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보헤미안, 이승윤
Q : 뮤지션 이승윤 하면 자유로움, 히피가 떠올라요. 그래서 화보 콘셉트를 그렇게 잡았습니다. 맘에 들어요?
A : 네. 재미있게 찍었습니다.
Q : “네모난 상자 안에 갇힌 동그란 마음”, “나는 마름모야/심지어 삐뚜루 서 있지”, “토성의 고리/손가락엔 안 맞아/천체를 접붙인 왕관을 가져와도/어머 난 얼굴도 작아” 같은 가사에서 ‘주어진 틀에 들어맞지 않다는 느낌’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거든요.
A : 그렇죠. 다만 저는 제가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세상을 살고 있고, 이 시대와 이 사회의 사고방식과 태도로 살아야 한다는 걸 인정한 다음 제가 찾을 수 있는 자유를 찾아요. 인간으로는 불평도 많고 불만도 많다 보니 살기 좀 불편하긴 한데, 대외적으로는 적당히 잘 살려고 하죠. 규격을 벗어나는 사유들은 창작하면서 해소하고요. 저는 같이 음악하는 친구들에겐 이렇게 말해요. “헛짓거리 하지 말라”고. 창작의 자유로움을 누리기 위해선 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인 걸 해야 할 책임도 있어요.
Q : 그렇다면 이승윤에게 자유란?
A : 제가 내뱉은 말에 부끄러움이 없을 때,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Q : 당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곳은 어딘가요?
A : 무대 위. 공연장 안에서 노래할 때 저는 어떤 울타리 안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자유를, 개성을 더 표현해도 되겠다는 안도감을 느껴요.
Q : “빛보단 빗속에서”, “별보단 별과 별 사이 어둠에서”처럼 행간의 의미를 찾아내곤 하는 사람이죠. 보이지 않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까닭이 있나요?
A : 제가 방송에 나와 노래하고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연예인인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자가당착이긴 한데요, 화면의 한 프레임, 무대의 한순간을 위해 정말 많은 사람의 마음과 힘과 노고가 들어가잖아요. 이를테면 오늘 에디터님을 비롯해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그리고 어시스턴트님들의 노고가 있었지만 사실 화보를 공개하면 찍힌 인물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가죠. 그렇기에 전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한 번씩 짚는 사람이고 싶어요.
Q : 이승윤의 노래는 때론 아주 사적으로 들려요. “정말로 다행이군/너와 내가 우리라서”, “자막 없는 마음을 나눌 거야 너와/내 손의 체온은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같은 가사를 들을 땐 가슴이 두근거리죠. 문득 이승윤의 친구는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A : 막상 옆에 있는 친구들에겐 따듯한 말을 낯간지러워서 못 하는데, 가사로 얼버무리는 거예요. 그런 노래를 쓸 수 있게 만들어준 친구들에게 고맙습니다.
Q : 주변에 어떤 사람들을 둬요?
A : 헛짓거리 안 하고, 헛바람 안 들고, 뚜벅뚜벅 걷는, 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헛짓거리가 뭐냐고요? 저는 ‘이렇게 사는 게 록 스타지!’라고 생각하는 부류의 방종한 사람들, 음악 신의 질서를 해치는 사람들과는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Q : 규율을 부수고 싶어 하는 아웃사이더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모범생이네요?
A : 메타적으론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은 다르죠.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기 위해선 규율을 지켜야 할 때가 있죠. 저질러봤자 어차피 “아이고, 죄송합니다” 할 거라면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저는 군대 가서 튀는 행동도 안 했어요. 제대하고 나서 제대로 군대를 욕하고 싶었거든요.
Q : 단독 콘서트 실황을 담은 영화 〈이승윤 콘서트 도킹 : 리프트오프〉가 지난 3월 22일 개봉해 지금까지 1만6천 관객을 모았죠. 자신을 스크린에서 마주하니 기분이 어떻던가요?
A : 정말 여흥으로 만든 것이거든요. 팬분들 즐거우시라고 한 거였는데, 생각보다 많이 봐주셔서 감사해요. 지난주에 관객분들과 싱얼롱 시사를 함께 했는데, 제 공연을 제가 본다는 건 이상한 기분이더군요. 일단 피부도 하얗게 나와서 너무 저 같지 않았어요.(웃음)
Q : 공연 중 하도 에너지가 넘쳐서, ‘산책 굶은 비글’이란 별명이 있다면서요? 이승윤에게 공연이란 뭐예요?
A : 이젠 선후 관계가 바뀌었어요. 옛날엔 음악을 들려드리기 위해 공연을 했거든요.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더 제 음악을 들어주십사 부탁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요즘엔 공연을 하고 싶어서 노래를 만들어요. 그만큼 공연을 사랑하게 됐어요. 무대에 오르면 ‘무아’의 상태가 되는데, 팬분들도 그렇게 될 때가 있다고 느껴요. 그럴 때 서로 ‘링크’가 딱 되는데, 그때의 기분은 말로 다 못 하죠.
Q : 도킹’의 가사처럼, “노래 안에서 만나자” 그런 느낌이군요.”
A : 맞아요. 정확히 그런 느낌이에요.
Q : 한편 지난해엔 정규 2집 〈꿈의 거처〉 LP를 발매하며 음악 감상회를 열기도 했어요. 이 시대에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인상적이었죠.
A : 악기 하나하나 공들여 만든 소리, 그 소리들을 공들여 엮은 음악인데 99%의 리스너는 스트리밍 사이트로 들으시잖아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최대한 다양한 매체로 제 음악을 담아보고 싶다는 오랜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음악 감상회를 열었는데, 제 음악을 듣는 팬분들의 뒷모습을 보고 되게 감동받았던 기억이 나요.
Q : 이승윤의 팬들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나요?
A : 재미있는 분들이죠. 제가 떨궈내고, 떨궈내고, 떨궈내고, ‘나 이거 하는 사람이야!’라고 우기고 있는데 지금까지 함께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웃음) 연예인으로서 제가 등장한 플랫폼이 있었고, 그 안에서 해야 하는 역할과 내뱉어야 하는 말, 취해야 하는 태도가 있었지만 저는 “전 그거 안 합니다, 안 해요, 안 합니다”라고 하면서 여기까지 왔죠. 그걸 다 지켜보면서도 이렇게 많이 남아주실지 솔직히 몰랐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Q : 뮤지션으로서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뭐예요?
A : 유사 연애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노코멘트할게요.(웃음)
Q : 지난해부터 이승윤의 노래가 부쩍 희망에 찬 것처럼 들렸어요. 밴드 오아시스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그들의 초기 음악이 떠오를 만큼의 환한 낙관이었죠. 변화가 있었나요?
A : 한 번도 낙관을 빼먹은 적이 없는데, 최근에 더 튀어나왔나 봅니다. 저는 항상 낙관을 숨겨놓거든요. 물론 제 노래의 8할은 오아시스에게 빚지고 있죠.
Q : 언젠가 인류 최악의 발명품으로 핵, 가부장제, 민트 초코를 꼽았죠. 재치 있었어요.
A : 핵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됐고, 가부장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죠. 사실 민트 초코를 까기 위해 앞에 두 개를 나열한 것이긴 한데.(웃음)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건강한 토론장을 만들기 위해선 몇 가지 사소한 것을 인정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제가 아버지 성을 따서 이씨이듯, 기존의 인간 사회는 남자 위주로 설계가 돼 있었다는 거죠. 이것만 인정하고 시작해도 혐오로 가지 않을 수 있어요.
Q : 인류 최고의 발명품 셋도 꼽아볼까요?
A : 피자, 담배, 콜라.
Q : 제로콜라는 안 껴주나요?
A : 제로콜라는 안 됩니다.(웃음)
Q : ‘코미디여 오소서’라는 노래 재미있게 들었어요. 코미디 좋아해요?
A : 블랙코미디를 좋아해요. 농담은 위안을 주죠. 풍자는 단지 깔깔 웃고 마는 게 아니라, 폐부를 찌르면서 상쾌한 해소감을 줘요. 이를테면 백미러나 사이드미러 같은 기능이랄까요. 앞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상황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끔 하죠.
Q : 〈싱어게인〉 〈불후의 명곡〉 등에서 다른 노래를 커버할 때마다 가사의 ‘여자, 아가씨, 미녀’라는 표현을 ‘사람, 그대, 너’라는 성 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그렇게 한 까닭이 있어요?
A : 제한하고 싶지 않아서요. 마음을 넓게 전하고 싶으니까요.
Q : 대중, 평론가, 리스너의 평가와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A : 창작물은 타인의 말이 덧대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집 안 서랍에 들어 있는 스푼이나 다름없죠. 타인의 평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걸 잘해서, 모든 응답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어떤 이들이 봤을 땐 좋을 수 있도록 정말 잘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Q : 사람들이 이승윤에게 하는 오해가 있어요?
A : 철학적이다. 저는 단순합니다. 단지 짜증이 좀 많은 사람이죠.(웃음)
Q : 말을 이렇게 잘하는데, 말이라는 것에 회의감을 갖고 있기도 하죠? ‘말로장생’에도 ‘공룡이 말을 했더라면/아마 그래서 멸종됐을 거야”라는 가사가 나오잖아요.
A : 저는 항상 제 가사의 자가당착에 빠지는 사람이에요. 제 장점이자 단점은 모순과 허점을 발견하는 건데, 그걸 얘기하는 순간 저도 그 딜레마에 빠지죠. 그 가사도 말이라는 게 이렇게 잔인하고 폭력적이라는 것을 이따만큼 하고 있어요. 말로 말이죠.(웃음)
Q : 3년 전에 만났을 때보다 더 신중한 사람이 됐네요.
A : 제가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건 제 말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래요. 지키지 못할 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내뱉은 말에 갇혀서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Q : 그때 했던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신념으로 “초콜릿을 믿는다”라고 말했어요. 지금도 여전한가요?
A : 유효합니다.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라는 페르난도 페소아의 시집처럼, 저는 여전히 한순간의 행복을 믿어요. 요즘엔 관리 차원에서 닭 가슴살을 믿어보려고 하고 있는데, 영 맛이 있진 않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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