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출산 장려하려면 ‘아동 친화적 동네 환경’부터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2022년의 최저치(0.778명)를 또 갈아치웠다.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제시했다. 정부와 여당은 여성가족부를 흡수해 출산 정책을 전담할 부총리급 ‘인구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안정적인 ‘저출생 대응 특별회계’를 신설하고, 중소기업 종사자에게 아이와 함께할 시간을 주는 ‘아이 맞이 아빠 휴가(유급)’ 1개월 의무화, 중소기업 대체 인력 시니어 채용 시 월 240만원 지급 등의 대책도 내놨다.
이런 대책을 시행하면 과연 출산율이 올라갈까. 지금까지 정부와 기업의 출산 지원 정책은 아이를 낳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아이를 낳아 청소년기까지 잘 성장하도록 돕는 ‘아동·청소년 친화적 동네 환경’ 조성 대책은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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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대책 내놔도 출산율 내리막
위험한 생활 환경에 아이들 노출
아이 눈높이에 맞는 정책 내놔야
」
최소 몇십만 명 이상 인구가 사는 도시 지역을 보면 두 지역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는 신도심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주택·빌라 등이 밀집된 구도심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은 신도심보다 구도심 인구가 더 많다. 그런데도 신도심보다 구도심 거주자의 삶의 질과 거주 환경이 훨씬 척박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신도심을 선호한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아동·청소년 친화적 동네 환경 조성을 위해 다음 몇 가지 관점을 제시하려 한다. 첫째, 정부는 아동·청소년이 생활하기에 안전한 동네를 제공하고 있나. 전혀 그렇지 못하다. 많은 구도심 골목길에는 사람이 걸어가는 인도가 따로 없다. 대신 길 양쪽의 주차 차량과 길 가운데를 지나가는 자동차용 차도만 있다.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도 아슬아슬하게 차량을 피해가야 한다. 지난 2월 어른 두 명이 구도심 골목을 걸어가다가 자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4000달러에 근접한 나라에서 이처럼 위험한 환경에 아이를 내놓고 키워야 한다면 누가 기꺼이 아이를 낳겠나.
둘째, 아동·청소년이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고, 공 차고, 다른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거의 없다. 집과 상가만 즐비한 동네에 아이들의 공간을 제공하지 않은 때문이다. 고 이어령 선생이 문화부 장관 재임 시절에 동네 자투리땅에 조그마한 공원을 조성한 것 뿐이다. 이 또한 어른들의 쉼터로 쓰인다. 학교 밖에는 동네 어디에도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운동을 할 수 있는 놀이터가 제대로 없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돌듯 오가며 생활한다.
셋째, 인구 30만~50만 명의 소도시나 대도시의 기초 지자체에 어린이를 위한 동물원이 있나. 필자가 사는 인천은 올해 인구가 300만 명을 돌파했는데도 동물원이 없다. 동물원 운영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토끼와 염소 등으로 구성된 소형 동물원도 불가능한 것일까. 어린이들이 토끼나 염소에게 풀을 먹이면서 함께 어울리는 세상을 배우는 공간마저 우리는 인색하다. 이런 메마른 곳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을까.
넷째, 동네나 길목의 신호등은 사람 친화형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의 교통 신호체계는 사람의 보행을 위해 자동차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통행을 위해 사람이 기다린다. 자동차 통행을 기다리다가 겨우 몇십 초 주어진 시간에 건너가려 뛴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사람 친화형 건널목과 신호등 체계에 감탄한 기억이 있다.
다섯째, 자동차 천국이란 나라에서 아동·청소년이 안전하게 등·하교할 수 있는 자동차 속도 제한이 유연하게 적용되는가. 이 또한 아니다. 운전자는 운전자대로, 보행자는 보행자대로 모두 경직되고 획일적인 속도 제한 표시와 운영에 피곤해하고 짜증 내고 있다.
왜 이런 현상과 문제가 고쳐지지 않을까. 대부분 현장을 도외시한 어른 공무원의 눈높이에서 획일적이고 탁상공론적 정책을 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린이 과제는 정책 소비자인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청소년 과제는 청소년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펴야 하는데 이것이 결여돼 생긴 폐단이다. 자동차와 인구 밀도가 높은 사회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동네 환경을 사람 친화형, 특히 아동·청소년 친화형으로 바꿔야 구도심에서도 아이를 낳아 잘 키우겠다는 희망을 키우지 않겠는가.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순자 전 인하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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