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토크]누가 그 많은 인터넷 케이블을 다 지었을까
민간 기업들이 해저케이블 절반 장악
'평화로운 시대', 민간 투자 붐 이끌어
영국 파운드와 미국 달러화 '통화 쌍(currency pair)'은 '케이블(cable)'이라고 불립니다. 해저 케이블의 그 케이블이 맞습니다. 1850년대에 두 나라 사이에 깔린 통신선을 통해 양국 투자자들은 서로의 화폐를 거래할 수 있게 됐고, 케이블은 파운드/달러 통화 쌍을 의미하는 외환업계의 은어가 됐지요.
19세기에 발명된 해저 케이블은 이제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데이터를 옮기는 핵심 인프라가 됐습니다. 우리가 향유하는 인터넷이 통째로 바닷속에 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런 해저 케이블은 대체 누가 다 지었을까요?
지구 둘레 30바퀴 감을 수 있는 해저 케이블
오늘날 지구에 깔린 해저 케이블의 총 길이는 총 75만마일(120만7008㎞)입니다. 지구 둘레를 거의 30번 감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심지어 해저 케이블은 지금도 빠른 속도로 증식 중입니다.
이달 11일(현지시간) 구글은 일본과 미국을 잇는 해저 인터넷 선 사업에 10억달러(약 1조38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일본 열도에서 괌과 하와이를 경유해 미국까지 도달하는 케이블이 두 개나 깔릴 예정입니다. 각각 적어도 수천㎞짜리겠지요.
흔히 우리의 인터넷을 데이터센터, 즉 클라우드에 기반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사실 인터넷의 진정한 '척추'는 해저 케이블입니다. 케이블을 통해 데이터가 옮겨 다님으로써 전 세계에 깔린 데이터센터가 작동할 수 있는 겁니다.
4대 빅테크, 전 세계 케이블 50% 장악
이렇다 보니 해저 케이블은 광통신의 시대가 열렸던 2000년대 초반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또 해저 케이블 대다수를 투자하고 소유한 건 정부나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 기업들입니다. 당장 1999년 당시 국제 해저 케이블 수와 2020년의 케이블을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질 겁니다.
인터넷 시대의 개막과 함께 막대한 수혜를 입은 기업들, 즉 구글·메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이 케이블 투자의 뒤에 있습니다. 해저 케이블 시장 분석 기관 '텔레지오그래피' 데이터를 보면, 전 세계 해저 케이블 대역폭 중 약 절반은 앞서 언급한 빅테크 네 기업이 소유했거나 대여 중입니다.
'평화로운 시대'가 민간 케이블 투자 붐 이끌었다
세계 은행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국가총생산(GDP)의 15%는 인터넷에 기반합니다. 2020년 기준 세계 경제는 85조달러(약 11경7461조원)에 달했으므로, 적어도 12조7500억달러(약 1경7619조원)가 해저 케이블에 달린 셈입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인프라 중 절반이 단 네 개의 민간 기업 소유·임대 자산이란 건 약간 꺼림칙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민간 기업의 해저 케이블 건설 프로젝트가 이토록 빠르게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2000~2020년이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특정한 국가 및 조직이 해저 케이블을 전략 자산으로 인지하고 자국 영해 내 설치를 규제했다면 이런 초고속 성장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인터넷 경제의 발달도 더뎠겠지요.
위험해지는 세계…인터넷 황금기도 위협할까
하지만 이제 해저 케이블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이를 악용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구의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이미 '해저 케이블 안보'를 공공연히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실 러시아는 예전부터 '특수목적 잠수함'이라는 해저 작전용 원자력 잠수함을 운용해 왔습니다. 이 잠수함은 심해 탐사선과 로봇을 싣고 잠수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해저 케이블이나 가스 파이프도 절단할 수 있습니다. 영국, 노르웨이 등 해저 케이블과 파이프에 국가 경제를 의존하는 국가들도 대비를 시작한 참입니다.
테러리스트의 위협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홍해 지역에서 민간 상선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이어가고 있는 예멘의 이슬람 반군 '후티'가 해저 케이블을 타깃으로 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여러 차례 나온 바 있습니다. 실제 지난달 홍해 지역의 통신·인터넷용 케이블 3개가 절단된 채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왔고, 후티가 공격의 주동자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초고속 인터넷의 발전 뒤에는 빅테크의 탄생, 글로벌 정세의 안정화, 이를 통한 각국의 (암묵적인) 공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세계 각국의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고, 누군가는 해저 케이블을 '공공 자산'이 아닌 잠재적 위협 수단으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여기저기서 불타오르기 시작한 전쟁의 화마가 20년간 이어져 온 디지털 시대의 황금기를 끝장낼 수도 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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