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m 지하주차장' 들어가 '허리 펴고' 일하게 해주는 'ST1'

박영국 2024. 4. 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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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즈니스 플랫폼 ST1 앞세워 전동화 시대 '물류 대전환' 정조준
첫 상용화 모델 카고‧카고 냉동…작업환경 고려한 구조‧편의사양 적용
이동식 스마트팜, 찾아가는 펫 케어샵, 구급차 등 다양한 확장 가능성
CJ대한통운‧롯데‧컬리 등 유통기업과 개발 협업…현장 피드백 반영
현대자동차 PBV사업실 민상기 실장이 23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ST1 미디어 발표회에서 ST1 샤시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신차발표행사장에 ‘발라먹다 만 생선’ 같이 머리만 멀쩡하고 몸통은 앙상한 뼈대만 남은 참신한(?) 탈것이 등장했다. 현대자동차가 전동화 시대 ‘물류 대전환’을 겨냥해 야심차게 내놓은 샤시캡(뼈대와 승객실만으로 구성된 차량) 기반 비즈니스 플랫폼 ST1이다.

정유석 현대차 국내사업본부 부사장은 지난 23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ST1 미디어 신차발표회에서 “비즈니스에 최적화된 모빌리티는 결국 사람이 일하기 좋은 모빌리티를 만드는 것”이라며 “우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아가는 고객을 위해 새로운 모빌리티 솔루션을 개발했고, 고객 니즈에 최적화된 형태로 확장이 가능한 모빌리티 솔루션이 바로 ST1”이라고 말했다.

ST1은 사용자가 원하는 폼팩터를 구성할 수 있도록 구동부와 뼈대, 사람이 탑승하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휑하게 비워 놨다. 여기에 화물칸을 얹으면 카고밴이 되고, 의료장비를 얹으면 구급차가 된다. 이동식 매점이나 스마트팜, LP바, 찾아가는 펫 케어샵 등 공간과 이동성과 전기 공급원이 필요한 모든 사업에 ST1이 해답이 될 수 있다.

ST1 샤시캡을 팻 케어샵, 구급차, 경찰지휘차 등 여러 방식으로 활용한 모습. ⓒ데일리안 박영국 기자

ST1이 제공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은 하드웨어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차는 ST1에 최초로 데이터 오픈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도입해 다양한 차량 데이터를 고객사에 제공하고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데이터 오픈 API는 고객사나 파트너사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통신 수단으로,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프로그래밍해 외부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사용자가 바로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

ST1에 적용된 데이터 오픈 API를 통해 고객사 시스템으로 실시간 차량 운행 정보(차량 위치, 속도, 시동 상태, 배터리 충전량 등), 차량 운행 분석 데이터 등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전달해 효율적으로 차량을 관리할 수 있게 했다.

민상기 현대차 PBV사업실장은 ST1의 플랫폼으로서의 확장성을 스마트폰에 비유했다. 그는 “다양한 외부 서비스를 적용할 수 있는 앱(애플리케이션) 환경, 스마트폰의 데이터를 외부에 오픈해서 서비스를 강화하는 데이터 오픈 서비스와 같은 기능들은 스마트폰과 외부를 연결하는 창구”라면서 “이를 통해 스마트폰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됨은 물론, 거대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적인 생태계를 조성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동차에서도 스마트폰과 같은 디스플레이 활용뿐 아니라 자동차 데이터 활용 확장 작업을 위한 인터페이스가 마련된다면 다양한 활용도를 가질 수 있게 되고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넓은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오늘 소개하는 ST1은 이런 개념의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첫발을 내딛는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 실장은 또 “다양한 확장 작업이 가능한 외부 오픈 인터페이스를 통해 차량을 사용하는 고객사, 다양한 용도에 맞춰 차량을 제작하시는 특장사, 차량과 연관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프로바이더까지 참여 가능한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ST1 캡 뒤쪽의 샤시 부분. ⓒ데일리안 박영국 기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자체 제작이 아닌 안드로이드 OS(운영체제) 기반이라는 점도 ST1의 확장성을 높여주는 요소다. 고객사의 다양한 앱을 차량에 탑재할 수도 있고, 고객사가 원하는 차량 정보를 반영한 앱을 함께 개발하고 차량에 적용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민 실장은 “ST1은 차량의 인포테이먼트 시스템을 안드로이드 기반으로 만들어 기존에는 탑재하기 어려웠던 고객사의 앱을 탑재할 수 있게 됐다”면서 “물류 운송사들이 사용하는 물류 배송 관리 시스템(TMS) 앱의 경우 그동안 대부분 스마트폰이나 별도 단말기를 활용했으나, 차량 인포테인먼트에 탑재되면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손쉽고 편리하게 배송지 확인, 배송 기간 최적 경로 안내, 실시간 접수 사항 확인들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ST1 카고(왼쪽)의 측면 슬라이딩 도어와 ST1 카고 냉동의 후면 트윈 스윙 도어가 개방된 모습. ⓒ현대자동차

이날 현대차는 샤시캡 형태의 ST1에 이어, 샤시 위로 적재함을 올린 카고 모델과 냉동 적재함을 설치한 카고 냉동 모델을 공개했다. ST1의 첫 상용 모델인 카고 및 카고 냉동은 24일부터 기업 및 개인에 판매된다.

“포터 일렉트릭과 다른 게 뭐지?”

ST1 카고 모델을 본 소비자들로부터 당연히 나올 법한 의문이다. 포터 일렉트릭의 시작 가격이 4395만원인데 반해, ST1 카고 가격은 기본트림도 6000만원에 육박(5980만원)한다. 현대차에겐 포터 일렉트릭보다 1600만원가량을 더 내고 ST1을 사야 할 이유를 납득시킬 의무가 있다.

회사측은 이동식 스마트팜이나 찾아가는 펫 케어 등 확장된 비즈니스 모델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물류차량, 대표적으로 택배차량으로의 쓰임새만 해도 ST1이 월등하다고 강조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도어를 열고는 힘들게 적재함에 올라가 허리를 굽혀 택배상자를 꺼낸다. 도어를 여닫는 데 드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적재함을 활짝 개방한 채로 물건을 실어 나르느라 택배가 도난 위험에 노출된다. 택배차량의 지상 이동이 금지된 아파트 단지의 경우 전고 2.3m로 제한된 지하주차장 출입 조건에 걸려 차량을 단지 입구에 세워놓고 수레로 택배를 나르는 경우도 있다.

기존 택배기사들의 대체적인 작업 모습이다. 현대차는 ST1 카고가 이런 택배기사들의 고충을 모두 해소해줄 수 있다고 자신한다.

먼저, 아파트 지하주차장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현대차는 굳이 무대에 높이 2.3m의 지하주차장 입구를 본뜬 구조물을 설치해 놓고 이를 통해 ST1 카고를 등장시켰다.

ST1 카고가 아파트 지하주차당과 동일한 높이 2.3m의 구조물을 통과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영국 기자

ST1은 승용 내연기관의 3세대 플랫폼을 화물 적재에 편리하도록 저상화해 만들어졌다. 그 덕에 기존 1t 트럭 탑차보다 넓은 화물공간을 갖추고도 전고는 2230mm에 불과하다. 전장은 5105mm, 전폭은 1740mm로 포터보다 넉넉하다.

저상화 플랫폼으로 인해 스텝고(380mm)는 낮추고 실내고(1700mm)를 높일 수 있게 됐다. 적재함에 한 걸음으로 쉽게 올라 허리를 굽히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날 미디어 행사에서 현대차는 모델(키 170cm 이하로 추정되는)이 적재함에 들어가 허리를 편 채로 작업하는 모습을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ST1 카고 적재함에서 모델이 허리를 편 채로 짐을 옮기고 있다. ⓒ데일리안 박영국 기자

택배기사가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도어 개폐도 한층 편리하게 배려했다. 적재함의 측면에는 슬라이딩 도어를, 후면에는 개방감을 최대화한 트윈 스윙 도어를 적용했으며 측면과 후면 도어에 모두 전동식 잠김 시스템을 반영해 걸쇠 형태가 아닌 승용차의 도어처럼 전동으로 적재함 도어를 열고 잠글 수 있게 했다.

문을 여닫는 시간을 아끼려고 문을 연 채로 배송을 다니느라 택배가 도난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택배기사가 실수로 문을 열어놓고 사라져도 보완해줄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스마트 워크 어웨이는 운전자가 스마트 키를 소지한 후 차량에서 멀어질 때 카고 파워 슬라이딩 도어의 자동 닫힘과 잠김을 설정할 수 있게 지원해준다.

ST1 카고 냉동의 슬라이딩 도어가 원터치로 여닫히는 모습. ⓒ데일리안 박영국 기자

적재함 도어를 열어놓은 상태로 차를 출발시키는 일이 벌어져도 클러스터 화면과 경고음을 통해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반복 승하차가 빈번한 택배기사의 업무 특성을 감안해 운전자가 시동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자동으로 시동을 켜고 꺼주는 ‘스마트 드라이브 레디’라는 기능도 있다.

오세훈 현대차 BPV 디벨롭먼트실장 상무는 “배송기사들의 실제 작업 환경을 분석한 결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되는 상하차, 허리를 굽히고 화물을 싣고 내리며, 수없이 도어를 열고 닫으면서 허리와 손목 관절에 가해지는 부담이 큰 상태였다”면서 “ST1 카고는 배송작업이 작업자에게 주는 부담을 세심하게 고려해 작업 편의성을 극대화했다”고 설명했다.

ST1 카고 샤시 하단에 탑재된 배터리. ⓒ데일리안 박영국 기자

전기차로서의 성능도 월등하다. 포터 일렉트릭의 경우 58.8kWh 배터리를 얹어 완충시 211km를 주행할 수 있지만, ST1은 76.1kWh의 배터리를 장착해 1회 충전 주행거리가 317km에 달한다. 이는 하루 배송 거리를 충족시키는 수준이라고 회사측은 강조했다.

350kW 초급속 충전 시스템을 적용해 배터리 용량의 10%에서 80%까지 20분 만에 충전이 가능한 것도 배송 기사들이 크게 선호할 만한 요소다.

ST1 카고 냉동 역시 기존 냉동 탑차를 대체할 이유가 충분한 특화 사양이 대거 적용됐다. 냉동기를 제어하는 별도의 장치가 필요 없이 차량 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 냉동기를 제어할 수 있다.

인포테인먼트 화면의 냉동 애플리케이션과 냉동기 컨트롤러가 연동돼 운전석에서 냉동기 온도를 확인할 수 있고 냉동기를 켜고 끄거나 온도를 설정하는 등 제어가 가능하다. 또, 카고 온도 이탈 경고 기능도 있어 냉동기가 설정한 온도에서 벗어날 경우 클러스터 화면과 경고음을 통해 알려준다.

냉동기를 차량의 고전압 배터리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해 냉동기를 위해 별도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줄였다.

ST1 카고 냉동 적재함 내부. ⓒ데일리안 박영국 기자

ST1은 가격이나 데이터 오픈 API의 효용성 등을 감안하면 초기에는 개인사업자나 소상공인보다는 물류기업향 B2B(기업간 거래) 물량이 시장에 우선적으로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현대차는 ST1 개발 과정에서 물류‧유통 기업들과 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상무는 “CJ대한통운과 롯데, 컬리 등 18개 기업들이 ST1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면서 “고객사에 따라 현대차에서 2주, 혹은 한두달 가량 차량을 제공하면 고객사에서 차량을 실제 작업 현장에 투입해 장점이나 단점을 피드백 해줬고, 그에 따른 보완이나 개선점을 반영하는 식으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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