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이동철 2024. 4. 2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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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철의 노동OK] 법의 사각지대 5인 미만 사업장... 월급 도둑에 맞서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현장 노동자들의 상담사례에 기반한 대한민국의 노동이야기를 전합니다. <기자말>

[이동철 기자]

 대다수 직장인은 월급에 따른 희노애락을 경험한다.
ⓒ pixabay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일터. 이 일터에서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합니다. 좁은 취업문을 넘어 첫 출근을 앞둔 설렘, 밤낮없이 열정을 쏟아붓고 얻어낸 승진과 같은 기쁨도 있겠지만, 대다수 직장인은 주머니 한켠에 사직서를 품고 출근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상급자와 고객으로부터 모욕을 견디고, 잘릴까 봐 아파도 묵묵히 견디며 출근하는 슬픔이 직장인에게는 더 익숙할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가족의 경제를 지탱하는 월급 때문이지요. 대한민국의 근로기준법은 1개월에 적어도 1회 이상 지급일을 정해 임금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당일에 일하고 일당을 지급하건, 매주 주급으로 지급하건, 사장님 마음이지만, 적어도 1개월을 단위로 임금을 지급하도록 정한 이유는 한 달을 주기로 경제활동이 이뤄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기와 도시 가스요금을 비롯한 공과금, 월세와 같은 주거비, 학원비와 임대료 등 생활비의 소모가 한 달을 단위로 이뤄지기에 직장인에게 임금보다 월급이라는 말이 더 익숙합니다.

일터에서 나보다 쉬운 일을 하거나 경력이 적은 동료가 더 많은 월급을 받을 때 우리는 분노합니다. 이처럼 월급은 나의 생계를 지탱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일터에서 자기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이며 사회적으로는 공정성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월 20만 원을 도둑맞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확대 적용된 다음날인 1월 28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
ⓒ 연합뉴스
저는 상담노동자로 이처럼 월급 때문에 일터에서의 모욕과 슬픔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합니다. 주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한 노동자나,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를 도와 법률적으로 가능한 대응 방법을 조언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노동자들이 스스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자신의 일터를 다닐 만한 곳으로 바꿔 낼 수 있도록 노조 결성을 지원하는 일에도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이 지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에게 대한민국의 일터 곳곳에서 벌어지는 월급을 둘러싼 노사의 치열한 쟁투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노동자의 월급을 훔쳐 가는 주체는 사장님입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거나 꼼수를 써서 시장가격 보다 낮게 월급을 주는 것이 대표적인데요. 근로계약상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하는 방법으로 갑질을 하며 월급의 가치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마주했던 노동자들의 상담 노트를 펼쳐 임금체불과 직장 내 괴롭힘, 그리고 부당해고와 비정규직 차별로 마음 졸이는 노동자들의 억울한 사연과 이들의 월급을 훔쳐 이익을 취하는 사업주들의 탐욕을 독자 여러분들에게 널리 알리고 해결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정책으로 노동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도 노동자들의 월급을 훔쳐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노동시장에서 정부가 기업의 편에서 노동자에 대한 희생을 구조화하는 정책을 추진해 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결과를 자주 목격합니다.

상시근로자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공휴일과 연차휴가, 그리고 초과근로에 대한 가산 수당의 지급을 적용 제외하는 근로기준법 규정이 대표적입니다.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는 연간 일요일을 제외한 약 15일의 공휴일을 유급으로 쉽니다. 연차휴가도 1년에 15일을 유급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법정 근로시간인 1일 8시간을 기준으로 최저시급 9860원을 적용하면 노동자의 1일 통상임금은 7만 8880원입니다. 유급 공휴일과 연차휴가 1일에 대한 수당은 1일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약 15일의 연간 공휴일과 연간 15일의 연차휴가를 합한 30일에 대한 연간 임금 총액은 1일 통상임금 7만 8880원에 30일을 곱하면 236만 6400원이 됩니다. 이를 12개월로 나누면 매월 19만 7200원이 나옵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 연차휴가와 유급 공휴일이 적용되지 않는 근로기준법 규정으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월급으로 따지면 약 19만 7200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1년간 성실하게 근로한 노동자에게 15일의 연차휴가를 주고, 법이 정한 공휴일에 유급으로 휴식을 보장하는 이유는 몸과 마음의 피로를 회복하고 여가를 활용해 사회적 문화적 시민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취지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데요.

그런데 근로기준법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공휴일과 연차휴가, 그리고 초과근로에 대한 가산 수당을 적용 제외하고 있습니다. 영세사업주의 임금 부담이 크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노동자의 휴식권과 건강권은 사업장의 규모와 무관하게 보장되어야 하는 보편적 권리입니다. 규모가 큰 회사의 노동자와 달리 취급될 이유는 없습니다.

영세 사업장의 부담은 정부의 지원 등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5인 미만 사업장에 연차휴가와 공휴일 유급 규정을 적용 제외하다 보면 자영업이나 중소 영세 사업장 일자리는 구직자들로부터 외면받는 기피 일자리가 될 겁니다.

독자 여러분이 22대 국회에 입법 청원을 통해 근로기준법의 관련 조항을 바꾸면 약 300만 명이 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월급이 약 20만 원가량 오를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해볼 만하지 않나요? 정치참여가 돈이 되는 효능감을 느낄 겁니다.

이처럼 저는 독자 여러분과 사장님이 우리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훔쳐 가게 놔두는 정부의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의 지갑이 두둑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노동조합,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과 노조간부 등이 참석한 27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정권 심판! 최저임금 인상! 한국노총 노조간부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마지막으로 저는 이 지면을 빌려 독자들과 '노동조합 너머'를 고민해 보려 합니다. 노동자가 일터에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근본적으로 보장받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집단을 형성해 회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노동조합입니다. 그러나 노동현장에서 노조는 그 중대한 사명에 비해 노동자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전체 노동자의 15%가 채 안 되는 조직률이 이를 증명합니다. 코로나19 감염병의 확산 이후 비대면이 일상화된 노동시장 상황 속에서 노조 활동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일터에서는 사용자의 갑질이나 부당해고 문제가 발생하면 노조를 찾지만, 일상적으로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매월 내는 조합비가 아깝다고 탈퇴하는 조합원이 늘어갑니다. 회사와의 단체협약으로 노조 의무가입이 제도화된 사업장도 있습니다만, 매번 형식적인 집회나 술판인 체육대회에서 노조 활동에 매력을 못 느끼고 얼굴도장만 찍고 사라지는 조합원들도 늘어갑니다. 노조는 자신들의 기득권만 지키고 노조의 울타리 밖 노동자들의 신산스러운 삶에는 무관심하다는 시민들의 비판도 따갑습니다.

역사적으로 일터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우리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키기 위한 조직임이 확인되었지만, 이제는 그냥 필요악으로 인식되는 노동조합.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요? 그 질문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모색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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