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불과한 국유림 멱살만…‘山주’ 유인책 마련 관건 [꿀 없는 꿀벌④]

최은희 2024. 4. 2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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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효상 기자

정부가 꿀벌들의 먹이가 되는 밀원식물을 심으려 애쓰고 있지만,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 산림 면적의 66%가량이 사유림인 상황에서 개인 산주들의 자발적인 조림에 기대고 있는 탓이다. 산주들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2022년 발표한 ‘양봉산업 5개년 종합계획’에는 2020년 14만6000헥타르(ha)인 밀원숲을 2026년까지 1만8000ha 늘려 총 16만4000ha를 조성하겠다는 목표가 담겼다.

그러나 현장에선 목표 달성에 물음표가 붙는다. 국·공유림은 대부분 접근이 어려운 산간오지에 있어 밀원숲을 조성하기 어렵다. 고질적인 밀원수 부족을 해결하려면 사유림 활용이 필수적이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산림청이 직접 사유림을 매수해 심거나, 개인 산주들의 자발적인 조림에 의존할 뿐이다.

산주들이 모인 한국산림경영인협회의 서경석 강원도 지회장은 “우리나라 산림 면적의 70% 정도는 사유림인데, 개인 산주들 참여 없이는 목표 달성이 어렵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대다수 산주들은 밀원수 심기를 꺼린다. 경제적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낙엽송 같은 생장이 빠르고 ‘돈 되는 나무’를 선호한다. 우리나라 천연벌꿀 생산의 80%를 차지하는 아까시나무 등 주요 밀원수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일부 산주들은 자신들이 밀원수 식재 비용을 부담함에도, 정작 소득은 양봉농가에서 발생하는 현 구조에 거부감을 가진다. 벌은 돌아다니면서 꽃의 꿀을 빨고 화분을 옮긴 후에 다시 벌통으로 돌아온다. 양봉업자 입장에선 어디서나 벌을 풀어놓으면 공짜로 양봉할 수 있는 구조다. 

최용수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연구관은 “당초 작물을 재배하면 본인 땅에 심어서 본인이 소득을 얻는 형태여야 하는데, 양봉은 벌만 잘 키워서 개인 사유지에서 꿀을 가져오는 방식”이라며 “산주 입장에선 돌아오는 이익이 없기 때문에 밀원수를 심으려는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양봉업자들도 고민되긴 마찬가지다. 5~6월 아까시나무 개화가 끝나면 꿀벌들의 먹이 확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6월 이후 개화하는 밀원수를 직접 심고 싶어도 정부 승인을 받기가 까다로워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밀원수 조성을 위한 입목 벌채 시 별도의 보조금도 주어지지 않는다. 산림청 관계자는 “입목 벌채는 산주가 허가를 받아 시행하는 사업이자 산주에게 수익이 발생하는 사업이므로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양봉장을 운영하는 모순철 한국양봉협회 고양시 지부장은 “양봉인들은 벌통 문제로 농지 주택가보다 임야에서 벌을 키우길 바란다. 나 역시 3평 사유림에 밀원수를 심으려고 했지만 인허가를 받지 못했다”며 “꿀벌에게 도움되는 나무를 심으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양봉농가도 꿀벌도 살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사유림의 밀원숲 조성을 위해선 양봉업자, 산주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안으로 ‘꿀벌목장제도’가 부상하고 있다. 산주가 방치되고 있는 산림에 다양한 종류의 밀원식물을 심어 꽃꿀과 화분 생산기반을 조성하면, 양봉인은 임대료를 지급하고 꿀벌목장을 임차하는 것이 골자다.

산주도, 양봉업자도 긍정적인 반응이다. 서 지회장은 “현재 나무를 키우는 사람은 산주인데, 그걸 가져가 수익을 보는 건 양봉업자”라며 “만약 밀원수를 심어서 산주도 이익을 볼 수 있다면 밀원숲 조성 참여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모 지부장도 “합당한 보상이 뒤따르면 사유림 산주들이 스스로 밀원수 조성에 힘을 보탤 것”이라며 “산주들은 수익이 보장 돼서 좋고, 꿀벌은 건강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밀원수 확보가 꿀벌과 인류의 생존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언한다. 정철의 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는 “사유림 산주들이 스스로 밀원수를 심도록 만드는 유인책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라며 “산주들이 밀원수 심은 부지를 양봉업자들에게 임대해 이익을 얻게 하는 방식이 유의미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진단했다.

임찬성 산촌활성화 종합지원센터 대표 역시 “꿀벌목장처럼 산주들에게 지속적인 소득원이 나오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 산주들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게 관건”이라며 “개인 산주가 밀원숲을 조성할 경우 육묘(묘목을 기르는 것) 등 초기 5~6년 비용을 지원해주고, 예외적으로 벌목을 허가해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꿀벌목장제가 시행되기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승환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곤충학 교수는 “꿀벌목장제 구상 자체는 좋은 대책”이라면서 “양봉업자들이 높은 금액의 임대료를 부담하긴 어렵고, 또 밀원숲이 경제성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산주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제도 시행을 위해선 국가나 지자체 지원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꿀벌목장 제도를 제안한 송인택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은 “꿀벌목장은 산주에겐 지속적 수익을, 양봉농가에게는 안정적인 천연벌꿀 양봉기반을, 꿀벌에게는 농약 없는 생존환경을, 정부에게는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꿀벌목장이 조성되고 5~8년 일정기간이 지난 이후부터는 화분과 화밀 생산에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반면, 생산량은 증가하므로 산주와 양봉농가 모두에게 지속적인 소득기반이 된다는 게 송 이사장의 주장이다.

송 이사장은 “다만 꿀벌목장 간 사육 가능한 봉군 수의 제한 등 권역 중첩에 따른 분쟁을 조정하는 절차가 반드시 마련 돼야 한다”라며 “꿀벌목장에 대한 조정전치주의(일정사건을 결정하기 앞서 법원 조정절차를 거치는 것)를 도입하는 등 양봉 관련 권리분쟁을 다룰 중재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은희, 김은빈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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