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주변 아기 울음소리 [김선걸 칼럼]
며칠 전 우연히 만난 한 청년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출산율 하락에 대해 대화하던 중 그는 말했다. “대기업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것 아니겠습니까?”
파트타임 잡을 뛰며 열심히 살고 있지만, 말대로 안정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곳(직장)’이라는 개념이 주는 무거움을 다시 느꼈다.
최근 눈에 띄는 두 가지 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미국발이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4나노(㎜) 이하 초미세 최첨단 반도체 공장 얘기다. 앞으로 5년 내에 3만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한다. 옥수수밭 동네의 천지개벽이다. 도로가 뚫리고 타운하우스가 건설되며 오피스 시장은 물론 쇼핑몰도 북적거린다. 텍사스 일간지인 오스틴아메리칸스테이츠맨은 “삼성전자 직원과 같은 안정적 고수입자가 늘어나며 인근 부동산 시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른 하나는 일본발이다. 뉴욕타임스는 대만의 반도체 제조 업체 TSMC가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배추밭에 건설한 공장을 보도했다. 화학 회사와 장비 회사들이 속속 들어섰고 쇼핑몰, 호텔도 대만에서 출장 온 직원들과 일본 손님들로 북적인다. 현지의 기술대학은 전기공학 과정을 늘렸고 졸업생 17명이 1차로 공장에 채용됐다. 일본 정부는 7000명 이상의 고용 창출을 기대하며 역대 최대인 12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미국 현지 보도 중 ‘삼성전자 같은 안정적 고수입 직장’ 수만 개가 만들어진다는 표현에 눈이 갔다. 구직을 하는 주변 청년들에게 큰 희망일 것이다. 이 ‘안정적 직장’을 가진 청년 3만명이 결혼한다면? 자녀를 한 명씩만 낳아도 3만명, 두 명씩 낳는다면 6만명이다.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서 태어난 아이가 총 23만명이다. 그 4분의 1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가정일 뿐이다. 직장이 있다고 결혼, 출산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와 고용은 최소한 결혼과 출산에 필요한 환경을 제공한다. 일단 삶의 기초인 경제력은 줄 수 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3대 경제 주체는 가계, 기업, 정부다. 가계는 소비를 통해 수요를 창출하고, 기업은 생산을 통해 공급을 담당하며, 정부는 관리하는 주체다. 결국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주체는 기업이다. 수입도 없고 직장도 없는데 결혼과 출산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두 뉴스가 미국과 일본의 소식이라는 점이 아쉽다. 첨단 산업 육성도 그렇지만, 인재를 육성하든 외국 직원을 데려오든 그곳에 ‘안정적인’ 수만 가구가 거주할 미래도 부럽다. 글로벌 기업을 유치한다던 한국 정부의 계획들은 다 어디로 갔나. 최근 반도체산업협회 분석에 따르면 한국이 주는 인센티브가 미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TSMC 같은 기업이 올 리 없다.
4월 총선에서 “대기업이 임금 인상을 스스로 자제하고, 중소기업이 임금을 높이도록 할 것”이라고 공언한 정당이 있었다. 지지자들마저 ‘지금이 어떤 시대냐’고 비판했다.
다른 나라는 수백조원을 지원해 기업을 초대하는데, 한국은 임직원 월급을 빼앗겠다고 광고하는 꼴이다. 이런 뉴스가 글로벌 기업 CEO들에게 전파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듣는 순간 오려던 기업도 돌아갈 것이다. 이 당은 ‘조국혁신당’이다. 총선으로 원내 제3당이 됐다.
이 정당은 과연 글로벌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우리 청년들의 미래가 어떨지 관심이 있을까.
국회에 입성했으니 달라졌으면 한다. 현실을 알고 생각을 바꿔야 나라가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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