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산수화 보는 듯한 내성천, 채 상병도 품다
[정수근 기자]
▲ 내성천 회룡포 직상류의 왕버들 군락지. 왕버들 갤러리가 펼쳐진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내성천 회룡포 직상류의 왕버들 군락지. 왕버들 갤러리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20일, 내성천을 찾았습니다. 왕버들이 물이 오르는 이 무렵 강은 무척 아름답기에, 그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환경단체 활동가로서 지난 2010년부터 그간 내성천을 숱하게 오고간 이유가 바로 내성천이 선사해주는 이같은 아름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바람은 안타깝게도 이곳 내성천에서 명을 달리한 해병대 채 상병의 명복을 그 현장에서 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목적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마침 청송의 '나무닭연구소'의 예술가들이 내성천 답사 동행을 요청해 함께 발길을 옮겼습니다. 첫 만남은 내성천의 거의 마지막 구간인 회룡포 그 안 마을 주차장에서 있었습니다.
만남의 장소에서 차를 타고 2㎞ 상류 이동한 뒤 회룡포 하류로 강을 따라 걸어내려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마침 비를 만났습니다. 올봄 유난히 많은 비가 내리고 있는데 그로 인해서 내성천의 강물도 많이 불어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신발도 벗고 맨발에 옷을 입은 채 그대로 강에 들어갔겠지만, 날이 꽤 살살해 차에 실려 있던 가슴장화가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 내성천 회룡포 직상류의 왕버들 군락지. 왕버들 갤러리가 풍성하게도 펼쳐진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그러나 어렵게 들어간 내성천은 그 힘겨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해주었습니다. 비가 와서 비록 그 빛이 조금 바래긴 했지만, 연초록을 가득 머금은 물 오른 왕버들 풍광은 내성천 경관의 백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초록이 조금 더 짙어졌지만 한주 더 일찍 왔더라면 왕버들 특유의 연초록빛 아름다움이 내성천 모래밭 위로 고스란히 펼쳐지는 장관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날도 그리 나쁘진 않았습니다. 초록의 왕버들과 모래톱 위를 스치듯 흘러가는 내성천 물길이 만들어내는 풍광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 산지와 이어진 강엔 모래톱이 그득하고 그 위를 맑은 강물이 흘러내려간다. 전형적인 내성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예천 우래교 구간의 내성천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그런데 이런 아름다움 풍광도 이제는 볼 수가 없습니다. 바로 4대강사업으로 들어선 영주댐 때문입니다. 영주댐 공식 준공은 지난해였지만 댐 본체가 완공된 것은 벌써 2016년입니다. 이때부터 물을 채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로 인한 내성천의 변화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습니다.
영주댐으로 망가져가는 내성천
▲ 내성천이 국가명승지 선몽대 상류 모래톱의 급격한 변화 모습. 이것이 영주댐으로 인한 내성천의 심각한 변화 중 하나이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아름다운 해변 백사장을 방불케하던 모래톱은 풀과 버드나무들로 뒤덮이기 시작해 내성천의 고유의 경관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하천 고유의 모습 중 하나인 모래강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던 내성천이 그 원형을 급격히 잃어온 것입니다.
▲ 길게 펼쳐진 왕버들 군락. 왕버들 갤러리가 펼져진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그 모습을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이자 식물사회학자이자 생태학자인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는 '왕버들 갤러리'로 표현합니다. 이곳 회룡포 직상류엔 '왕버들 화랑'이 길게 펼쳐진 것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이맘때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기록하기 위해 이날 예술가들과 이곳을 찾았습니다.
▲ 2008년 국토해양부로부터 전국의 아름다운 하천 중 최우수 하천으로 선정된 내성천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국가가 선정한 최우수 하천이 국가가 저지른 잘못된 사업으로 인해 그 원형을 급격히 잃어가고, 강 생태계 또한 망가져 가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을까요.
▲ 녹조라떼 배양장이 돼버린 영주댐. 이런 물로 낙동강 수질 개선은 말도 안되는 소리로 영주댐은 목적을 상실한 유령댐으로 전락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문제는 1조1천억원의 국민혈세를 투입한 이 엉터리 댐 때문에 529세대가 수몰되고 국토해양부 선정 최우수 하천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의 상실은 1조1천억원을 능가하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비록 많은 돈을 들였지만 이 엉터리 댐을 하루빨리 철거해 내성천이라도 되살려 내야 한다는 여론이 드높습니다.
▲ 고인이 떠난 강변에 놓인, 해군 예비역 연대에서 놓고 간 추모 화환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이날 답사 중에 강변에서 해병대 예비역 연대에서 놓고 간 채상병 추모 화환을 만났습니다. 지난해 여름, 채 상병은 이곳 내성천에서 명을 달리했습니다. 평소 강은 아름답고 평화롭기 그지없지만 물이 불어난 강은 정말 무섭습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런 현장엘 "구명조끼도 안 입히고 어떻게 사람을 밀어넣을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명령권자는 제대로 된 책임을 지고 있지 않는 이 불의(不義)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한 가지 위안은 우리 하천의 원형을 간직한 저 아름다운 내성천이 채 상병의 넋을 잘 품어줄 것이란 믿음입니다.
▲ 고인의 넋을 추모하며 묵념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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