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보]'강화도령' 철종의 첫사랑 얽힌 길…강화나들길 14코스

이춘희 2024. 4.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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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나들길 14코스의 별명은 '강화도령 첫사랑 길'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화도령으로 불렸던 조선의 제25대 국왕 철종 이원범에 대한 이야기가 얽힌 길이다.

강화군 시내를 가로질러 남산길 산책로에 접어들어 걷다 보면 청하동 약수터가 나온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강화도령 첫사랑 길'이 된 것도 당시의 길을 따라 나들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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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나들길 14코스의 별명은 '강화도령 첫사랑 길'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화도령으로 불렸던 조선의 제25대 국왕 철종 이원범에 대한 이야기가 얽힌 길이다. 총 11.7㎞ 길이로 소요 시간은 3시간 30분이다. 용흥궁을 시작점으로 해 청하동약수터, 남장대, 찬우물약수터를 거쳐 철종외가에 다다르는 길이다.

원범은 한양에서 태어났지만 14살인 1844년 민진용이 큰형 이명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꾸민 사실이 발각되면서 큰형은 사약을 받았고, 원범은 작은형 이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됐다. 그렇게 나무꾼 일을 하며 살던 원범은 1849년 7촌 조카인 헌종이 후손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갑작스레 왕위 계승자로 지목된다. 효종의 피를 이은 남자가 오직 원범과 욱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원범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영의정을 비롯한 신하들이 강화도로 찾아왔을 때 원범은 당연히 자신이 역모에 휘말리는 바람에 붙잡으러 온 줄 알고 산속으로 도망친다. 이때 둘째 형은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신하들의 설득으로 결국 왕이 되러 한양으로 가게 된다.

오늘의 코스 시작점인 용흥궁은 철종이 강화도에 있던 시절 살던 집이다. 원래 초가집이었지만 철종이 왕위에 오른 후 강화유수가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다. 용흥궁 현판은 철종의 다음 임금인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진다.

강화군 시내를 가로질러 남산길 산책로에 접어들어 걷다 보면 청하동 약수터가 나온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원범의 러브 스토리가 나온다. 설화에 따르면 이곳이 원범의 첫사랑 봉이를 처음 만난 곳이다. 그 후로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곳 약수터에서 몰래 만나 남장대를 지나 숲길을 걸어 찬우물 약수터까지 오가며 사랑을 키워갔다고 한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강화도령 첫사랑 길'이 된 것도 당시의 길을 따라 나들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봉이는 원범이 떠난 후에는 약수터 위의 거북바위에서 새벽마다 약수를 떠 놓고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나들길을 따라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남산 정상에 다다른다. 남산 정상부에는 강화산성의 일부인 남장대가 있다. 조선시대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진무영에 속한 군사시설로 감시와 지휘소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허물어진 것으로 2010년 복원했다. 남장대는 문이 아니라서 별도의 암문으로 성을 빠져나와야 한다. 암문은 누 없이 만들어놓은 문을 뜻한다. 성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만들어 적이 알지 못하도록 비밀리에 물자를 나르고 군사를 이동시키기 위한 용도로 만들었던 문이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걷다 보면 찬우물 약수터가 나온다. 여기까지가 원범과 봉이가 오가며 사랑을 나누었던 길이다. 철종은 왕에 오른 후에도 봉이와의 추억을 잊지 못해 가끔 사람을 보내 이 우물물로 빚은 막걸리와 순무김치 등을 궁궐로 가져와 그리움을 달랬다고 한다.

오늘 코스의 마지막 지점은 철종의 외가다. 외삼촌인 염보길이 살던 집으로 철종 즉위 후인 1853년 지어졌다. 원래 안채와 사랑채를 두고 H자형의 건물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행랑채 일부가 헐려 ㄷ자 모양의 본채만 남아있다. 집 인근에는 철종의 외할아버지인 염성화의 묘 등이 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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