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3000명 장기이식 기다리다 사망… ‘이종’ 장기이식, 대안될까?

이슬비 기자 2024. 4. 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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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미국 보건부 산하 보건의료 자원과 서비스 관리국(HRSA)에서는 매일 평균 17명이 장기이식을 대기하다 사망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해 약 3000명이 장기이식 대기 중 사망한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9년 사이 이렇게 사망하는 사람이 무려 2.5배나 늘었다(보건복지부). 장기 이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은 늘고 있지만, 기증자 수는 제자리걸음 중이기 때문이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다른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이식이다.

이종장기이식 시대의 개막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지난달 16일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살아있는 인간에게 돼지 콩팥을 이식했다. 당뇨병, 고혈압 등으로 말기 콩팥 질환을 앓던 리차드 슬레이먼(Richard Slayman, 62)은 유전자가 변형된 돼지 콩팥을 성공적으로 이식받고, 2주만에 퇴원했다. 지금까지도 큰 문제없이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장기이식 시대의 온전한 개막은 언제쯤이 될까? 우리나라에서는 기술 발달이 어디까지 된 걸까? 이와 관련,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23일 '난치병 환자의 새 희망, 이종장기이식 현황과 미래' 콘퍼런스를 열었다.

◇이종이식 시도 벌써 60년… 면역거부반응 조절이 난제
이종장기이식이란 말 그대로 세포, 조직, 장기 등을 한 종에서 유전적으로 다른 종으로 이식하는 것이다. 다양한 동물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연구가 이뤄진 건 '돼지'다. 돼지의 각막, 췌도, 신장, 심장, 간, 폐 등 다양한 장기가 연구되고 있다. 그 이유는 장기의 크기, 형태 등이 유전학적, 해부 생리학적으로 인간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돼지 심장 크기는 인간의 94%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장기이식 개념이 나온 건 무려 60여 년 전이다. 1963년 미국 케이스 레임스마(Keith Reemtsma)가 최초로 침팬지 콩팥을 6명의 환자에게 이식했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종장기이식이 상용화되지 못한 건, 그만큼 많은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면역 반응이다. 우리 몸은 외부에서 물질이 들어오면 공격 시스템이 작동된다. 같은 종인 사람에게 이식을 받아도 이식 거부 반응이 나타나, 이를 예방하기 위해 약 3개월간 면역 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다른 종이기까지한 동물의 장기를 이식했을 땐 당연히 면역 거부 반응이 나타난다. 국내 이종장기이식 연구기업 옵티팜 김현일 대표는 "이종장기이식은 면역 거부 반응을 줄이기 위해 유전자 변형 과정을 거친 형질변환돼지를 이용한다"며 "실제로 형질변환돼지로 이식했을 때 생존 기간이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아무리 유전자 조작으로 면역 반응을 최소화해도 거부 반응을 완전히 예방하기는 어렵다. 대한이종이식연구회 회장인 건국대병원 외과 윤익진 교수는 "이종장기이식이 상용화되려면 이식 후 면역억제제를 동종 이식 수준으로 맞추고 허가받은 약제를 사용해야 한다"며 "하지만 이종이식에서 면역억제제 사용은 동종이식보다 복잡해, 맞춤형 면역 억제제를 개발하고 허가를 받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도 또 다른 난관이다. 돼지의 면역 체계로는 억제됐지만, 사람의 면역 체계로는 억제되지 않는 바이러스나 미생물 등으로 감염질환에 걸릴 수 있다. 실제로 메릴랜드대에서 지난 2022년 1월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환자는 이식 거부 반응 없이 회복했지만, 두 달 후 사망했다. 이유는 돼지 심장에서 발견된 돼지사이토메갈로바이러스(PCMV)가 이식 이후 인체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 메릴랜드대 연구팀이 돼지 심장 이식 수술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사진=미국 메릴랜드대
◇미국, 선두로 우뚝… 중국도 임상화 도전 중

하지만 이제야 이런 어려움을 뚫고, 성공 사례가 조금씩 누적되면서 상용화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대표적으로 가장 연구가 활발한 곳은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이종장기 임상시험과 임상화가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영장류를 기반으로 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었고, 결과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에는 69개의 유전자를 편집한 미니돼지 콩팥을 이식받은 원숭이가 최장 758일 생존했다고 e제네시스(eGenesis)와 하버드의대 등 연구팀이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게재했다. 또 미국은 2021년부터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 구명 임상시험 허가와 뇌사자를 대상으로 사람에게 이종장기이식 시도 경험을 쌓아왔다. 긴급 구명 임상시험 허가는 생명을 위협하고 장기간이나 중증으로 나타나는 질환에서 적절한 치료제가 없을 때, 개발 중이거나 판매 허가를 아직 받지 못한 치료제의 사용을 허가하는 제도다.

중국에서는 원숭이 등 영장류가 아닌 다른 동물로 진행한 연구 성과를 들어 바로 사람에게 진행하는 임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뇌사 상태의 50대 남성에게 유전자 변형 돼지 간을 이식했다. 인간에게 돼지 간이 이식된 첫 사례다.

반면, 다른 나라는 미국 기술을 도입해 이종이식을 빠르게 임상화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투자해야 하는 금액이 많고, 연구에 필요한 기간이 긴 데다 동물권 문제도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 호주, 일본 등 형질전환 연구가 활발했던 국가 모두에서 형질전환동물 연구와 생산이 크게 줄었다. 대신 미국 연구를 응용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미국 eGenesis 돼지 세포로 형질전환 돼지를 생산했고, 내년 임상화할 것을 목표로 연구에 돌입했다.

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권복규 교수 연구팀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개최한 '난치병 환자의 새 희망, 이종장기이식 현황과 미래' 콘퍼런스에서 건국대병원 외과 윤익진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사진=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우리나라, 미국 바짝 쫓고 있어… 투자 필요

우리나라도 아직 이종장기이식 연구가 활발하다. 특히 국가과제로 이종장기이식을 연구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보건복지부에서는 향후 4년 안에 이종장기이식 임상시험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국가과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콩팥, 심장, 간 등 장기와 췌도, 각막, 피부 등 세포 조직을 이식하는 영장류 대상 비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다. 특히 각막이식 비임상 연구는 우리나라 성과가 가장 우수하다. 윤익진 교수는 "한국은 형질전환 기술과 이식 면역치료 분야에서 미국 다음으로 앞서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형질전환동물은 2~3년 내 미국 수준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옵티맘은 형질전환돼지의 콩팥을 원숭이에게 이식해 221일의 생존 기록을 달성했다. 2026년까지 국립축산원과 협력해 6~11개 형질전환 동물을 생산할 계획이다.

게다가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는 이종장기이식 치료를 사회적으로도 수용하는 분위기다. 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권복규 교수는 “지난해 12월 19일부터 31일까지 성인 1007명을 대상으로 이종이식의 각종 쟁점과 한국 시민의 인식을 확인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며 “우리나라 국민 72.9%는 이종장기이식 치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응답자들은 치료에 동의하는 이유로, ‘난치병 치료 가능성 그 자체만으로 시도할 만하다’라는 의견이 53.1%로 가장 많았다. 반대하는 이유는 ‘안전성에 대한 우려’(45.4%)가 가장 컸다. 이종장기이식을 위한 영장류와 돼지 실험에도 응답자의 78.9%, 78.0%가 각각 찬성했다. 뇌사자를 대상으로 한 이종장기이식 실험에서도 찬성(60.9%)이 반대(32.7%)를 앞섰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이종장기이식 연구가 더 활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투자와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 윤 교수는 “향후 난치병 치료 기회를 넓히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가에서 사업으로 진행하는 만큼 다른 나라보다 투자자가 적다. 또 이종장기이식 기술이 발달하는 것과 달리 규제에는 허점이 많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선 장기기증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뇌사자로 판정할 수 있는데, 뇌사자에게 이종장기이식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따라서 미국, 중국 등 다른 나라처럼 뇌사자에게 실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명확한 이종장기이식 임상 가이드라인도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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