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안녕, 낯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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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 하지만 곧 만나게 될 누군가를 위해 작업대 앞에 앉았다.
그간 직접 만든 목물을 선물한 대상은 얼굴과 이름을 알고 일정 시간을 공유했고 추억과 애정이 쌓인 사람이었다.
횡단보도 앞에 나란히 서서 녹색신호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조차 공유한 적 없는 사람, 번화가 한복판에서 옷깃을 스치는 마주침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며칠 뒤면 강연자로 사람들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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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 하지만 곧 만나게 될 누군가를 위해 작업대 앞에 앉았다. 아껴두었던 가지각색의 곱고 예쁜 목재를 골라 톱질을 하고 가운데 작은 구멍을 뚫고 구슬을 깎았다. 그리고 펼친 책 모양으로 펜던트를 조각해 끈에 엮었다. 그렇게 열흘 남짓 적지 않은 개수의 책갈피를 정성 들여 만들었다. 내가 준비한 작은 선물이 기쁨이 되어 누군가의 일상을 가꿔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간 직접 만든 목물을 선물한 대상은 얼굴과 이름을 알고 일정 시간을 공유했고 추억과 애정이 쌓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횡단보도 앞에 나란히 서서 녹색신호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조차 공유한 적 없는 사람, 번화가 한복판에서 옷깃을 스치는 마주침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는 것이라고는 대한민국 땅에서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뿐인 타인에게 전하는 선물이었다. 이 경험은 새롭고 특별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그를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라고 느꼈다. 내 재주가 그런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어 기뻤다.
며칠 뒤면 강연자로 사람들 앞에 선다. 그 사람들과 나는 책이라는 단 하나의 공통점을 통해 연결된 인연이다. 비록 지금은 ‘누군가’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지라도 ‘처음 뵙겠습니다’ 인사를 건네고 눈을 맞출 인연들이다. 나무 책갈피를 깎고 다듬는 동안 베일에 싸인 그들을 상상하며 막연한 관심과 애정이 생겼다. 무슨 일을 하는 분일까, 어떤 표정을 자주 지을까, 이 봄에 꽃구경은 다녀왔을까, 요즘 골몰하는 생각은 뭘까, 어떤 꿈을 가슴속에 품고 있을까…, 하는 것들. 내 이야기를 전하는 강연이지만 되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손바닥에 얹고 주먹을 쥐면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선물에 담긴 내 마음은, 만남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궁금했어요. 기다렸어요. 반가워요. 안녕, 낯선 사람.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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