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음악이 희망을 가져다줄까?
마크 허먼 감독의 ‘브래스트 오프’(사진)는 생존의 마지막 수단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과 뼈저린 절망을 담은 영화다. 영화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1992년 영국의 한 탄광촌이다. 폐광 위기에 처한 그림리 탄광에는 10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브라스 밴드가 있다. 광산이 문을 닫으면 밴드 역시 해체될 운명이지만 그럼에도 그림리 탄광 밴드는 브라스 밴드 전국 대회에 출전한다. 그리고 준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해 런던의 로열 앨버트에서 열리는 결승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게 된다.
광부들이 승리감에 도취해 웃고 떠들며 마을로 돌아온 날, 그들 앞에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온다. 폐광이 최종적으로 결정됐다는 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리 탄광 밴드는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리는 최종 결선에 참가한다. 여기서 이들이 선택한 곡은 로시니의 ‘윌리암 텔 서곡’이다. 이 곡은 모두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이 영화에서 연주한 대목은 제4부 ‘스위스군의 행진’이다. 스위스군의 행진은 트럼펫의 팡파르로 화려하게 시작한다. 씩씩하게 행진하는 스위스 군인들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군중들의 흥분된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로시니의 ‘윌리암 텔 서곡’은 스위스 판 ‘시련과 극복’의 드라마다. 시련의 끝에는 당연히 승리가 찾아온다. 그래서 그런지 피날레는 신나고 멋지다. 팡파르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도록 만든다. 하지만 그뿐이다. 희망찬 음악을 연주한다고 해서,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랴. 화려한 음악이 끝나고 나면, 깊고 어두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 음악이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이라 과신하지 말자.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얘기일 뿐이다.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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