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그러나’ 대통령

박태인 2024. 4. 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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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인 정치부 기자

비슷한 뜻을 지닌 단어인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그러나’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다. 역사적 평가를 피할 수 없는 대통령에게 그 차이는 모든 걸 말해주기도 한다.

3년 전 작고한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에서 자주 들린 문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중앙일보 2021년 10월 28일자 1면).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이던 박남선씨는 빈소를 찾아 “광주학살에 책임 있는 전두환 등 어떤 사람도 사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은 그런 입장을 밝혀 조문을 온 것”이라고 했다. 조문을 했던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빛과 그림자가 있고, 빛의 크기가 그늘을 덮지는 못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다한 점을 평가한다”고 했다.

지난 16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시민들이 TV로 중계되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생전 유언을 남겼다. 그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가까웠다. 5·18 쿠데타와 12·12사태의 주역임에도 불구하고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북방정책 추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추징금 완납 등을 평가했다.

갑작스레 노 전 대통령 일화를 꺼낸 건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 때문이다. 야권에 192석을 내준 뒤 나온 첫 육성 메시지엔 ‘그러나’와 ‘하지만’ 같은 접속사가 15번이나 등장했다. “올바른 국정 방향을 실천하려 최선을 다했다”면서도 그러나 “세심한 영역에서 부족했다”는 것이 요지였다.

대통령실은 “그러나 뒤 발언에 방점이 찍혔다”고 했지만, 그렇게 느끼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좋은 정책을 몰라준 언론을 탓하는 건지,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을 질책하는 건지, 대통령 탓만 한 여당에 섭섭함을 드러내는 건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비슷한 단어가 달리 들리는 건 뒷받침하는 실천의 차이 때문 아닐까. 여소야대 국회를 상대했던 건 두 대통령 모두 마찬가지였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인 정해창 노태우센터 이사장은 회고록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에서 “노 대통령은 생활물가, 유엔 가입, 걸프전쟁 의료진 파견 문제 등 당면 문제를 김대중 평민당 총재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고 했다. 3당 합당 뒤 원내 의석이 없던 민중당 이우재 상임대표까지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윤 대통령이 ‘그러나 대통령’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줄곧 개혁의 당위성을 외쳤으나 실제 이룬 것은 없었던 대통령이 아닌, 극단의 정치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미래의 토대를 닦은 정치인으로 남길 바란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회동이 곧 열린다. 변화의 출발점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박태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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