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리트머스 시험지’ 일본에 선교적으로 빚져”

김아영 2024. 4. 2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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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전해진 곳에는 순교자의 역사도 함께 있습니다.

일본 기독교 수난사가 세계에 알려진 것은 20년가량 이 역사를 알린 한국 선교단체 한일연합선교회(WGN·이사장 정성진 목사)의 헌신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최근 WGN이 주최한 '나가사키 순교지 탐방'에 참여한 김동주 호서대 기독교학부·역사신학 교수는 22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교회는 일본에 선교적으로 빚을 졌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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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톡]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복음화 힘써야 하는 이유
일본 나가사키현 오무라시의 대표 순교 유적인 '스즈타 감옥터'에 한일연합선교회 요청으로 십자가가 세워진 모습.

복음이 전해진 곳에는 순교자의 역사도 함께 있습니다. 현재 일본은 ‘영적 불모지’로 복음화율이 1%가 채 되지 않으나 30만여명이나 순교한 수난사가 서려 있습니다.

1549년 스페인의 프란치스코 자비에르 선교사 일행은 일본 규슈 남부 지역인 카고시마 상륙 후 히라도에서 본격적인 일본 선교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평등사상에 기반한 기독교의 급격한 팽창을 우려한 막부 정권이 들어서면서 선교사 추방령과 금교령을 내렸습니다. 1597년 26인의 순교를 시작으로 30만명 이상의 선교사와 신자들이 ‘믿음과 생명을 맞바꾼’ 순교를 했습니다. 1889년 미국의 노력으로 제국 헌법을 발포하고 기독교의 자유가 누리기 전까지, 일본은 250여년간 기독교 흑역사가 지속됩니다.

일본 기독교 수난사가 세계에 알려진 것은 20년가량 이 역사를 알린 한국 선교단체 한일연합선교회(WGN·이사장 정성진 목사)의 헌신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정재원 WGN 총괄본부장은 2005년부터 나가사키 오무라 등 일본 내 순교 현장을 발굴해 한국교회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선교는 어렵습니다. 요나가 이스라엘을 괴롭힌 니느웨에 복음 전파하길 주저했던 것처럼, 일본은 한국과 역사·정치적으로 얽히고설킨 나라기에 일본 선교에 헌신한다는 것은 치열한 영적 전쟁을 수반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김동주 호서대 기독교학부·역사신학 교수가 최근 한일연합선교회(WGN) 주최 ‘나가사키 순교지 탐방’에서 강의하는 모습. WGN 제공

그럼에도 왜 한국교회가 일본 선교에 헌신해야 할까요. 최근 WGN이 주최한 ‘나가사키 순교지 탐방’에 참여한 김동주 호서대 기독교학부·역사신학 교수는 22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교회는 일본에 선교적으로 빚을 졌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파한 선교사들은 일본을 선교 베이스캠프로 두고 한국 선교를 준비하고 진행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히라도 마쯔라 자료관에 있는 니콜라 토리고 작가의 '일본 기독교의 승리 화형'이라는 제목의 작품.

일본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제임스 헵번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신자인 이수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수정은 1885년 ‘신약 마가전복음서 언해’를 번역했는데 이때 헵번의 번역본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조선에 들어오기 전 일본에서 이수정을 만나 한국어를 배우고 이수정 번역 성경을 읽었습니다. 이때 이수정과 함께 있던 공간이 바로 헵번 선교사의 사택이었다고 합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내한 이후 자주 일본을 방문해 헵번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의 집에서 신세를 졌습니다.

김 교수는 “헵번 선교사는 언더우드 선교사 등 일본에 머물던 한국 선교사들에게 일본 선교의 노하우를 전수했다”며 “한국 선교를 준비하는 이들은 일본에서 한민족의 문화와 지식을 배웠는데 짧으면 3개월, 길게는 1년까지 한국 선교를 준비했다. ‘리트머스 시험지’인 일본이 한국 선교의 베이스캠프로 사용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우리는 단지 순교 신앙의 강화만을 보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 순교가 선교의 나무로 자라기 위한 씨앗으로 이해해야 하며 이 일이 한국교회에 맡겨졌다고 생각한다”며 “왜냐하면 세계 기독교 역사는 피해받은 민족에 의해 보내진 선교사들이 주변 지역을 복음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일본교회에 선교의 빚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 외국인 선교사들은 일본 선교를 바탕으로 한국선교를 기획하고 준비했습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일본의 순교 영성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도 도전을 줍니다.

지난 19년간 수만명의 한국 크리스천이 나가사키 등 일본 순교지를 방문하자 일본 교계는 물론 공무원들도 이 쪽에 눈을 떠 자발적으로 기독교 강의를 듣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2018년 나가사키현은 WGN의 적극적인 협력 속에서 가톨릭 건축물이 아닌 기독교 순교 자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정재원 WGN 총괄본부장은 “내년 순교지 사역 20주년을 맞아 북미와 유럽 등 세계교회가 나가사키 탐방에 참여하도록 사역을 전면 확대하고 오무라 지역에 문화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말 한마디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수많은 일본 성도들은 묵묵하게 순교를 선택했습니다. 옆 나라 일본 기독교의 역사지만, 이들의 순수하면서도 담대한 믿음은 400여년이 지난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많은 과제를 주게 합니다.

사세보·히라도(일본)=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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