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예산 70%가 연예인 섭외비…"도와달라" 술집 도는 총학
“사장님, 조금 더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지난 18일 오후 5시 가게 문을 막 연 전북대 인근 먹자골목의 한 호프집에서 10여분 간 흥정이 벌어졌다. 가게 사장과 마주 선 사람은 전북대 총학생회 소속 학생이었다. 대외협력국장인 송은수(24)씨는 다음 달 8일부터 시작하는 전북대 축제와 제휴를 맺을 가게를 찾고 있었다. 몇 차례 ‘하소연’ 끝에 축제 기간에 전북대 학생이 올 경우 술값 10% 할인(음식은 제외) 혜택에 합의를 봤다. 송씨는 “아직 찾아갈 가게가 20여 곳이 더 남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생들 손꼽아 기다리는 대학 축제는 ‘총학 중간평가’
총학은 대학 축제의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연예인 공연’ 외에도 각종 홍보 부스와 주점 설치, 이벤트존 운영, 상품 제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총괄한다. 문제는 예산 확보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축제 섭외 대상인 연예인 몸값은 뛰는 반면 학생회비 납부가 저조해지고 교비 지원도 줄어드는 추세다.
대학가에 따르면 서울의 큰 대학의 경우 축제 예산은 2억원 안팎이다. 이는 교비 지원과 총학 자체 예산, 그리고 동문이나 기업의 후원금으로 마련된다. 수도권의 한 대학 총학생회장은 “연예인 섭외에 축제 예산의 60~70%가량이 쓰인다. 그래서 나머지 프로그램 운영은 항상 빠듯할 수밖에 없다”며 “부족한 예산을 외부에서 끌어오는 것이 총학과 축제기획단의 중요한 역량”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축제가 무산된 사례도 나왔다. 국민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소셜미디어 계정에 “대동제를 추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논의했지만, 비대위 체제로 인한 예산 감소와 인력 부족으로 진행이 무산됐다”는 공지 글을 올렸다. 총학 선거가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며 축제를 주관할 총학이 없어지자 축제도 덩달아 취소됐다.
부족한 예산 메우려 메일 200통에 ‘읍소’까지
총학이 축제 자금 마련을 위해 기대는 대상은 주로 기업과 대학가 상가다. 축제 기간에 기업 홍보 부스를 차려주는 조건으로 100만~150만원가량의 부스 이용료를 받거나, 기업 제품을 협찬받아 이벤트 상품으로 사용하는 식이다. 지난해 인천대 총학생회는 현대자동차와 함께 교내에서 캐스퍼 차량의 홍보 부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큰손’이라 불리는 대기업의 후원은 ‘하늘에서 별 따기’ 수준이라는 게 총학생회의 하소연이다. 지난해 서울의 한 사립대 총학생회에서 축제를 총괄한 관계자는 “통신사부터 과자 업체까지 200곳이 넘는 기업에 일일이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이 온 곳은 서너 곳에 불과했다”며 “답장이 온 곳은 절박한 마음에 직접 기업 홍보팀을 찾아가 제안서를 바탕으로 미팅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쩐의 전쟁’으로 번진 축제… “축제 의미 되찾아야”
기업들은 쏟아지는 후원 요청에 난감한 입장이다. 특히 주류업체는 전국 모든 대학의 1순위 섭외 대상이지만, 실제로 협찬이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현행법상 술을 무상으로 제공할 수 없지만, 다짜고짜 술을 협찬해달라는 요청도 많다”면서 “아이스버킷 제공이나 이벤트존 운영 등 합법적인 방식으로 진행하는 후원만을 거르다 보니 상반기에 진행하는 협찬은 20건 정도다”고 말했다.
박서림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대학 축제의 본질은 연예인 공연이 아닌 학생들이 주인공이 돼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이라면서 “과도한 섭외 경쟁도 자제해야겠지만, 축제 수준을 높이기 위한 현실적인 예산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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