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차 놓고 사라진 건설사 대표…전북 정·재계 뒤집혔다 [사건추적]

김준희 2024. 4. 2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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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소방본부 구조대원 등이 지난 22일 전북 임실군 옥정호에서 보트를 탄 채 실종된 전북 한 중견 건설사 대표 A씨(64)를 찾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사업 특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A씨는 지난 15일 옥정호 인근에 승용차만 두고 사라졌다. 사진 전북특별자치도소방본부


임실 옥정호서 차만 덩그러니…실종 9일째


전북 정·재계가 발칵 뒤집혔다. '새만금 태양광 사업 특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전주 중견 건설사 대표 A씨(64)가 하루아침에 증발하면서다. 실종된 지 9일째지만, 오리무중이다.

전북경찰청은 23일 "전날 소방당국과 함께 A씨 수색에 나섰지만, 행방을 짐작할 만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며 "극단적 선택뿐 아니라 납치·밀항·강력범죄 피해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 아내가 지난 15일 오전 8시40분쯤 "남편이 '검찰 수사 때문에 힘들다'며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다"고 신고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임실군 운암면 옥정호 인근에서 A씨 승용차를 발견했다. 매일 100명 안팎의 인력과 보트·드론·헬기·경찰견·수중탐지기 등을 동원해 호수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옥정호 주변 도로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현재까지 A씨가 임실 밖으로 빠져나간 흔적은 없다"고 했다. 도대체 A씨는 어떤 인물이기에 이 사건의 '판도라의 상자'로 지목된 걸까.

2021년 12월 준공된 새만금 육상태양광 발전 시설 1구역 현장. 연합뉴스


30년 회사 운영…고교·대학 총동문회장 지내


건설업계에 따르면 A씨는 30년 넘게 회사를 운영하면서 연간 수주액을 50억원에서 1000억원대로 키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모교인 고등학교·대학교 총동문회장을 맡을 정도로 선후배 신망이 두텁고 사회 활동도 왕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A씨 업체가 2020년 10월 새만금 육상태양광 2구역 발전 사업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게 화근이 됐다. 이 사업은 군산시가 출자해 설립한 시민발전주식회사와 한국서부발전이 1268억원을 들여 군산시 내초동 새만금 산업연구용지 동쪽 1.2㎢ 부지에 99㎿급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는 게 핵심이다. 2-1공구(49.5㎿), 2-2공구(49.5㎿) 등 2개 공구로 나눠 추진됐다. 당시 2-2공구엔 5개 업체가 공모에 참여했으나, A씨 업체가 포함된 컨소시엄이 사업권을 따냈다. 새만금 육상태양광 발전소는 2021년 12월 준공, 가동 중이다.

그러나 감사원은 지난해 6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에서 "새만금 육상태양광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강임준 군산시장이 고교 동문 등이 운영하는 특정 업체에 혜택을 줬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감사원은 군산시가 연대 보증 조건 등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도 이들 업체와 계약을 체결해 15년간 110억원 이자 손해를 끼칠 것으로 봤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10월 30일 전북 군산시 새만금 수상태양광 발전소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압 수사 의혹…檢 "소환 통보도 안해"


이에 서울북부지검 국가재정범죄합동수사단(단장 민경호)은 지난해 7월 군산시청과 A씨 업체 등 건설사 2곳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수사에 나섰다. A씨는 건설 경기 침체에다 검찰 수사 대상이 되면서 자금 압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일각에선 강압 수사 의혹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서울북부지검 관계자는 "A씨 업체를 압수수색한 건 맞지만, 소환 조사는커녕 소환 통보를 한 적도 없다"고 일축했다.

검찰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서울북부지검은 지난달 18일 군산시 공무원 등과 접촉해 육상태양광 사업 공사 수주를 주선하고 그 대가로 업체 등으로부터 돈을 챙긴 혐의(알선수재)로 브로커 B씨를 구속했다. 같은 달 하순엔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새만금솔라파워 전 사업단장 C씨를 구속 기소했다. 새만금솔라파워는 한국수력원자력이 현대글로벌㈜과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이다. C씨는 2019년 5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용역업체를 통해 새만금 수상태양광 사업 관련 설계·인허가 용역 대금을 부풀려 지급한 뒤 현금으로 돌려받는 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2억4300만원가량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4조6000억 규모 새만금 수상태양광 발전 사업은 2025년까지 새만금호 전체 면적 약 7%인 28㎢에 2100㎿급 수상태양광 단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검찰은 지난 18일 알선수재 혐의로 강 시장 측근인 군산시민발전주식회사 전 대표 D씨를 구속했다. D씨는 현역 국회의원 등 정·관계 로비 대가로 C씨로부터 2020년 1억원가량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수상태양광 사업이 환경 민원 등으로 터덕대자 C씨가 비자금 일부를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강임준 군산시장. '새만금 태양광 사업 특혜 의혹'에 대해 군산시는 "시는 우선 협상 대상자 선정까지만 했고, 이후 협상·계약을 포함한 모든 업무는 SPC 주관 업무"라며 "업체 대표와 단체장이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줬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뉴스1


군산시의회 "뿌리 뽑아야" 수사 촉구


군산시의회는 지난 16일 '새만금 태양광 사업 의혹' 엄정 수사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다. A씨 실종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도내 경제계는 뒤숭숭하다. 김정태 전주상공회의소 회장(대림석유㈜ 대표)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22일) 의원총회가 있었는데, 몇 분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걱정했다"며 "회사 내부 사정까진 알 길이 없지만, 지금으로선 무사히 돌아오기만 바라고 있다"고 했다. 군산시는 어디로 불똥이 튈지 수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찰 헬기가 지난 22일 전북 임실군 옥정호 상공에서 실종된 건설사 대표 A씨(64)를 찾고 있다. 사진 전북특별자치도소방본부

전주·군산·임실=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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