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오늘은 맞고 내일은 틀리다

2024. 4. 2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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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 화가

카카오 택시를 탔다. 타자마자 기사님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더니 말문을 여신다. “대파값 아는 남편 있습니까? 저도 모릅니다.” 이쯤 되면 무슨 말이 나올지 알만 하다. “아니 운영이 어려운 동네 편의점을 일으키는데도 이삼 년은 걸리는데 하물며 나라는 어떻겠습니까?” 내가 웃으며 말한다. “기사님 제가 어느 편인 줄 알고 이런 말씀 하세요?” 하니까 “답답해서 그럽니다. 온 국민이 이십 오만원 받아서 형편이 나아질 것 같습니까? 이거 국민을 상대로 한 뇌물이에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민심도 실망스러워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직한 소통 불능과 입만 열면 거짓말 중에서 거짓말이 이긴 겁니다.” 문득 택시 속에서도 정치 이야기를 듣는 게 피곤해서 묵묵부답하니 기사님이 또 말씀하신다. “아침에 어떤 분은 제가 이런 말을 하니 내려달래서 내려드렸어요.”

「 정치성향 다르면 외계인 대하듯
어떻게 옳다 그르다 확신 가질까
내로남불·부정부패 사라지기를

그림=황주리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지인들 역시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럴 때는 조심해야 한다. 친했던 사람들이 정치 성향이 다르면 서로 외계인 대하듯 하기 일쑤다. 잘못 하면 마음도 멀어진다. 살얼음 걷듯 조심조심해도 언성이 높아지기 일쑤다. 늘 선거 때마다 잠을 설쳤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길에서 스쳐 지나간 그 누구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는 그런 쓸쓸한 느낌. 누구나 느껴 본 적 있을 것이다. 선거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가면 그때 그 시절 내가 옳았던 건지 분별이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문득 이런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아니 반대였나?

아마 영화 속에는 상반된 두 가지 버전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처럼 인간 상황을 정확하게 지적한 제목을 본 적이 없다. 내 가까운 친구나 내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심지어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르는 판에 생판 만난 적도 없는 정치인을 옳다 그르다 어떻게 확신을 가질 것인가? 모든 판단은 시간이 걸린다. 죽을 때까지 모르고 말 일들 투성이리라.

어쩌면 믿음 가는 사람은 대의를 위해 미움받을 용기가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끔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친북 성향이 강한 분들은 북한으로 나머지는 따로따로 생각이 같은 분들끼리 모여 싸우지 않고 살면 좋지 않을까? 또 거기서도 자기네끼리 피 터지게 싸울지 모른다. 세상에는 지금 내 편이라도 어리석은 자가 있기 마련이고 지금 내 편이 아니라도 지혜로운 자가 있기 마련이다. 지혜로운 정치, 지혜로운 국민, 지혜로운 나라, 상상만 해도 설레는 이름이다. 늦은 시간이라 또 택시를 탔다. 그 날 따라 말을 많이 하는 기사님을 만났다. 이번에는 다른 생각을 가진 기사님이다. 이번에도 그냥 듣고만 있었다. 나는 가끔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보다는 그저 우리가 두 개의 다른 나라 같다고 생각한다. 사실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거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을 나당연합군의 힘으로 통일한 게 잘못된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 오래된 뿌리 깊은 감정이 대를 이어 계속 내려오는 건 아닐까?

오늘의 세태를 누군가는 검찰 독재라 하고 누군가는 국회 독재라 한다. 2024년에도 독재라는 진부한 낱말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걸 나는 믿을 수 없다. 이렇게 공들여 쌓아온 우리들의 눈물 나는 민주주의를 응원한다. 오래전 언젠가 브루나이 공화국에 가본 적 있다. 석유 부자 나라인 브루나이는 정월 초하루가 되면 전 국민에게 국왕이 세뱃돈을 준다. 우리도 그렇게 석유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우리에게는 석유보다 값진 지혜가 있으면 좋겠다.

1987년 처음 뉴욕에 갔을 때 라디오를 좋아하는 나는 메이드 인 코리아 라디오를 샀다. 누구나 메이드 인 재팬, 소니를 사던 시절이었다. 24시간 열려있는 한국 식료품점에 가면 없는 것이 없었지만 김치를 차이니즈 김치라고 써 붙여 팔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며 사는 한국인들은 그럼에도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이제 세계 어디를 가나 메이드 인 코리아가 인기 절정인 꿈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

부정부패가 완전히 사라져 그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나라, 권력을 가진 사람부터 솔선수범하는 나라,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시침 떼지 않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들의 나라. 내로남불 하지 않는 사람들의 나라.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이 권력과 명예와 대접받음의 상징이 아니며 국민의 혈세로 주는 비싼 월급보다 자발적인 애국심으로 일하는 꿈같은 나라, 그런 곳이야말로 진정 진보되고 진화된 아름다운 우리나라일 것이다.

황주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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