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50만원 막막해요" 요금 올라도 못끊는다…OTT 중독의 덫

이보람 2024. 4. 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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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달리(DALL·E)'에게 출퇴근 버스 안에서 넷플릭스 등 동영상제공서비스(OTT)를 보는 직장인 이미지를 만들어달라고 의뢰해 생성된 일러스트. 이보람 기자

경기도 화성시 동탄 자택에서 서울 서초구 교대역 인근 회사까지 매일 왕복 2시간 30분 거리를 출퇴근하는 직장인 이영주(35·가명)씨는 아침 7시쯤 6008번 버스에 오른다. 이씨가 버스에 타자마자 하는 일은 유튜브 앱을 켜는 것. 음악을 들으며 모자란 아침 잠을 보충하거나 숏츠(shorts)를 보는 게 1시간 이상 걸리는 출근길 루틴이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들으면서 일한다. 퇴근 후 집에 가는 버스에서는 주로 넷플릭스를 본다. 즐겨보는 연애프로그램 ‘나는솔로’를 보다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내릴 정거장에 다다른다. 자기 전엔 잠자리에 누워 쿠팡에서 다음날 아침 6시 전까지 도착하는 ‘로켓프레시’(신선식품 새벽배송) 상품, 그 중에서도 마감세일 하는 제품을 ‘득템’하는 게 일상이다.

이씨가 이용 중인 구독서비스는 유튜브프리미엄·넷플릭스·티빙·네이버플러스멤버십·쿠팡 와우멤버십 등 총 5개다. 이씨가 이들 서비스에 지출하는 비용은 쿠팡 와우멤버십이 인상되는 8월(기존회원)이면 매달 4만3790원이 된다. 연간으론 52만5480원이다. 이씨는 “각 서비스별로 한달 이용금액은 큰 부담이 없고 각 플랫폼별로 제공하는 서비스와 장점이 달라 하나씩 추가하다보니 어느새 5개가 된 줄도 몰랐다”며 “연간 50만원이 넘는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되지만 이미 구독서비스가 주는 편리함에 익숙해져 어떻게 비용을 줄여야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지난해 말부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을 제공하는 각종 플랫폼의 가격 인상으로 구독이나 스트리밍에 물가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을 합친 ‘구독플레이션’ ‘스트림플레이션’이란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22일 ‘토종 OTT’ 티빙은 내달부터 연간회원권 가격을 20%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기존 9만4800원이던 베이직 구독권은 11만4000원으로 오른다. 광고로 인한 끊김 없이 유튜브를 볼 수 있는 유튜브프리미엄은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월 1만450원에서 1만4900원(안드로이드 기준)으로 올랐다. 유튜브프리미엄을 쓰는 아이폰 사용자들은 수수료 체계가 달라 안드로이드 사용자들보다 이용료가 더 비싸다. 매달 1만9500원, 1년이면 23만4000원이다. 넷플릭스도 비슷한 시기 9500원짜리 베이직 요금제를 없애고 1만3500원·1만7000원짜리 요금제를 내놨다. 디즈니플러스도 일찌감치 9900원이었던 월 요금을 1만3900원으로 올린 바 있다.

구독 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부담이 커지자 일부 MZ 소비자들은 구독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각종 꿀팁과 편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인터넷프로토콜(IP) 주소를 바꿔주는 가상사설망(VPN) 앱을 깔아 접속국가를 튀르키예 등으로 설정한 뒤 유튜브프리미엄을 1000~5000원대에 결제하는 ‘디지털이민’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방법이다. 각종 무료혜택만 찾아다니는 ‘체리피커’들도 나타났다. 네티즌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X’에 “월 4990원 짜리 네이버플러스멤버십에 가입한 뒤 한 달 동안 티빙을 무료로 볼 수 있다. 한 달 뒤 해지하면 된다” “쿠팡이 와우멤버십 인상하는 타이밍에 맞춰 네이버멤버십은 3개월 무료체험을 준다”고 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피클플러스’나 ‘링키드’ 등 OTT 계정공유 사이트도 성황이다. 파티장이 넷플릭스 계정을 생성한 뒤 공유하면 사이트에서는 OTT를 함께 볼 파티원을 매칭해주는데 매칭이 완료되면 사용자들은 넷플릭스를 광고형요금제인 5500원 미만으로 이용할 수 있다. 돈만 받고 계정을 탈퇴하는 ‘먹튀’를 못 하도록 신고 및 환불 장치를 만들어 이용자들을 확보했다.

국내외 각종 스포츠 경기를 유료로 독점 중계하는 스포TV(SPOTV)를 무료로 보기 위해 불법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있다. 이들 사이트 대부분은 실시간으로 스포TV에서 중계하는 영상을 다소 낮은 화질로 제공하면서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함께 홍보하고 있다. 불법 사이트로 연결되는 배너광고를 클릭하면 영상을 제공하는 식이다. 스포TV의 1개월 이용권은 베이직 9900원, 프리미엄 1만9900원이다.

22일 한 불법 동영상 스포츠 중계 사이트의 배너 광고. 배너를 누르면 불법 스포츠 토토 사이트로 연결되고, 배너를 누른 후에는 스포TV에서 최대 월 1만9900원을 지불해야 볼 수 있는 국내외 스포츠 경기 중계를 볼 수 있다. 사진 동영상 공유 사이트 캡처


이는 결국 시장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들의 일방적인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나스미디어가 지난달 발표한 ‘2024 인터넷이용자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이 된 인터넷 이용자 2000명은 일평균 3~4.5시간 동영상을 시청한다고 답했다. 이 중 80.7%가 OTT 서비스를 사용 중이라고 답변했다. 온라인 동영상 시청 서비스 1, 2위는 유튜브(94.4%)와 넷플릭스(60%)로 조사됐다. 쇼핑 유료 멤버십 1위는 쿠팡(72.2%)이었고 네이버(47.6%)가 뒤를 이었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각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중독 내지는 종속시켜놓고 기습적으로 큰 폭의 요금을 인상하는 것은 소비자 선택권에 지장을 주는 문제”라며 “가격 인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플랫폼 규제가 어느정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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