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대통령 손쉽게 만나는데... 국민은 목소리도 못 낸다 [소셜 코리아]

김새롬 2024. 4. 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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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의사가 과잉대표한 의료 문제, 밀실 담합 아닌 열린 공론 돼야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김새롬]

 시민들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TV 모니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지난 2월 말,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에 반대하며 병원을 떠났다. 온 국민이 의료체계에 대해 학습을 강요받다시피 하며 봄이 시작됐다. 그리고 총선을 1주일 앞둔 수요일, 윤석열 대통령이 집단행동의 당사자인 전공의들을 만나고 싶다며 일정을 비웠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며 겪어야 했던 숱한 제지나 폭력과 달리 전공의들은 너무나 손쉽게 테이블에 앉았다. 쟁의에 나선 노동자들이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며 감수하는 단식, 고공농성, 행진, 집회, 오체투지 같은 건 없었다.

정부와 언론은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중단한 것만으로 그들의 동태를 살피며 의중을 궁금해했다. 전공의 대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시시각각 주요 일간지에 기사화됐다. 대통령은 전공의 대표를 만나 140분의 비공개 대화를 나누며 의견을 경청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단 10분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들어 달라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윤 대통령이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파격 행보다. 국민의 삶에 필수불가결인 의료에서 전공의의 노동이 핵심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의료를 멈추는 일이 국가 통치에 어떤 위협이 될 수 있는지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의료는 누구의 것인가. 당연히 의료는 주권자인 국민의 복리를 위한 공적 인프라이자 필수재다. 의료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의 핵심에는 제때 치료받을 수 없는 사람들의 필요와 고통이 있다. 의사가 없거나 부족한 지역 주민들의 의료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 지속돼 왔다. 내심 의료산업화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듯한 정권의 의중이 군데군데 내비치더라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공식적인 명분은 지역의료를 강화하고 필수·중증 의료에 인력 배치와 자원 분배를 늘려야 한다는 데에 있다. 이런 진단은 정부와 시민사회, 그리고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사 일부가 공유하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실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의료 공백을 겪는 국민들의 상황과 입장에서 의료의 미래를 기획하려는 시도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의료가 이해하기 어려운 탓이고, 이는 의료를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료공백 피해자가 문제 제기 못하는 상황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전공의 1300여명이 참여한 '정책피해 전공의,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 집단고소 기자회견’이 열렸다.
ⓒ 권우성
 
상급 종합병원들이 축소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의료 공백의 잠재적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뇌혈관이 막히거나(뇌졸중) 대동맥 내막이 찢어진(대동맥 박리) 환자는 불안정한 의료 상황으로 인해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치명적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두통과 복통처럼 흔한 증상으로 시작하지만 빠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위중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상이 시작되고 진단을 받고서 병원을 찾아 헤매기 전까지는 누구도 자신이 의료 공백의 희생자가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없다.

몸속의 폭탄이 타이머를 째깍대기 시작한 후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누군가는 금방 병원을 찾아 어렵지 않게 치료를 받지만, 누군가는 병원에 찾아갈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병원에 간다고 해도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판단할 지식이 없어 헤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누군가는 의료 과오를 겪을 수도 있다. 확실한 건 환자와 보호자가 지금 자신이 겪는 의료가 어떤 의료인지를 판단할 여유도 지식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필수 의료 공백이나 저질 의료로 인한 비극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면서, 동시에 누구의 일도 아닌 이유다.

반대로 어떤 의료인들은 매일 이런 환자를 만난다. 말할 언어가 있고,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취재원을 선호하는 언론은 현안을 파악한다며 매번 의사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의료에 대해서는 전문가일지언정, 사회적 대화와 공적 자원 분배에 대한 학습은 거의 되지 않은 몇몇 의사의 불만과 문제의식이 의료의 '현장'을 채운다. 그럴수록 논의는 환자들의 고통과 곤란이 아니라 수도권 상급 종합병원에서 의사하기의 어려움에 집중된다.

문제를 한층 복잡하게 만드는 건, 의사 역시 피고용인이자 의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해관계나 편향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의사들이 내리는 진단은 대개 정부의 무능과 부작위를 향한다.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리적 병원 운영으로 인한 갈등이나 의료계 내부의 위계적 착취, 폭력적 조직 운영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뿐일까. 병원을 지탱하는 노동이 의사의 갑절을 훌쩍 넘는 간호사 등 의사 아닌 노동자로 인해 가능하다는 사실 정도는 가볍게 무시된다.

의사 단체가 환자나 시민단체 같은 비전문가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지금, 어떤 의사들이 과잉대표해왔던 의료체계의 문제를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논의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물어야 한다. 단숨에 정답을 찾을 수는 없는 문제다. 의료에 만연한 정보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했듯이 정책을 세우는 과정에서도 정보와 권력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부는 더 너른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거듭 강조한다. 의료개혁을 위한 공론장은 의사 집단과 관료 사이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를 과학으로 포장해 정당화하는 닫힌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 어렵사리 열린 의료개혁의 창이 의대 정원을 몇 명으로 정할지에 대한 밀실 담합이 아니라, 한국 의료의 가치와 미래에 대한 열린 공론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새롬 /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소셜 코리아 편집위원)
ⓒ 김새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새롬은 예방의학 전문의로서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관심 영역은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시민참여와 공공성, 젠더와 건강, 건강 불평등입니다.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의 공저에 참여했고, 팀 블로그 'Health Socialist Club'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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