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보이스피싱 당한 변호사

2024. 4. 24. 00:3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법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제가 법원에서 일하거든요. 주소 변경은 종이로만 접수받는데, 지금 전화로 바뀐 주소를 말하라고요? 그리고 이런 전화는 법원 전화로 걸지 핸드폰 번호로 걸지도 않는데." 말하는 도중에 갑자기 싸한 느낌이 몰려왔다.

최근 민원인들의 편의를 위해 전화나 문자 서비스를 시도하는 법원 입장에서도 어쩌다 보이스피싱범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르니 꽤 난감하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


법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안지현씨죠?”라고 묻는다. “어디신데요?” 하고 되묻자 “등기우편물이 있어서 내일 송달해야 돼요. 몇 시에 계신가요”라고 한다. 가끔 우체국에서 이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어 “아침 일찍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네, 내일 받으시고 모레 오전에 서울동부지법에 출석해야 해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었나?’ ‘누가 나 모르게 소송을 걸었나?’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일모레 출석하라니 너무 갑작스러웠다.

“네? 내일 소환장을 송달하고, 모레 법원에 출석을 하라고요? 누구신데 언제 소환하는 걸 알아요.” 소환 날짜는 우편물 내용에 적혀 있지 봉투에는 적혀 있지 않다. 그러니 송달하는 사람이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날짜를 어떻게 알까 싶어 물었던 것이다.

“나와야 하니까 말씀드리는 거예요. 자세한 내용은 저희도 모르고요. 여기는 등기국입니다.” 아니, 뭔가 이상했다. 법원 등기는 보통 우체국에서 배달하는데, 난데없이 등기국이라니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그러다 문득 소환장 송달이 안 될 때 법원에서도 가끔 전화로 안내해주던 기억이 났다.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아니, 무슨 등기국에서… 사건번호가 뭔데요? 그리고 대체 어디로 배달해주겠단 거예요.”

“서울 ○○○요.” 이런, 사건번호는 묵묵부답이고, 옛날에 살던 주소를 말한다.

“저 거기 안 사는데요. 이사했는데요.”

“그럼 변경된 주소를 말해주시죠.”

“제가 법원에서 일하거든요. 주소 변경은 종이로만 접수받는데, 지금 전화로 바뀐 주소를 말하라고요? 그리고 이런 전화는 법원 전화로 걸지 핸드폰 번호로 걸지도 않는데….” 말하는 도중에 갑자기 싸한 느낌이 몰려왔다. 이 아저씨, 갑자기 자기를 못 믿겠으면 법원 민원실에 전화하라고 한다.

“예? 아, 됐어요. 거기 배달하면 반송되겠죠, 뭐” 하고 얼른 전화를 끊어버렸다. 혹시 몰라 인터넷 법원 사이트에서 내가 당사자로 된 사건이 있나 검색해 봤다. 한 건도 없었다. 휴, 다행이다. 내친김에 인터넷을 더 찾아보니 나와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이 많았다. 역시 보이스피싱이 맞았구나. 중간에 전화를 끊기 잘한 것 같았다.

한동안 검사나 검찰청 직원을 사칭해서 검찰청에 나오라거나, 금융 피해를 막으려면 빨리 계좌이체를 하라는 등의 보이스피싱이 유행했었다. 이제는 이런 수법이 많이 알려져서일까. 이번에는 법원을 빙자한 신종 보이스피싱이라니!

이미 내 이름, 전화번호, 구주소까지 다 알고 전화했다는 사실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게다가 태연하게 바뀐 주소까지 말하라고 했으니 영락없이 개인정보가 더 털릴 뻔했다. 만약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통화하는 경우 문자로 링크 주소를 보내거나 우편물을 보내며 피싱을 유도한다고 한다.

법원에서 근무하는 변호사인 나도 갑자기 법원 나오라니까 심장이 두근두근한데, 누구나 이런 전화를 받으면 깜박 속아 넘어가지 않을까.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다. 최근 민원인들의 편의를 위해 전화나 문자 서비스를 시도하는 법원 입장에서도 어쩌다 보이스피싱범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르니 꽤 난감하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만일 이런 전화를 받는다면 당당하게 사건번호가 뭐냐고 물어보자. 상대방이 우물쭈물한다면? 네, 바로 전화를 끊어주세요.

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