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정밀분석 | 데이터로 본 21대 국회 결산
국가기관 중 신뢰도 꼴찌…검찰보다 아래
법안 발의 건수 최다, 통과율은 최저… 이슈만 좇는 ‘졸속 발의’ 수두룩
“180석 거야(巨野) 국회 생산성 저하시켜… 일당 독주 막을 시스템 필요”
21대 국회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처참할 정도다. ‘헌정 사상 최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통계청이 3월 26일 발표한 ‘2023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24.7%다. 조사 대상 7개 국가기관 가운데 단연 꼴찌로, 6위인 검찰(44.5%)보다도 20%p가량 낮다. 검찰 조직보다 신뢰도가 낮은 국회의원들이 검찰 개혁을 외치고 있는 셈이다.
정치인들조차도 21대 국회를 최악이라고 꼽는다. 제19대 국회 후반기 의장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21대 국회 전반기가 끝났을 무렵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의회민주주의가 조종(弔鐘)을 울렸다”고 개탄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자신의 마지막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21대 국회는 실패한 국회”라고 고개를 숙였다. 21대 국회가 이토록 뭇매를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21대 국회는 여당 단독으로 개원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원 구성에 합의하지 못한 가운데 미래통합당이 개원을 위한 본회의에 불참한 것이다. 여당 단독으로 개원한 사례는 21대 국회가 역대 두 번째로, 1967년 7대 국회 이후 53년 만이다.
지난 4년간의 성적표도 처참하다. 3월 14일 기준 발의된 의원 법률안 2만6000여 건 중 9400여 건만 국회 문턱을 넘었다. 처리율은 36.1%. 역대 최하라는 20대 국회(36.4%)보다도 낮다(17대 50.3%, 18대 44.4%, 19대 41.7%). 계류 중인 1만6600여 건의 법안은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 자동 폐기 된다.
단순히 법안 통과율이 낮다고 최악이라고 평가하는 건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데이터를 종합해봐도 변명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일례로 발의된 법률안 2만6000여 건 중 9500여 건이 최소 요건인 10인의 국회의원 동의만 얻어 발의됐다(36.5%). 이는 ‘졸속 발의’가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전 국회에서 임기 만료 폐기된 법안을 그대로 가져와 문구만 조금 바꾼 뒤 발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제대로 된 숙의 과정 없이 발의되는 법안도 적지 않다.
역대 최악… 위헌성 법안 국회 문턱 넘는 사례 늘어
발의되는 의원 법안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품앗이 발의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 졸속 발의가 늘어날까? 익명을 원한 한 여당 관계자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 유튜브가 흥행하면서 이슈만을 좇아 후다닥 처리하는 기조가 강해졌다. 그러니 법안의 깊이가 얕아졌다”고 말했다.
위헌성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는 사례도 늘었다. 월간중앙 취재를 종합하면, 3월 6일 기준 헌법재판소의 위헌·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아직 개정되지 않은 법률은 총 33건이다(위헌 19건, 헌법불합치 14건). 앞서 20대 국회 임기가 끝났을 당시 미개정된 헌법불합치 법률은 7건이었다. 불과 4년 만에 2~4배 뛴 것이다. 이에 대해 모 대기업 국회 대관 담당자는 “법안이 통과됐을 때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안 하고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라며 “정치인의 소신은 사라지고 포퓰리즘에 목매다 보니 법안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졸속 발의는 늘어난 반면 국회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9차례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의 7차례를 넘어서는 역대 최다다. 야권은 이러한 수치를 앞세워 ‘역대 최악의 불통 대통령’이라고 공격한다. 서울 지역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 입장에서 대통령의 역대 최다 거부권 행사는 굴욕”이라며 “180석은 어느 정당도 가져보지 못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시당했다. 행정부가 입법기관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야가 밀어붙인 법안을 대통령이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일각에서는 180석 거야의 등장이 국회의 생산성을 오히려 저하시켰다고 본다.
유재일 정치평론가는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정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양당이 서로 균형이 맞아 서로 눈치를 봐야 된다”며 “한쪽에 힘이 쏠리다 보니 견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초선 의원 대거 등장에 보좌진 자질도 하락
21대 국회 들어 의원실 보좌진의 자질이 하락했다는 주장도 있다. 시간을 4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총선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비등한 성적을 낼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당시 여의도는 발칵 뒤집혔다. 비단 총선 결과가 충격적이어서만은 아니다. 어마어마한 ‘구직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민주당 당선인은 20대 총선 당시 123명에서 21대 총선 180명으로 4년 만에 57명이 늘었다. 의원 실당 9명의 보좌진이 존재하니 산술적으로 513명의 신규 보좌진을 채용하게 됐다. 민주당에서는 보좌진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특히 대선·총선·지선을 치러본 능력 있는 보좌진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21대 국회에는 30대 보좌관이 등장하는 일도 생겼다.
여기에 더해 초선 의원의 대거 등장도 21대 국회를 공전케 한 원인으로 꼽힌다. 21대 국회 때 입성한 초선 의원만 155명에 이른다. 이들은 21대 국회 초반부터 갖은 구설수를 만들며 국회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21대 국회 개원 전부터 윤미향 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의 위안부 피해자 회계부정 의혹 등을 둘러싸고 여야가 충돌했으며, 김남국·김홍걸 의원은 ‘코인 보유·거래 논란’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실형을 받아 당선무효가 된 의원도 7명이나 된다. 김선교·이규민·이상직·정정순·정찬민·최강욱(가나다순) 전 의원에 더해, 올해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이 2022년 3~4월 선거사무원과 지역 관계자들에게 금품과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재판이 진행 중인 의원도 27명에 이른다.
입법기관에서 위성정당·위장탈당 등 꼼수 만연
이러한 위성정당은 각종 꼼수로 선거판을 어지럽힌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원래 정당과 위성정당의 선거유세 버스 디자인을 똑같이 하고 기호를 지운 쌍둥이 버스와 비례대표 후보들이 지역구 후보를 지원 유세 가서 입을 다물고 있는 묵언 유세가 있다. 이들 모두 후보자 등이 다른 정당을 위해 선거운동하는 것을 금하는 공직선거법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다. 투표용지에서 최대한 앞쪽 번호를 받기 위한 ‘현역 의원 꿔주기’ 꼼수도 여전하다. 당 윤리위에서 제명된 비례대표 의원이 해당 정당의 위성정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식이다. 이런 절차는 비례대표 의원들의 의원직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공직선거법 192조는 “비례대표가 소속된 정당이 합당·해산되거나 제명되지 않는 이상, 당적을 이탈·변경하는 경우 의원직이 상실된다”고 규정한다. 즉, 중징계에 해당하는 ‘제명’이 총선 기간에는 당적을 옮기는 ‘꼼수’로 활용되는 실정이다. 입법기관이 법과 규정의 사각지대를 교묘히 파고드는 웃지 못할 상황이 21대 총선에 이어 22대 총선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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