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하지만 우아하게" 발레 거장의 '인어공주' 많은 걸 요구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다리가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인어의 꼬리를 본 따 만든 긴 바지를 입고 춤을 추죠. 그러면서도 아주 우아하게 보여야 합니다. 꼬리가 잘려나가는 장면에서는 추한 움직임도 할 수 있어야 하고요. 전통적인 발레 작품 이상으로 무용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작품입니다."
살아있는 발레 전설로 불리는 함부르크 발레단의 예술감독 존 노이마이어(85)는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립발레단의 신작 '인어공주'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과 발리의 전통춤에서 착안한 동작 등 도전적인 안무가 많지만, 국립발레단에는 뛰어난 무용수가 많다"면서다.
미국 태생의 노이마이어는 드라마 발레의 거장이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에게 무용계 최고 권위의 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안겨준 작품 '카멜리아 레이디'를 만든 이가 노이마이어다. 고전 발레 동작에 현대적인 연출과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해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노이마이어 작품의 특징이다.
이날 노이마이어와 함께 기자간담회에 나온 강수진 단장은 "발레를 영화나 드라마처럼 연출하는 천재적인 안무가"라고 노이마이어를 소개하며 "안무가와 직접 작업하며 예술적으로 성숙해질 기회를 무용수들에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공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국내 발레단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를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어공주'는 2005년 덴마크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로열 덴마크 발레단이 노이마이어에게 의뢰한 작품이다. 그해 4월 코펜하겐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됐고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에게 헌정됐다. 노이마이어가 이끄는 함부르크 발레단은 2007년 처음 인어공주 공연을 선보였고 이후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중국국립발레단 등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발레 '인어공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해피엔딩이 아닌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노이마이어는 "디즈니의 '인어공주'와는 다르게 안데르센의 원작으로 회귀했다"며 "인어공주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 그 비극성과 감동이 관객들에게 가닿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노이마이어는 "인어공주의 주제 중 하나는 '금지된 사랑', '어려운 사랑'"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을 준비하며 '인어공주'가 안데르센의 자전적인 삶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안데르센은 남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서 실연을 겪게 됐고, 그런 상황에서 '인어공주'를 썼다"면서다.
발레 '인어공주'에는 원작에 없는 캐릭터도 등장한다. 안데르센의 분신인 '시인'이 그 주인공. 공연도 시인의 눈물이 바다에 떨어지며 시작되는데, 그 눈물이 인어가 된다는 설정이다.
노이마이어는 안데르센이 남긴 말에서 힌트를 얻어 이 장면을 구상했다. 그는 "'우리 영혼은 깊다. 바다보다도 깊고, 다이버가 갈 수 있는 곳보다 깊다. 그걸 알게 되면 우리의 영혼, 나 자신을 알게 된다'는 안데르센의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1973년부터 지금까지 50년 넘게 함부르크 발레단을 이끌어 온 그는 내년에는 단장직을 내려놓을 계획이다. 그러면서도 "안무가로서는 신작을 내놓고 싶다. 아직 내 창의력이 정점에 다다른 것 같지 않아 그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한국 무용수들에 대해서는 "훈련이 잘돼 있고, 성실하다"고 평가했다.
발레 '인어공주'는 다음 달 1일부터 5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볼 수 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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