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복직해 '한국민족운동사론' 펴내

김삼웅 2024. 4. 2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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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 19] 학구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쉽지 않는 일

[김삼웅 기자]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15일 저녁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 기념 학술회의 및 만찬'에서 '6.15 10주년 역사적 의미와 한반도 미래'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감옥이란 강한 사람은 더욱 강하게, 약한 사람은 허물어지게 만든다고 한다. 그는 심지가 강한 편이다. 사학자로 살아오면서 '역사'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나중에 <내일을 여는 역사>의 창간호와 사론집의 제목으로 쓰기도 한,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는 신념이었다.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의 집필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1961년부터 1977년까지 각종 학술지에 발표했던 조선 후기 상공업사 관련 논문 9편과 근작논문 <정약용의 상공업정책>등을 묶어 <조선시대 상공업사 연구>를 한길사에서 펴냈다.

이들 10편의 글 가운데는 23년 전에 석사논문으로서 최초로 씌여진 것도 있고 또 최근에 쓴 것도 있다. 오래된 글들은 다시 읽으면서 얼굴이 뜨거워지는 경우가 많았고 책 속에 넣기가 주저스러운 글도 있었다. 그러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 그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였던 글들이라는 애착이 있고 아직도 같은 문제에 대한 다른 연구가 없는 경우도 있으며 또 학문적 관심이 식민지시대와 그 이후의 문제로 다가서고 있는 지금 이제까지 쓴 조선왕조시대에 관한 논문을 일단 모아서 정리하자는 생각도 있어서 모두 넣기로 했다. (주석 1)

그는 학구파에 속한다. 이미 50이 넘은 나이에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옥살이를 하고, 이로 인해 많이 지연되기도 한 두 권의 역사서 원고를 마무리했으면, 안식을 취할만도 하지만 그는 필을 내려 놓지 않았다. 구고를 꺼내 다시 읽고 다듬었다. 학구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쉽지 않는 일이다. 

2018년 〈강만길 저작집 03〉으로 재간된 이 책의 해제를 쓴 김윤희 교수의 분석이다.

강만길의 이 연구는 기존 연구담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스위지의 관점을 통해 새로운 현상을 실증했던, 실증연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지 않았던, 그래서 현재에도 유효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비맑스적 자본주의 비판 연구들이 맑스적 자본주의 개념의 재해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강만길의 이 연구는 자본주의에 대한 재개념화를 시도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한국자본주의의 기원을 분석하기 위해 후학이 다시 관심을 갖고 들여와봐야 하는 연구다. 무엇을 위해 자본주의를 어떻게 명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과정에서 이 책의 연구들이 해체적으로 다시 구성되기를 기대한다. (주석 2)

강만길은 1984년 2학기 개강과 함께 해직 4년 만에 복직이 되었다. 이 해 정부는 정치활동 규제자 555명 중 250명을 해제하는 등 정국이 다소 완화되고 있었다. 그는 다시 강단에 섰다. 해직 때의 학생들은 이미 졸업했으나 신입생들과 교수·직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가 설 자리는 역시 교단이었다. 

해직 시절 근현대사를 쓰면서 우리 나라의 근현대사가 질곡이 된 원인 그리고 잇따라 나타난 독재의 토양이 된 분단 극복의 배경을 모색하였다. 민족주의를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며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탐구하였다. 여러 매체의 기고문과 사회단체의 강연 내용을 묶고 몇 편의 신고를 더하여 1985년 <한국민족운동사론>(한길사)을 펴냈다. 

종래의 한국민족운동사 연구는 대체로 근대 이후의 외세침략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어떻게 저항해왔는가 하는 측면에 치우쳐 있었고 외세의 침략을 받고 어떤 체제의 민족국가를 건설하려 했는가 하는 문제를 구명하는 일에는 다소 소홀하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있다. 

외세의 침략을 저지하거나 식민지배를 벗어나는 일이 우리 근현대민족운동의 주된 과제였으나 외세를 극복하는 일과 함께 민주주의 통일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일이 함께 수행되어야 했으며 민족운동도 이 두 가지 측면이 일치되었을 때 비로소 역사적인 위치를 확실히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주석 3)

이 책은 반응이 좋아서 2008년 서해문집에서 증보판을 내고, 〈강만길 저작집 04〉로 다시 엮었다. 저작집에 실린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부 분단과 통일운동, 2부 민족운동사의 성격, 3부 민족운동의 전제, 4부 민족운동사론의 주변, 5부 일제식민지배 청산의 과제 등으로 짜여 있다. 

'해제'를 쓴 김기승 교수는 <독립운동사 연구의 신지평을 열다>의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저자는 한국의 민족운동사를 대한제국시기, 식민지시기, 해방 이후 전체를 아우르고, 더 나아가 미래의 통일한국까지도 전망하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발전적이고 진보적인 역사관으로 정리한다. 따라서 저자의 민족운동사 연구는 오늘과 미래의 민주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과제의 실천과 맞물려 있다.

저자는 기존연구에서 소홀히 했던 국민주권주의와 민족연합 혹은 민족협동의 사실과 관념을 민족운동사 이해의 핵심 요소로 확립하였다. 이는 분단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민주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과제를 해결하려는 치열한 역사학적 실천 속에서 거둔 성과였다. 이 점에서 <한국민족운동사론>은 실천적이고 진보적인 역사가가 이룩한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주석 4)

강만길은 2008년 6월 이 책의 증보판을 내면서 신고 몇 편을 추가하고, 기존의 내용 중에서 시대변화와 함께 바뀌게 된 내용 일부를 손질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의 역사인식은 한층 성숙해지고 민족주의에 대한 인식도 다양해졌다. 실질적 민주화를 요구하여 좀 더 독립적인 주권국가가 되기를 원하는 일반 시민들의 바람은 이 책에서 강조했듯이, 분단국가주의를 극복하고 통일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족주의의 과제에 다름 아닐 것이다.(……)
모쪼록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우리 민족주의가 걸어온 길을 되새기면서 그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데에 이 책이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주석 5)

주석
1> 강만길, <책을 내면서>, <조선시대상공업사연구>, 한길사, 1984.
2> 강만길, <조선시대상공업사연구>, 552쪽, 김윤희, <해제>, 창비, 2018.
3> 강만길, <책을 내면서>, <한국민족운동사론>, 한길사, 1985.
4> 김기승, <해제>, 강만길, <한국민족운동사론>, 창비, 2018.
5> 앞의 책, 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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