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재 목사의 후한 선물]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2024. 4. 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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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는 대한민국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자살률은 회원국 평균보다 두 배 넘게 높았다. 계절별로는 3월에서 5월까지 자살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생명이 움트는 계절에 스스로 생명을 거두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인권을 부르짖는 시대에 인권의 근간인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것도, 연약한 우리 인생이 빚어내는 아이러니다.

높아지는 자살률과는 반대로 결혼하려는 청년 비율과 결혼한 부부의 출산율은 점점 낮아진다. 이뿐 아니라 많은 태아가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한 해 낙태 건수는 5만여건이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추정으로는 100만여건에 달한다고 한다. 낙태를 죄로 규정한 우리 형법은 2019년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다. 형법 개정도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현상은 사실 한 문제다. 바로 고통보다 죽음을 낫게 여기는 인식이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는 생각에는 고난 없는 행복이 생명보다 더 높은 가치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에 매인 우리 인생을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겔 16:6) 우리 생각으로는 피투성이가 된 인생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은데 하나님은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은 고난 없는 행복보다 위에 있다.

얼마 전 우리들교회의 한 유명 연예인 성도가 청소년들에게 간증했다. 어려서부터 전성기 때까지 끊임없이 겪었던 고난을 이야기했다. 피투성이처럼 된 자신이 교회로 인도돼 살아난 기적을 나누며 청소년들에게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간증을 듣던 고등학생 중에는 매우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던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일탈과 가출은 물론 자퇴까지 했다. 심지어 여자친구와 동거 중이었고 최근에는 여자친구의 임신 소식도 들었다.

결혼도 안 한 두 청소년에게 출산과 양육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두려운 사건이었다. 낙태는 이 둘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다. 매주 교회를 다니던 그 학생도, 아직 믿지 않는 여자친구도 낙태 쪽으로 마음이 굳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교회 지체들은 이 학생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벌떼처럼 달려들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설득했다. 학생의 상황에서 낙태는 인본적 가치관으로는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의 지체들이 하도 “안 된다”고 하니 학생은 갈등했다. 그러던 중 자신도 낙태될 뻔했다고 고백하는 연예인 성도의 간증을 듣게 된 것이다.

간증을 마친 성도는 이 학생을 앞으로 초청했다. 하루 전 자기 생일에 받은 케이크를 이 학생에게 주며 자신이 낙태될 뻔했던 인생이었음을 고백했다. 태아가 나중에 자라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르는데 그 기회를 빼앗지 않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이처럼 ‘벌떼 공동체’의 격려를 받은 이 학생은 그 자리에서 “아이를 낳고 생명을 책임지겠다”고 결단했다. 수치와 두려움의 고난을 피하는 대신 생명을 지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믿음의 공동체도 태아가 지켜지고 가정이 거룩하게 중수되도록 계속해서 기도하며 돕기로 약속했다.

우리 주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보신다.(마 16:26) 한 사람 한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한 사람의 존재 자체는 그가 가진 조건이나 처한 상황에 상관없이 존중받고 지켜져야 한다. 타락한 세상은 여러 이유로 이 한 사람의 존엄성을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한 사람을 찾아 구원하는 사명을 지켜야 한다. “피투성이가 되었으니 죽겠다”고 울부짖는 한 사람을 찾아 우리가 주의 사랑으로 끌어안고 품어줄 때 그 사람은 주님을 만나 “피투성이라도 살겠다”고 결단할 것이다. 이런 생명의 변화가 교회마다 일어나길 기도한다.

김양재 우리들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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