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보헤미안, 이승윤

이예지 2024. 4. 2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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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뚜루 서 있는 마름모, 이승윤은 노래한다. 세상과 불화하는 감각을, 부끄러움 없는 자유를, 숨겨둔 낙관을, 제한 없는 마음을.
재킷 Rick Owens. 셔츠, 반지 모두 Golden Goose. 팬츠 Sankuanz. 슈즈 Yowe. 목걸이, 팔찌 모두 Mareyoon. 이어 커프 Peak14. 모자, 팬츠 체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뮤지션 이승윤 하면 자유로움, 히피가 떠올라요. 그래서 화보 콘셉트를 그렇게 잡았습니다. 맘에 들어요?

A : 네. 재미있게 찍었습니다.

Q : “네모난 상자 안에 갇힌 동그란 마음”, “나는 마름모야/심지어 삐뚜루 서 있지”, “토성의 고리/손가락엔 안 맞아/천체를 접붙인 왕관을 가져와도/어머 난 얼굴도 작아” 같은 가사에서 ‘주어진 틀에 들어맞지 않다는 느낌’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거든요.

A : 그렇죠. 다만 저는 제가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세상을 살고 있고, 이 시대와 이 사회의 사고방식과 태도로 살아야 한다는 걸 인정한 다음 제가 찾을 수 있는 자유를 찾아요. 인간으로는 불평도 많고 불만도 많다 보니 살기 좀 불편하긴 한데, 대외적으로는 적당히 잘 살려고 하죠. 규격을 벗어나는 사유들은 창작하면서 해소하고요. 저는 같이 음악하는 친구들에겐 이렇게 말해요. “헛짓거리 하지 말라”고. 창작의 자유로움을 누리기 위해선 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인 걸 해야 할 책임도 있어요.

재킷 People of the World. 셔츠 Highway Vintage. 타이 Vintage Dior by Bell& Nouveau. 목걸이 Kitshxpeepee.

Q : 그렇다면 이승윤에게 자유란?

A : 제가 내뱉은 말에 부끄러움이 없을 때,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Q : 당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곳은 어딘가요?

A : 무대 위. 공연장 안에서 노래할 때 저는 어떤 울타리 안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자유를, 개성을 더 표현해도 되겠다는 안도감을 느껴요.

Q : “빛보단 빗속에서”, “별보단 별과 별 사이 어둠에서”처럼 행간의 의미를 찾아내곤 하는 사람이죠. 보이지 않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까닭이 있나요?

A : 제가 방송에 나와 노래하고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연예인인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자가당착이긴 한데요, 화면의 한 프레임, 무대의 한순간을 위해 정말 많은 사람의 마음과 힘과 노고가 들어가잖아요. 이를테면 오늘 에디터님을 비롯해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그리고 어시스턴트님들의 노고가 있었지만 사실 화보를 공개하면 찍힌 인물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가죠. 그렇기에 전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한 번씩 짚는 사람이고 싶어요.

티셔츠 FromArles. 모자 Blesshon. 키 링 Libertiworko. 팔찌, 반지 모두 Chrome Hearts. 데님 팬츠,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이승윤의 노래는 때론 아주 사적으로 들려요. “정말로 다행이군/너와 내가 우리라서”, “자막 없는 마음을 나눌 거야 너와/내 손의 체온은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같은 가사를 들을 땐 가슴이 두근거리죠. 문득 이승윤의 친구는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A : 막상 옆에 있는 친구들에겐 따듯한 말을 낯간지러워서 못 하는데, 가사로 얼버무리는 거예요. 그런 노래를 쓸 수 있게 만들어준 친구들에게 고맙습니다.

Q : 주변에 어떤 사람들을 둬요?

A : 헛짓거리 안 하고, 헛바람 안 들고, 뚜벅뚜벅 걷는, 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헛짓거리가 뭐냐고요? 저는 ‘이렇게 사는 게 록 스타지!’라고 생각하는 부류의 방종한 사람들, 음악 신의 질서를 해치는 사람들과는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Q : 규율을 부수고 싶어 하는 아웃사이더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모범생이네요?

A : 메타적으론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은 다르죠.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기 위해선 규율을 지켜야 할 때가 있죠. 저질러봤자 어차피 “아이고, 죄송합니다” 할 거라면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저는 군대 가서 튀는 행동도 안 했어요. 제대하고 나서 제대로 군대를 욕하고 싶었거든요.

코트 System. 셔츠 Labeless. 이너 셔츠 Valoren. 쇼츠 Navy by Beyond Closet. 타이 Vintage Nina Ricci by Bell&Nouveau. 벨트로 연출한 스카프 Blesshon. 슈즈 Giorgio Armani. 양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단독 콘서트 실황을 담은 영화 〈이승윤 콘서트 도킹 : 리프트오프〉가 지난 3월 22일 개봉해 지금까지 1만6천 관객을 모았죠. 자신을 스크린에서 마주하니 기분이 어떻던가요?

A : 정말 여흥으로 만든 것이거든요. 팬분들 즐거우시라고 한 거였는데, 생각보다 많이 봐주셔서 감사해요. 지난주에 관객분들과 싱얼롱 시사를 함께 했는데, 제 공연을 제가 본다는 건 이상한 기분이더군요. 일단 피부도 하얗게 나와서 너무 저 같지 않았어요.(웃음)

Q : 공연 중 하도 에너지가 넘쳐서, ‘산책 굶은 비글’이란 별명이 있다면서요? 이승윤에게 공연이란 뭐예요?

A : 이젠 선후 관계가 바뀌었어요. 옛날엔 음악을 들려드리기 위해 공연을 했거든요.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더 제 음악을 들어주십사 부탁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요즘엔 공연을 하고 싶어서 노래를 만들어요. 그만큼 공연을 사랑하게 됐어요. 무대에 오르면 ‘무아’의 상태가 되는데, 팬분들도 그렇게 될 때가 있다고 느껴요. 그럴 때 서로 ‘링크’가 딱 되는데, 그때의 기분은 말로 다 못 하죠.

Q : 도킹’의 가사처럼, “노래 안에서 만나자” 그런 느낌이군요.”

A : 맞아요. 정확히 그런 느낌이에요.

퍼 재킷, 셔츠 모두 Labeless. 이어 커프, 왼손 검지와 약지에 낀 반지 모두 Mareyoon. 귀고리, 오른손과 왼손 중지에 낀 반지 모두 Acbine. 목걸이 (위부터)Idts.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님 팬츠,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한편 지난해엔 정규 2집 〈꿈의 거처〉 LP를 발매하며 음악 감상회를 열기도 했어요. 이 시대에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인상적이었죠.

A : 악기 하나하나 공들여 만든 소리, 그 소리들을 공들여 엮은 음악인데 99%의 리스너는 스트리밍 사이트로 들으시잖아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최대한 다양한 매체로 제 음악을 담아보고 싶다는 오랜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음악 감상회를 열었는데, 제 음악을 듣는 팬분들의 뒷모습을 보고 되게 감동받았던 기억이 나요.

Q : 이승윤의 팬들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나요?

A : 재미있는 분들이죠. 제가 떨궈내고, 떨궈내고, 떨궈내고, ‘나 이거 하는 사람이야!’라고 우기고 있는데 지금까지 함께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웃음) 연예인으로서 제가 등장한 플랫폼이 있었고, 그 안에서 해야 하는 역할과 내뱉어야 하는 말, 취해야 하는 태도가 있었지만 저는 “전 그거 안 합니다, 안 해요, 안 합니다”라고 하면서 여기까지 왔죠. 그걸 다 지켜보면서도 이렇게 많이 남아주실지 솔직히 몰랐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Q : 뮤지션으로서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뭐예요?

A : 유사 연애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노코멘트할게요.(웃음)

베스트 Highway Vintage. 팬츠 Labeless. 선글라스 Gentle Monster. 진주 목걸이 Libertiworko. 실버 목걸이 Idts. 팔찌 모두 Kitshxpeepee. 티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반지 에디터 소장품.

Q : 지난해부터 이승윤의 노래가 부쩍 희망에 찬 것처럼 들렸어요. 밴드 오아시스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그들의 초기 음악이 떠오를 만큼의 환한 낙관이었죠. 변화가 있었나요?

A : 한 번도 낙관을 빼먹은 적이 없는데, 최근에 더 튀어나왔나 봅니다. 저는 항상 낙관을 숨겨놓거든요. 물론 제 노래의 8할은 오아시스에게 빚지고 있죠.

Q : 언젠가 인류 최악의 발명품으로 핵, 가부장제, 민트 초코를 꼽았죠. 재치 있었어요.

A : 핵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됐고, 가부장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죠. 사실 민트 초코를 까기 위해 앞에 두 개를 나열한 것이긴 한데.(웃음)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건강한 토론장을 만들기 위해선 몇 가지 사소한 것을 인정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제가 아버지 성을 따서 이씨이듯, 기존의 인간 사회는 남자 위주로 설계가 돼 있었다는 거죠. 이것만 인정하고 시작해도 혐오로 가지 않을 수 있어요.

Q : 인류 최고의 발명품 셋도 꼽아볼까요?

A : 피자, 담배, 콜라.

Q : 제로콜라는 안 껴주나요?

A : 제로콜라는 안 됩니다.(웃음)

재킷, 셔츠, 팬츠 모두 Etro. 선글라스 Gucci. 골드 목걸이, 반지 모두 Acbine. 큐빅 목걸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코미디여 오소서’라는 노래 재미있게 들었어요. 코미디 좋아해요?

A : 블랙코미디를 좋아해요. 농담은 위안을 주죠. 풍자는 단지 깔깔 웃고 마는 게 아니라, 폐부를 찌르면서 상쾌한 해소감을 줘요. 이를테면 백미러나 사이드미러 같은 기능이랄까요. 앞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상황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끔 하죠.

Q : 〈싱어게인〉 〈불후의 명곡〉 등에서 다른 노래를 커버할 때마다 가사의 ‘여자, 아가씨, 미녀’라는 표현을 ‘사람, 그대, 너’라는 성 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그렇게 한 까닭이 있어요?

A : 제한하고 싶지 않아서요. 마음을 넓게 전하고 싶으니까요.

Q : 대중, 평론가, 리스너의 평가와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A : 창작물은 타인의 말이 덧대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집 안 서랍에 들어 있는 스푼이나 다름없죠. 타인의 평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걸 잘해서, 모든 응답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어떤 이들이 봤을 땐 좋을 수 있도록 정말 잘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Q : 사람들이 이승윤에게 하는 오해가 있어요?

A : 철학적이다. 저는 단순합니다. 단지 짜증이 좀 많은 사람이죠.(웃음)

Q : 말을 이렇게 잘하는데, 말이라는 것에 회의감을 갖고 있기도 하죠? ‘말로장생’에도 ‘공룡이 말을 했더라면/아마 그래서 멸종됐을 거야”라는 가사가 나오잖아요.

A : 저는 항상 제 가사의 자가당착에 빠지는 사람이에요. 제 장점이자 단점은 모순과 허점을 발견하는 건데, 그걸 얘기하는 순간 저도 그 딜레마에 빠지죠. 그 가사도 말이라는 게 이렇게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것을 이따만큼 하고 있어요. 말로 말이죠.(웃음)

Q : 3년 전에 만났을 때보다 더 신중한 사람이 됐네요.

A : 제가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건 제 말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래요. 지키지 못할 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내뱉은 말에 갇혀서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Q : 그때 했던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신념으로 “초콜릿을 믿는다”라고 말했어요. 지금도 여전한가요?

A : 유효합니다.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라는 페르난도 페소아의 시집처럼, 저는 여전히 한순간의 행복을 믿어요. 요즘엔 관리 차원에서 닭 가슴살을 믿어보려고 하고 있는데, 영 맛이 있진 않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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