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위기설 없다"지만…저축은행∙건설∙유통업 신용 빨간불
최근 저축은행과 건설, 유통, 석유화학 업종의 신용도에 ‘빨간불’이 켜지며, 4월 위기설이 재점화됐다. 이들 업종은 고금리ㆍ고유가ㆍ고환율(원화가치 하락)의 삼중고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수익성은 악화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 우려에 자산 건전성까지 흔들리고 있어서다.
22일 한국기업평가는 보고서 ‘리스크 대시보드(Risk Dashboard)’에서 신용위험 우려 업종으로 건설, 유통, 석유화학, 저축은행을 꼽았다. 여기에 속한 기업은 상대적으로 신용등급 하락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기업 입장에선 신용등급이 하락할수록 자금 조달(회사채 발행) 부담이 커진다.
한국기업평가는 금융사 가운데 저축은행을 가장 우려했다. 지난해 무리한 고금리 경쟁으로 수익성이 나빠진 상황에서 PF 부실 우려로 연체율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권 전체 PF 대출 잔액(135조6000억원) 가운데 저축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7%(9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문제는 대출의 질이다. 저축은행은 자기자본 대비 브릿지론(토지 매입 등 사업장 초기 개발금) 비중이 높고, 시공사 신용도가 낮은 소규모 사업장에 주로 자금을 빌려준 것이다. 지난해 4분기 저축은행의 PF대출 연체율은 전 분기(5.6%)보다 1.3%포인트 오른 6.9%다.
김경무 한국기업평가 평가기준실장은 “올해 실적과 재무안전성 악화가 지속돼 다수 저축은행 신용도 하락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바로저축은행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내렸다.
PF와 직접 연관된 건설사도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요즘 신용평가사가 건설업종의 신용도를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PF 우발채무와 함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는 점이다. 특히 고환율ㆍ고금리에 철근 등 원자재 가격은 물론 인건비가 뛰고 있다. 공사 원가율이 높아지면 기업이 돈을 벌어도(매출액) 손에 쥐는 수익성은 떨어진다. 지방 중심으로 미분양 주택이 급증한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말 건설사 5곳의 신용등급(전망 포함)을 낮춘 데 이어 올해 들어 2곳을 추가 조정했다. 최근 신세계건설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낮췄고, 한신공영의 등급전망은 ‘BBB(안정적)’에서 ‘BBB(부정적)’로 바꿨다.
유통 업종도 전망이 밝지 않다. 소비심리가 위축된 국내 유통가에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싼 가격’을 앞세워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서다. 변화하는 사업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오프라인 매장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올해 이마트의 신용등급은 ‘AA’에서 ‘AA-’로, 롯데하이마트는 ‘AA-’에서 ‘A+’로 하향 조정됐다.
중장기적으로 석유화학 기업의 신용등급 하방 압력도 커질 수 있다. 한국 석유화학 제품 대부분은 중국으로 수출되는데 중국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의 지난해 수출액(지난해 11월 누적 기준)은 8억424만 달러로 1년 전보다 47.1% 급감했다. 여기에 중동 정세 불안에 유가가 급등하면서 원가 부담도 커졌다. 일부 석유화학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는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 이유다.
상당수 전문가는 장기간 이어진 경기 부진, PF 리스크 등으로 국내 기업의 신용 관련 위험이 잠재돼 있다고 평가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고환율ㆍ고금리ㆍ고유가 등 기업을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개선될 기미가 없다”며 “여기에 “(주요국의) 정책금리 인하시기가 밀리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정부에선 각종 위기설에 대해선 일축했다. 금융당국은 특히 건설업계에서 제기된 PF 4월 위기설에 대해선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강조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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