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동의 최초의 질문] AI·플랫폼 등 기술혁신, 국회가 손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2024. 4. 2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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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브레튼 유럽 연합 내부시장담당 집행위원이 지난달 12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에서 열린 ‘인공지능법’ 토론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유럽의회가 지난달 13일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을 둘러싸고 전 세계 모든 인공지능 관련 업계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 법의 전후로 인공지능 분야의 기술발전 속도와 방향이 달라지고, 국가 간 인공지능 분야의 경쟁력 순위가 재편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핵심은 인공지능 기술과 서비스의 위험을 4단계로 범주화하고, 사회적 점수 평가 등 올바르지 못한 기술사용을 제어하는 데 있다. 서비스 출시 전 적합성 평가도 밟도록 하고 있고, 가장 중요하게는 학습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인공지능 업계는 기술발전을 가로막는 악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 유럽의회, 세계 최초 AI법 통과
미·중도 국가적 차원에서 조율
이해 충돌 불가피한 기술혁신
조정의 틀 마련이 국회의 역할

모범적 역할 보여준 유럽의회

우리나라도 대응책 마련에 부심이다. 인공지능 기본법 제정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전반적으로는 유럽의 인공지능법을 무작정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지향점 자체가 뚜렷하지 않은 상태다. 어쨌거나 유럽이 던진 커다란 최초의 질문에 세계가 답을 찾느라 바쁜 모양새다. 중요한 것은 유럽이 바라는 사회와 기술의 모습을 유럽의회가 법안으로 담아냈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윤리 관련 법안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사진제공=플리커닷컴]

이처럼 서로 다른 쟁점을 하나의 법안으로 담아내는 과정이 쉬웠을 리가 없다. 유럽의회는 2020년 인공지능 법안의 기초가 될 백서를 발표했다. 그 후 분야별 전문가 논의를 바탕으로 세부 결의안들을 하나씩 만들었고, 이들을 종합하여 2021년 인공지능법 초안을 발표했다. 그 후로도 무려 3년간의 지난한 논의를 거쳐 마침내 법 제정에 이른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개발자, 서비스기업, 사용기업, 시민단체 등 서로 다른 목소리를 끊임없이 경청하고, 조율해 나감으로써 기술혁신을 위한 의회의 모범적 역할을 잘 보여주었다.

인간사회는 제도의 거물망 속에서 돌아간다. 무엇을 목표로, 어디에, 얼마나 자원을 투입할지는 사회적 합의, 즉 제도로 형성된 인센티브의 지형도에 따라 결정된다. 앞서 인공지능법과 같이 기술발전의 방향 또한 관련 법 제도로 형성된 인센티브 구조에 반응하여 더 진작되기도 하고, 가로막히거나, 휘어지기도 한다. 입법권을 가진 의회는 그런 면에서 한 국가 내에서 기술혁신의 정도와 방향을 설정하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기구다. 기술혁신을 위한 정부의 각종 정책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부 역시 국회가 정한 법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므로 의회의 영향력은 그 어떤 국가기관과도 비교할 수 없다.

기술 경쟁 위해 적극 나서는 각국 의회

미·중 기술패권이 격화하면서 전 세계가 기술경쟁력과 기술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생결단식으로 경주를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의회가 서로 질세라 나서고 있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미국 의회가 프론티어법, 반도체 및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 미국혁신경쟁법, 인프라투자 및 일자리법 등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미국의 기술혁신을 진작하는 한편, 대(對) 중국 기술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사진 셔터스톡

유럽도 뒤지지 않는다. 유럽의회 차원에서 유럽반도체법·핵심원자재법·탄소중립산업법·사이버탄력성법 등을 연달아 내놓고 있고, 프랑스·독일 등 각국 의회 차원에서도 외국인투자법이나 기술혁신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들을 속속 제정하고 있다. 앞서 예로 든 유럽의회의 인공지능법도 인공지능과 플랫폼 기술에서 유럽이 주도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깔고 있다.

중국의 경우 정부와 의회를 별도로 논의하기 어렵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중지를 모아 기술혁신을 진작하기 위해 나서고 있는 점은 다르지 않다. 중국제조 2025, 14차 5개년 발전계획, 쌍순환전략, 군민융합전략, 정부가이던스기금, 중국표준 2035 등을 통해 기술패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쉼 없이 제시하고 있다.

국회 내 초당적 연구모임부터 만들자

기술혁신과 관련하여 의회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충돌할 때 조율하는 공론의 장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법과 같이 기술개발자 혹은 공급기업과 기술수용자 및 시민사회 간의 지향이 충돌하는 사례는 무수히 널려있다. 특정 기술을 놓고 국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들이 서로 상충하는 경우도 많다. 신기술이 환경이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없는지, 특정 분야 기업들의 기술혁신을 지원하는 것이 다른 분야 기업들을 역차별하는 것은 아닌지 등 관점마다 의견이 치열하게 갈릴 수 있다. 승차공유서비스 타다의 사례에서 보듯 신기술이 특정 직역의 근로자나 사업주들의 영업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 사회적 반발이 극심한 경우도 있다. 이처럼 기술혁신과 관련하여 무지개 빛깔로 다른 목소리가 있을 때, 한데 모여 토론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가능한 대비책을 함께 마련하는 공론의 장이 바로 의회다.

기술혁신과 관련하여 새롭게 시작할 우리 의회 앞에 놓인 과제는 하나같이 한국의 앞날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무엇보다 지금 연구현장을 혼란의 도가니로 빠트려 놓은 예산 대폭 삭감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기술패권 시대에 우리나라의 기술주권을 지킬 기술혁신법들도 시급히 내놓아야 한다. 신기술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맞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조율할 프로세스도 정립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국회 내에 기술혁신의 최신 동향을 학습하고, 그에 맞는 법 제도를 어떻게 만들지 진지하게 토론하는 초당적 연구모임부터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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