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트너’된 미·일…美 전문가 "한국, G8 먼저 노려야" [특파원 리포트]
지난 1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으로 일본은 미국의 ‘글로벌 파트너’가 됐다. 양국 정상의 공동성명엔 “미·일이 직면한 도전은 지역을 초월한다”며 동북아는 물론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전 세계 이슈가 적시됐다.
회담 다음날인 11일 기시다 총리는 미국 의회 연설에서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 일본이 미국과 함께한다”고 말했다. 양국 관계와 관련해선 “어깨를 맞대고”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썼다. 향후 미국의 핵심 파트너 역할을 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한 셈이다.
중앙일보는 미국의 전문가들에게 평가를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회담이 전후 일방적으로 미국에 의존해왔던 양국의 안보 체계에 대한 구조적 변화를 선언했다고 평했다. 동시에 변화된 미·일 양국 관계가 일본에 유리하지만은 않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은 보다 실용적인 외교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안보에 대한 ‘투자’ 선언”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파트너란 의미를 정확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수십년간 세계 안보에 많은 비용을 부담해왔고, 80년이 지난 지금 동맹국들이 비용을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객관적으로 회담의 실제 의미는 일본이 동맹국 중 최초로 미국의 안보에 투자를 대폭 늘리기로 공식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앞으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한국에게도 파트너십 유지를 위한 안보 투자를 요구하는 방식의 접근을 하게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를 역임한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 부대표는 “‘미국이 일본을 글로벌 파트너로 격상시켰다’는 건 잘못된 표현”이라며 “엄밀히 말하면 국제 안보에서 주요 플레이어가 되려는 열망을 가진 ‘일본이 미국의 글로벌 파트너가 되기로 자처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맥스웰 부대표는 “군사·안보적 측면의 일본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하지만 주한미군과 함께 움직이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이제서야 특정 작전에 자위대가 기여할 계기를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일본에 주도권을 뺏겼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한국·호주·필리핀 등이 그동안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해왔던 역사와 ‘동맹의 교과서’인 한·미동맹의 의미를 경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美 고립주의에 대한 반작용”
동북아 외교와 한·일 관계에 정통한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교수는 “기시다 총리가 미국에 안보 역할에 대해 ‘후퇴하지 말라’고 한 것이 상황을 직시할 단서”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목도한 일본이 고립주의를 내세워 글로벌 리더 역할에서 후퇴하는 미국에 ‘일본을 버리지 말라’고 호소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나이더 교수는 “내가 만나본 일본 고위 인사들은 미국이 일본 방어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었다”며 “이 때문에 국내 정치적 위기에 몰린 기시다 총리가 방위 협력 등 실현되기 어려운 과장된 표현을 내세워 우선 성공한 회담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국빈만찬 방식과 영어 의회 연설 등 이번 동선 역시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까지 의식하고 있다는 정치적 위기감이 드러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일본은 미국이 어떠한 경우에도 일본을 구할 거라고 전제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전후 상황을 극복한 완전한 주권국가로 돌아가겠다고 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크로닌 석좌는 특히 “역사의 교훈을 버려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일본의 ‘평화헌법’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현실적으로 자위대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군대’가 됐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필라2’는 사실 韓의 옵션”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동맹 전략이 기존의 ‘중심축과 바큇살’(hub and spokes) 형태에서 ‘격자형’(lattice-like)으로 전환했음을 공식화하고 있다. 미국이 개별국과 별도 동맹구조를 형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동맹국 간 다자 협의체를 다수 만들어 이를 네트워크화 하는 구상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번 회담으로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군사동맹),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협의체), 한·미·일, 미·일·필리핀 등 핵심 협의체에 모두 참여하는 상수가 됐다. 반면 한국은 한·미·일 협력체에만 참여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적어도 당분간 일본의 역할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크로닌 석좌는 “일본의 오커스 가입이 논의되겠지만, 오커스의 핵심인 핵추진 잠수함 공여(필라1)가 아닌 첨단 기술 개발(필라2)에 국한되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맥스웰 부대표는 “격자형 구조가 효과를 내려면 일본 이외의 다른 국가도 필요하다”며 “오커스는 물론 쿼드에도 한국이 가입해야 안보가 강화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한국의 추가 가입이 이어질 거란 관측이다.
“韓, 최소한 G7 영구 게스트 돼야”
스나이더 교수는 더 나아가 “만약 한국 스스로 오커스 필라2가 유용성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가입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의 위치라면 오커스에 앞서 G8(주요 8개국) 멤버, 또는 최소한 G7의 영구 게스트가 돼야 한다”며 “미국은 경제·군사력 등 모든 면에서 한국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스나이더 교수는 또 “미국이 전제하는 한·일 관계 개선은 사실 한국의 일방적 노력으로 이뤄졌다”며 “총선에서 여당이 패하면서 한국 내에서 대(對)일본 정책에 대한 비판이 강화될 것”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과거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일본의 총리가 (피해국인) 한국·필리핀과의 협력을 논하면서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미래를 위한 중요한 기회를 놓친 큰 실수이자 비극”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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