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의 영화몽상] 만남과 이별과 그다음

이후남 2024. 4. 23.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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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 문화선임기자

대도시에서 1인 가구로 살아가며 외로움을 느끼던 이에게 반려동물, 아니 반려 로봇이 생긴다. TV 광고를 보고 전화로 주문해 배달받은 상자에는 부품이 가득하다. 가구 조립하듯 설명서를 보고 하나하나 조립한 끝에 로봇이 눈을 뜨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펼쳐지는 ‘로봇 드림’은 지난달 개봉한 장편 애니메이션. 앞서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1인 가구의 세대주는 개. 놀라긴 이르다. 극 중 대도시 미국 뉴욕의 모든 주민이 동물로 그려진다. 때는 미래가 아니라 1980년대. 로봇이 활보하는 걸 누구도 신기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그 시절 뉴욕 풍경과 일상을 빼닮았다. 최첨단 기술과 인간의 공존 같은 것이 이 작품의 주제는 아니란 얘기다.

장편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사진 영화사 진진]

어린아이처럼 호기심 많은 로봇과 함께 개는 즐거운 일상을 이어간다. 한데 가까운 해변 유원지로 놀러 간 날, 함께 집에 돌아오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100분 넘는 상영 시간 동안 대사는 나오지 않는다. 대사가 전혀 없는데 감동을 준다는 식의 입소문을 들은 대로다. 원작인 그래픽 노블 역시 대사가 없다.

새삼 놀란 건, 대사가 없다는 걸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 집에 돌아가고픈 로봇의 마음은 현실과 환상을 뒤섞은 장면을 통해 거듭 그려진다. 특히 흥겨운 뮤지컬 장면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순간이 인상적이다. 현실은 다르다. 낯선 이들에게는 반려 로봇이 아니라 사물이나 고철처럼 보일 뿐이다.

과연 얼마나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집에 돌아가게 될까. 이제 진짜로 놀랄 차례다. 이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대목은 모험 끝의 귀환이라는 익숙한 결말 대신 전혀 새로운 지점으로 관객을 이끈다.

이를 보면서 떠오르는 건 ‘패스트 라이브즈’. 널리 알려진 대로 한국계 셀린 송 감독의 데뷔작이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 간 여자, 그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닌 남자가 12년 뒤 온라인으로 연락이 닿고, 다시 12년 뒤 만나는 이야기다. 직장인이 된 남자는 작가가 꿈이었던 여자가 현재 사는 미국 뉴욕으로 향한다. 그 만남의 결과는 로맨스물이 흔히 보여주는 운명적 재회와 사뭇 다르다. 삶을 과정으로서 포착하는 감독의 섬세한 시선이 우정과 애정을 아울러 인연에 대한 해석과 어우러진다.

외로움을 덜어주고 힘이 되어준 무언가를, 누군가를 되찾고 싶은 건 인지상정. 때로는 그러다 ‘지금, 여기’에 소홀해지거나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것에 상처를 주게 될 수도 있다. ‘로봇 드림’이 그런 얘기란 건 아니다. 이 글은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했다. ‘로봇 드림’의 마지막 대목은 말없이, 춤과 음악만으로 충분히 극적이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혹할만한 애니메이션이다.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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