔들 공개를 막으려 했던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WP는 예상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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