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날아가 단 한 사람을 위한 노래도 불렀다"

김경훈 2024. 4. 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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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10년을 담은 <520번의 금요일>

[김경훈 기자]

세월호라는 단어는 늘 복잡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 왜 그들을 구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아함과 분노, 소중한 이들을 잃고 거리에 서야만 했던 유가족들을 보면서 느끼는 슬픔….

여러 감정 중에도 가장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부끄러움이다. 10년이 흐르는 사이, 처음의 분노와 슬픔은 조금씩 무뎌졌다. 반복되는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어느새 세월호를 잊고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부끄러움 때문에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10년을 기록한 책 <520번의 금요일>(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온다프레스 펴냄)을 집었다. 나와는 달리 세월호를 결코 잊을 수 없는, 세월호와 무관한 '일상'을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세월호를 기억하고 싶었다.

세월호 가족들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있었다
  
  <520번의 금요일> 표지
ⓒ 온다프레스
 
세월호 가족들의 10년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복잡한 시간이었다. 갑작스레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식의 시신이라도 찾길 초조하게 기다리던 시간,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 전국을 누비며 서명을 받던 시간, '자식 팔아 보상금 챙기려고 한다'는 근거 없는 비난에 맞서던 시간, 화장실도 없는 동거차도의 외딴 산에 천막을 치고 세월호 인양을 감시하던 시간이 겹겹이 쌓여 10년이 됐다.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쉽게 상상하거나 떠올리기 힘든 시간이었다. 가령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에서 활동하는 영만 엄마 이미경씨가 "아이 대신 내가 그 꿈을 꾸고, 내가 노래한다고 위안 삼는"(346쪽)다는 생각으로 아들이 좋아하는 랩을 공연하는 마음을 나는 헤아리기 어렵다.

아직도 트라우마 때문에 영화를 보다가 물이 나오는 장면에서 영화관을 뛰쳐나가는 생존자 인서씨의 마음, 그래서 딸과 영화를 관람할 때면 딸 눈치를 보느라 숨도 못 쉰다는 엄마 경희씨의 마음 또한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그 복잡하고도 조심스러운 세월호 가족들의 시간을 섬세하게 기록한다.

그러나 세월호 가족들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결코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님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책을 읽는 내내 세월호 가족 곁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연대하는 시민들이 눈에 들어왔다.

참사 초기에는 인명 구조를 위해 배를 끌고 몰려왔던 인근 주민들, 팽목항에 모인 세월호 가족들에게 청심환, 소화제, 가제수건 등을 나눠줬던 약사들, 제대로 된 의료 지원조차 못 받으면서도 구조 작업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선 민간 잠수사들이 있었다.

동화 작가들은 세월호에 관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팽목항 방파제에 '세월호 기억의 벽'을 만들었고, 또 누군가는 2014년부터 문자 그대로 '매일' 왕복 2시간을 오가며 팽목성당에서 세월호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 유명한 활동가나 전문가가 아니라 이름 없는 시민들이 보여준 놀라운 연대였다.

특히 세월호 가족 10여 명, 시민 40여 명이 함께 활동하는 4·16합창단은 존재 자체가 경이로운 연대다. 직장생활을 하는 시민단원들이 휴가를 대부분 합창단 공연에 쓰면서 평균 주 1회 이상의 공연을 하고 있는데, 그 모임이 10년째 유지되고 있다.
 
시찬 아빠 박요섭 씨는 "시민단원들이 없었다면 합창단은 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 유가족은 몸과 마음이 힘들 때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습이든 공연이든 두세 명만 모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시민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었기에 합창이 가능했다. 그들은 함께 어디든 갔다. 어느 날은 연습이 끝난 밤 10시,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응원하기 위해 달려갔고, '세월호 의인' 김동수가 재판 과정에서 자해를 하고 입원했을 때 제주도로 날아가 단 한 사람을 위한 노래도 불렀다.(414쪽)
 
말하자면 세월호는 우리 모두가 함께 부른 거대한 노래였다. 그리고 그 우리 속에는 내가 있었다.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며 진상규명을 외친 부모들이 최루액 섞인 물대포를 맞았던 거리에 내가 있었다. 세월호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억하는 시민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의 사월>을 보고, 오랜만에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단 내가 있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잊지 않겠습니다'고 외치며 서울시청 광장에 모인 시민들 사이에 내가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나'들이 모여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자고, 다시는 그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자고 함께 외쳤다.

연대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로
 
 지난 3월 11일 서울 중구 재난피해자권리센터에서 세월호 10주기 기록집 '520번의 금요일'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출간 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책을 읽은 뒤, 세월호 10주년을 맞아 나온 여러 책 중에서 굳이 이 책을 읽은 이유가 뭔지 새삼스럽게 생각해봤다. 돌이켜보면 나는 무의식중에 이 문제를 나의 문제가 아니라 세월호 가족들의 문제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세월호 가족 10년의 기록이 곧 세월호 10년에 대한 총정리라고 생각했다. 그건 어쩌면 세월호에 대한 부채감을 느끼면서도 세월호를 내가 연대해야 할 문제로만 여겼을 뿐, 정말 내 문제로 체감하지는 못했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세월호는 정말 세월호 가족들만의 문제일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세월호 가족인 호성 엄마 정부자씨의 말을 함께 나누고 싶다.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2학년생들이 쓰던 교실을 존치하는 문제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 진상규명을 위해 다니느라 교실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요. 교실을 남겨달라는 말이 부모 욕심으로 비칠까 걱정도 됐고. 그런데 시민들이 먼저 말씀하시더라고요. 참사의 교훈을 상기시켜줄 교실을 그대로 남겨야 한다고. 우린 누굴 위해 진상규명을 하는 걸까, 그때부터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190쪽)
 
나도 이 이야기를 읽고 진상규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새삼스레 돌아봤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소중한 아들, 딸, 형제자매를 떠나보낸 가족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세월호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참사의 교훈을 상기함으로써 비슷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세월호 가족을 위한 연대를 넘어 우리 스스로가 안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주 망각했던 사실, 10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느새 희미해지던 생각을 이 책 덕분에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

그렇듯 세월호라는 이야기는, 세월호 가족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불러온 노래이자 불러야 할 노래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뒤늦게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노래이기도 한 이 노래의 끝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했다.

노래의 끝이 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이 노래를 끝내야 하는지는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세월호라는 노래는 그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 그러니 앞으로도 세월호를 기억하고, 연대함으로써 이 노래를 제대로 끝맺어야겠다는 다짐을 새기면서, 무겁지만 충만한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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