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순환시계 '봄날' 가리키는데…체감경기 연내 회복은 "글쎄"

정종훈 2024. 4. 24. 09: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실물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정부의 '경기 시계' 바늘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상승·회복 같은 봄날을 가리키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경기순환시계는 생산·소비·투자·고용 등의 10개 핵심 경제지표가 '상승→둔화→하강→회복'의 경기 순환 4개 국면 중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도구다. 23일 경기순환시계에 따르면 2월 기준 10개 지표 중 광공업생산지수·수출액·취업자 수 등 5개가 '상승' 국면을 가리켰고, '회복' 국면에도 설비투자를 비롯한 4개가 해당했다. 반면 하강엔 소매 판매 1개만 걸쳤다.

이는 지난 연말과 확연히 다른 기류다. 경기 시계는 석 달 전인 지난해 11월만 해도 상승(3개)보다 하강(5개)에 가까웠다. 올해 들어 경제 흐름이 빠르게 상승세를 타는 셈이다. 2월 시계만 보면 경기가 좋아지던 2021년 상반기와 비슷한 국면이다.

김경진 기자
2월 기준 경기순환시계 모습. 자료 통계청

실제로 반도체 업황 반등 등에 힘입어 전산업 생산지수는 2월까지 넉 달 연속 오름세를 나타냈다. 2월 증가 폭(1.3%)은 지난해 8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3월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1% 늘면서 반년째 '플러스'(+)를 기록했다. 무역수지도 지난해 6월부터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기존 전망치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기대 이상의 호조를 보이면서 전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 깔렸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씨티(2.0%→2.2%)·UBS(2.0%→2.3%)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이러한 내용을 반영해 성장률 전망치를 최근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냉랭한 가계·기업의 체감 경기까진 온기가 채 퍼지지 않고 있다. 물가·환율·금리 '3고(高)'가 길어지면서 체감 경기는 이러한 실물 지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 판매다. 2월 소매 판매는 전월보다 3.1% 감소했다. 식료품 가격 급등, 이자 부담 등에 소비 여력이 위축됐다. 할부 등의 이유로 금리에 민감한 승용차 내수 판매(1~3월 기준)도 전년 동기 대비 12% 줄었다.

기업과 소비자의 경제 심리를 보여주는 한국은행 경제심리지수(ESI)는 지난달 92.2로 전월 대비 1.1포인트 하락했다. 6개월 만에 낙폭이 가장 컸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을 통해 "재화소비 둔화·건설 선행지표 부진 등 경제 부문별로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기업이 피부로 느끼는 업황도 정부 통계 지표와 거리가 있다. 산업연구원이 제조업체 1500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제조업 경기실사지수(BSI) 조사가 이를 보여준다. 국내 제조업의 올 1분기 시황 현황 BSI는 83으로 지난해 4분기(86)보다 하락했다. 매출 현황 BSI도 같은 기간 91에서 82로 크게 떨어졌다. 이 수치는 100을 기준으로 0에 가까울수록 전 분기 대비 악화 의견이 많다는 의미다.

이들 업체는 물가 상승에 따른 '생산비 부담 가중'(57%)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경기도에서 금형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50대 A씨는 "인건비·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대기업이 주는 하청 단가는 그대로다. 수출이 늘었다지만 낙수효과가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소비 회복·금리 인하 기대만 품고 있지만, 몇달 뒤엔 경영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거 같다"고 말했다.

2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향후 체감 경기가 빠르게 회복할 거란 기대감도 꺾이는 모양새다. 미국 경제의 '나 홀로 고공행진' 속에 한은 금리 인하 시기는 하반기 이후로 늦춰지는 양상이다. 또한 중동 정세 불안으로 원화값이 지난주 달러당 1400원을 터치했고, 국제유가 상승과 3%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어질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비 침체, 건설 부진 등의 연내 빠른 회복이 쉽지 않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보다 수출은 좋아지겠지만, 내수는 가계·기업 부채 부담 속에 크게 나아질 게 없다. 정부가 2.2%로 전망한 성장률이 1%대 후반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최근 "수출은 확실히 예상보다 올라가고 있는데, 내수가 어떨지는 좀 더 자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