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덕에 내집 마련, 돈 모으고 지구도 구했습니다
[이준수 기자]
▲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표지 |
ⓒ 미래의창 |
우리 부부는 임대 아파트 월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8년 뒤 자가를 마련하고 2년 후에는 대출을 정리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어떻게 가계를 꾸려나갔냐는 질문에 우리 부부의 대답은 하나다.
"친환경 생활을 했습니다.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를 쓰면서 신축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얼토당토않은 답변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진실이다. 큰 아이가 태어날 무렵 깨달았다. 이제 지구는 어린이가 안심하고 살기에 안전한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시멘트 공장과 화력 발전소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탓에 우리 집은 자주 청소를 해야 했다. 거실 베란다에는 검은 먼지가 끼었고, 물에서는 부연 석회질이 섞여 있었다. 아토피를 앓았던 큰 아이에게는 가혹한 환경이었다.
이웃 도시에서는 석탄 화력발전소가 건설되고 있었다. 중국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자 아파트 분리수거장은 폐기물로 가득 차 악취가 났다. 고탄소 과소비 생활이 우리 문명을 파괴하고 지구를 망치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저탄소 저소비 생활을 해야겠다, 이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나와 아내는 2021년~2022년 오마이뉴스에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라는 시리즈 연재를 했다(연재 바로보기). 환경 관련 칼럼 중 1인 가구나 딩크, 비혼 분들이 쓰신 글은 찾아보기 쉬웠지만 맞벌이 4인 가구의 이야기는 아직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희생하고 손해 보는 느낌의 '친환경' 대신 '이득'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지구 환경을 지키는 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 정서적으로 얻어갈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썼다.
▲ 오마이뉴스 시리즈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
ⓒ 오마이뉴스 |
나는 겁쟁이라서, 공포감을 조성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오히려 힘이 빠진다. 물고기가 내장을 들어내고 죽고, 가죽만 남은 곰의 앞발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는 그런 장면들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로 인해 설령 2050년에는 멸망을 맞이하게 된다 하더라도,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싶었다.
우리 부부는 직업적인 환경 활동가는 아니다. 강원도에서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우리가 몸으로 부딪힌 것들을 진솔하게 썼다. 1년 간 플로깅을 하면서 집게 질 하고 쓰레기봉투를 채웠다. 플라스틱 제로 라이프를 위해 천주머니를 들고 마트와 시장을 다녔다. 스테인리스 통에 '쿼터' 사이즈 아이스크림을 받아 왔다. 채식을 고집하다가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어 무너지는 심정을 실패담으로 기록했다.
우리 활동의 중심에는 '가계부'가 있었다. 하루 단위로 식비와 생활비로 나눠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하루 식비와 생활비를 2만 원으로 정해두었다. 단순히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지 않고 하루치 금액의 상한을 정해둔 까닭이 있다. 상한이 없으면 기분에 따라 마구 돈을 낭비하게 된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신용카드는 가진 돈 보다 더 많이 쓸 수 있다. 카드 회사는 고객의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결제를 늦춰주거나, 현금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훗날 이자를 붙여 청구서를 내미는 것이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체크카드는 통장 계좌의 잔고 범위 내에서만 결제를 할 수 있다. 현금 생활을 하는 분은 체감하겠지만, 손에 돈이 쥐어져 있을 때는 과소비를 하기 힘들다. 나에게서 돈이 빠져나간다는 실감이 되기 때문이다.
직접 쓰는 가계부... 조금 귀찮지만, '오히려 좋아' 외치는 이유
수기로 가계부를 쓰는 것도 유사한 효과가 있다. 매일 가정의 지출 항목과 누적 잔액을 관리하다 보면 우리가 어떤 욕구가 강한지, 어떤 것을 참지 못하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 포장용기 챙겨 장보기 |
ⓒ 이준수 |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것들은 대단치는 않지만 꾸준히 하기에는 약간 귀찮은 요소가 있다. 일회용 포장용기에 담긴 음식을 이용하고 싶지 않아서 집에서 도시락을 싸 다니는 식의 일이다.
별도로 집에서 김밥을 말거나,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져가서 먹었다. 매번 장을 보고 설거지를 해야 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 네 식구가 할 수 있는 몫을 한 것만 같아 도시락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육식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루 한 끼 채식을 이어가고 있다. 비건 수준의 완전 채식은 어렵지만 적어도 '내 돈으로 붉은 육류'를 사지는 않으려 한다. 볶음밥에서 햄을 빼고, 카레에 고기 대신 버섯을 넣는 식이다. 처음에는 음식의 기본 레시피를 해치는 기분이 들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익숙해지면 담백한 맛이 좋아진다.
동물성 식품인 우유 대신 원액 99.9% 두유를 마시고 있다. 두유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스타벅스에서 카페라테를 주문할 때 우유 대신 두유를 요청할 수 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유행처럼 나눠주는 굿즈도 가급적 거절한다. 굿즈 중에는 정성 들여 의미를 담은 물품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잦다.
지방에서 19만 킬로미터를 운행한 차 한 대를 유지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웬만큼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엘리베이터도 매우 애용한다. 기계 장치로 작동하는 것을 덜 이용하면 두 가지 이점이 있다. 탄소화합물 배출을 줄일 수 있고 나의 신체건강 지수는 높일 수 있다.
책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건에서 살아가는 4인 가족이 어떻게 친환경 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가 담겼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져서 '1) 중요한 것만 남기는 친환경 라이프 2) One health, One wealth 3) 지구를 위한 다정한 마음' 등으로 전개된다.
서점에 가보니 이 책은 특이하게도 주제 분류가 '환경', '경제/경영' 두 분야에 모두 체크되어 있다. 맞네, 싶어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이 책은 어느 쪽에 초점을 두고 읽어도 상관없다. 우리처럼 '월세'에서 시작한 가정에서 '자가'를 마련하기 위한 방법으로 책을 집어도 된다. 또는 절제하는 생활의 기쁨을 통해 지구 환경에 기여하고픈 마음에 읽어도 괜찮다. 혹은 건강한 신체와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참고사항, 힌트를 얻기 위해 책을 펼쳐도 나쁘지 않다. 이야기에서 어떤 것들을 건져 올릴 것인가는 오로지 독자님께 달려있다.
나와 아내는 책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니었으나, 돌고 돌아 책이 되었다. 여러 그루의 나무가 종이를 만드는 데 희생되었다. 제작 과정에서 다량의 전기가 소모되었다. 무엇보다 정말 많은 분들의 노고와 시간이 담겼다.
기왕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으니 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건강한 지구를 위한 노력은 너무나 중요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큰 소리로 알릴 수밖에 없었다. 부디 여러분의 가정의 가계부와 귀중한 우리의 자연이 안녕할 수 있기를 쓰레기를 줍는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뉴스타파 PD가 본 코미디 같았던 검찰의 증인신문
- 이화영 "검찰 전관이 회유, 이재명 진술하면 주변 수사 멈추겠다고"
-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 노골적인 기시다 총리... 일본엔 '격노' 안하는 윤 대통령
- "대구시는 홍준표 사유물 아니다" 공무원들도 박정희 동상 반대
- [오마이포토2024] 분노한 이태원 유족, 전 서울경찰청장 머리채 잡아
- 영수회담 '준비회동' 불발에 민주당 "미숙한 처리 유감"
- 고 양회동 유족측 "<조선>에 민원실 CCTV 전달... 정부가 배상해야"
- 정말 피하고 싶었는데... '진상 건축주'가 되어버렸다
- 뉴욕 한복판에 나타난 히드라 괴물, 부산에도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