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고발-압수수색 도돌이표... 강의 답안지도 가져가"

김보성 2024. 4. 2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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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위반 혐의 김광수 이사장 공개 반발... 시민단체 "총선 참패 후 결국 색깔론?"

[김보성 kimbsv1@ohmynews.com]

 국가보안법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과 수사 대상이 된 김광수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이 23일 부산경찰청 앞에서 이를 반박하며 공개 발언을 하고 있다.
ⓒ 김보성
지난 1월 <조선일보>의 국회 토론회 발언 보도를 발단으로 석 달 뒤 경찰이 강제수사에 나서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평화 위해서라면 북 전쟁관도 수용'이라고 말했다는 기사였는데, 이후 여러 언론의 보도와 여당 서울시의원의 고발을 거쳐 결국 국가보안법 혐의 압수수색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된 당사자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자신의 설명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일방적 주장이 횡횡하고 있다는 것이다. 23일 부산경찰청 앞을 찾아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김광수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은 "전형적인 공안탄압, 종북몰이가 재현되고 있다"라고 발끈했다.

30여 건 압수목록에 뭐 있나 봤더니

하루 전 김 이사장의 자택과 사무실에 들이닥친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 소속 경찰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며 압수수색 검증 영장과 범죄일람표를 들이 밀었다. 지난 1월 24일 토론회에서 김 이사장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역설하고, 지금까지 활동에서 찬양·고무나 이적동조에 회합·통신 등의 혐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갑작스러운 경찰의 방문에 김 이사장은 "자신을 북의 지령을 받는 간첩이나 반국가단체 구성원, 찬양·고무 인물로 규정했는데, 나는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북한의 정치·사상사가 전공인 김 이사장은 인제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경남대에서 각각 학·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련 연구와 함께 시민단체인 평화통일센터 이사장직을 역임해왔다.

논란이 된 국회 발언에 대해선 "북이 대남노선을 변경한 만큼 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다시 연방·연합 방식의 통일전략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강제하자는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조선일보의 해석대로) 북의 전쟁관에 동조하는 게 절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1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남북관계 근본변화와 한반도 위기 "평화의 해법 모색,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김광수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이날 행사는 윤미향 무소속 의원과 여러 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 윤미향 의원 유튜브 갈무리
 
경찰이 가져간 자료를 놓고서도 이해할 수 없단 반응을 보였다. 북한학 박사로 출간한 '통일로 평화를 노래하라', '전략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 책과 언론매체 기고문, 강연 자료 등이 대거 압수수색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 이사장이 강의한 대학 기말고사 답안지까지 목록에 올랐다.

그는 "책은 이미 출판사를 통해 시중에 판매되고 있고, 여러 자료는 석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모교인 북한대학원대학교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합법적으로 복사한 것들"이라며 "이도 모자라 대학 강단의 강의 내용조차 사상 검열을 하는 건 야만적"이라고 분노를 터트렸다.

"한번 생각해봐 달라. 북한 연구자가 북한 관련 자료로 논문을 쓰지 않으면 무슨 자료로 북한을 연구해야 하나? 한글 연구자가 영어로 된 자료로 한글 연구를 할 수 있나? 즉, 소지와 찬양·고무는 하등의 인연이 없다."

김 이사장은 "내가 잘못한 게 없으니 압수수색이 들어왔을 때도 그대로 다 살펴보라고 했다"라며 "학문적 양심에 의해 연구되고 이론화된 저서 논문은 공안적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압수수색과 이런 수사는 국가적 폭력과 같다. 적극적으로 맞서겠다"고 말했다.

여러 시민단체도 발끈 "입틀막의 확장"

총선 직후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김 이사장에 대한 국가보안법 혐의 수사에 노동·시민단체는 의심의 눈길을 강하게 보내고 있다. 이날 김 이사장의 곁에는 부산참여연대, 부산민중행동, 포럼 지식공감 등 50여 개 시민단체가 함께 섰다. 이들 단체는 "민심을 받아들이기보다 총선참패 후 철 지난 색깔론부터 꺼내 들었다"고 규탄했다.

공동 성명에는 일부 언론 보도 이후 보수단체나 여당 인사의 고발, 그리고 수사로 이어지는 도돌이표 같은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도 담겼다. 이들 단체는 고발자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정숙 여사까지 수사 의뢰한 점 등을 들며 "전형적인 여론몰이 공작"이라고 규정했다. 모두를 대표해 성명서를 낭독한 공은희 부산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입틀막의 확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사문화된 국가보안법이 윤석열 정부 들어 위력을 발휘하며 표현의 자유까지 옭아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을 맡았던 장경욱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국회 발언 보도로 사태가 이렇게 확장이 됐다. 북한학 연구자인데 이걸 문제 삼아버리면 어떻게 자유롭게 이야길 할 수 있겠나. 국가보안법이 우리 사회를 억누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본권의 위축과 훼손을 우려했다.
 
 경찰이 국가보안법 혐의로 김광수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자 23일 부산지역 5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부산경찰청 앞에서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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