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선점' 외쳤는데…현대차 "ST1이 그룹 최초 PBV"

박영국 2024. 4. 2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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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형 PBV 기아가 먼저 내놨지만, PBV 전용 모델은 현대차가 최초
민상기 현대차 PBV사업실장 "ST1은 그룹사 최초 PBV 요소가 담긴 차량"
ST1, 샤시캡 한계…'스케이트보드 기반 PV5가 PBV 완전체' 시각도
현대차 ST1 샤시캡.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인 PBV(목적기반모빌리티) 사업 주도권을 놓고 완성차 계열사인 현대차와 기아 간 ‘보이지 않는 경쟁’이 감지된다. 기아가 기존 차종의 파생형 PBV 차종을 먼저 내놓고, PBV 전용 공장 건설에 나서며 앞서가는가 싶었지만, 결국 첫 PBV 전용 모델을 내놓은 것은 현대차였다.

현대차는 새로운 전동화 비즈니스 플랫폼 ‘ST1’의 물류 특화 모델 카고와 카고 냉동을 24일 출시했다. 앞서 현대차는 전날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미디어 발표회를 열고 ST1 사업 전략 및 ST1 카고 및 카고 냉동 모텔의 상세 제원을 공개했다.

ST1은 폭넓은 확장성을 가진 샤시캡(뼈대와 승객실만으로 구성된 차량)이다. 후방 샤시 상부에 사용 목적에 맞는 공간과 장비를 설치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ST1 카고와 카고 냉동은 ST1의 다양한 활용 방식 중에서도 가장 범용성이 큰 분야라 현대차에서 처음으로 양산 출시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ST1의 이같은 특성은 PBV와도 일치한다. 오히려 다른 부분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ST1을 ‘새로운 전동화 비즈니스 플랫폼’이라고만 정의할 뿐, 공식 발표 자료에는 PBV라는 언급이 없다. 의도적으로 숨기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23일 미디어 발표회에서 현대차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민상기 현대차 PBV사업실장은 ST1에 붙은 ‘비즈니스 플랫폼’이 PBV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ST1가 가진 안드로이드 기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데이터오픈 API, 플러그앤 플레이 등 세 가지 인터페이스가 외부와의 연계 활용도를 높게 하기 위한 것인데, 그 부분 자체가 결국 PBV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민 실장은 그러면서 “PBV와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실은 ST1은 그룹사에서 최초의 PBV 요소가 담긴 차량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면서 “앞으로 ST1을 시작으로 이런 플랫폼 요소들이 전방향적으로 수평 전개돼 다양한 차종들이 소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니로 파생형 PBV 니로 플러스. ⓒ기아

‘ST1이 현대차그룹 내 최초의 PBV 요소가 담긴 차량’이라는 것은 형제 회사 기아로서는 거북한 표현일 수 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의 PBV 사업은 기아가 선봉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기아는 지난 2020년 1월 발표한 중장기 미래 전략 ‘플랜 S’를 통해 PBV 시장에서 선도적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을 밝히고 PBV 사업 추진을 위한 ‘신사업추진실’을 신설하는 등 이 분야에 공을 들여왔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이후에도 줄곧 PBV를 기아 미래 사업의 주축으로 언급해 왔다.

기존 경차 레이와 소형 SUV 니로를 기반으로 ‘레이 1인승 밴’과 ‘니로 플러스’를 내놓고 PBV 사업에 먼저 착수한 것도 기아였다.

지난해 4월에는 경기도 화성시 오토랜드(AutoLand) 화성에서 세계 최초의 PBV 전용 공장을 착공했다. 이 공장이 내년 하반기 완공되면 첫 PBV 전용 모델 PV5를 출시하고, 2027년에는 PV7을 내놓는 등 라인업을 확장해 PBV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이런 상황에서 ‘형님’ 격인 현대차의 ST1이 ‘현대차그룹 내 최초 PBV’라는 타이틀을 가져가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기아가 먼저 내놓은 레이 1인승 밴과 니로 플러스는 기존 차종의 파생 모델이라는 점에서 엄밀히 말해 제대로 된 PBV라고 부르기 힘들다. 소비자들에게 이들 차종을 기존 자동차와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PBV로 분류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

‘제대로 된 PBV’인 PV5가 시장에 나오는 내년에서야 본격적인 PBV 시대의 개막을 알릴 수 있을 상황이었지만, 현대차 ST1에 의해 상징성이 희석될 우려가 있다.

기아 PBV 라인업. ⓒ기아

다만, ST1이 레이 1인승 밴이나 니로 플러스보다는 진일보된 개념일지라도, 완전한 PBV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ST1 역시 기존 승용 내연기관의 3세대 플랫폼을 저상화해 전기차 플랫폼으로 개조한 것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0년 1월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 2020)에서 발표한 PBV의 개념은 배터리와 구동부 등으로 구성된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전동화 플랫폼 위에 다양한 수요를 반영한 모듈(어퍼바디)을 체결하는 개념이었다. 기아가 개발 중인 PV5, PV7 등이 이에 해당한다.

내연기관 플랫폼을 활용한 샤시캡 기반의 ST1은 니로 플러스 등과 마찬가지로 기존 자동차에서 완전한 PBV로 가는 과도기에 속하는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는 내연기관 시대에도 서로의 기술과 부품을 공유하며 연구개발이 사업화로 이어지는 효율을 극대화했다”면서 “PBV 역시 혁신의 과정에서 이뤄지는 두 형제회사의 여러 시도들이 합쳐져 가장 효과적인 결과물을 낳을 수 있다. 브랜드를 구분할 게 아니라 레이 1인승 밴과 니로 플러스, 그리고 ST1을 거쳐 PV5로 진화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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