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는 불시에 온다…예측 말고 대비하라 [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2024. 4. 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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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블랙스완

저자는 ‘나심 탈레브’다.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금융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뒤, 학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크레디트스위스UBS, BNP파리바, CME 등에서 외환, 파생상품 등을 거래하는 트레이더로 일했다.

이후 학계로 전향, 현재 교수와 작가로 활동 중이다. 탈레브는 현대 경제가 정교하고 안정적이라는 인식을 정면 비판하며 금융 시스템의 허점을 지적, 유명세를 탔다. 정교한 모델과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세상을 모델로 축약하고 환원시키려는 현대 사회에서, 탈레브는 다소 이질적인 주장을 펼쳤다. 계속해서 복잡해져만 가는 사회에서, 정교한 모델을 도구로 ‘블랙스완’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해 사회 전체에 재앙을 불러오는 이들을 탈레브는 비난한다.

그는 단순히 목소리만 내지 않고 금융 경제는 물론 세상 전반의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을 분석하는 여러 저서를 남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블랙스완’이다.

책의 이름이기도 한 ‘블랙스완’, 즉 검은 백조는 가능성이 매우 낮아 일어날 리 없다고 여겨졌던 갑작스러운 사건을 가리킨다. ‘흑조 사건’이라는 용어의 어원은 그 뜻을 정확히 담아낸다. 호주 대륙이 발견되기 전, 유럽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백조는 흰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호주에서 검은 백조가 발견되자 ‘모든 백조는 흰색이다’라는 명제는 거짓이 됐다. 오랜 기간 줄곧 받아들여지던 믿음이 단 하나의 반례로 깨어진 것이다.

나심 탈레브
자주 일어나지 않는 사건들이 세상을 바꾼다

‘블랙스완’은 희박한 발생 확률 탓에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다가도, 일단 발생하기만 하면 평범하게 하루하루 반복되던 세상을 통째로 바꿔놓는다. 인간은 언제나 통용돼왔던 법칙, 시스템 혹은 세계관에 따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블랙스완’이 발생하면 그동안의 시스템은 모두 무너지고 세상은 급변한다.

블랙스완이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분야가 세계 금융 시스템과 경제다. 금융, 경제 시스템은 평범한 사람들은 감을 잡을 수조차 없는 복잡한 수리 통계적 계산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은 세상이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인다고 말하며, 더 나아가 미래까지 내다보려 한다. 그러나 정규분포에 기반한 모델에 세상을 담아내려는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하기 마련이다. 평균에 근접한, 보통의 나날을 겪는 것 같다가도 극단적인 사건이 역사를 좌우한다. 1929년의 세계 대공황이나 2008년 금융위기는 물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나 인터넷 발명과 같은 사건들은 예측을 불허했을 뿐 아니라 세상을 바꿔놨다.

현실이 이런데도, 대다수의 경제학자와 금융 전문가들은 고집스럽게 통계적 모델을 이용해 세상을, 내일을 예측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블랙스완’이 발생하면 격변이 일어날 것임에도 확률이 낮다며 가능성을 무시하려고 한다. 반면 탈레브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전문가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안일하게 통계적 모델에 기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지적한다. 그는 수리통계학을 전공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 매매를 통해 큰돈을 벌었음에도 오히려 통계적 예측의 어려움과 인간의 무지함을 강조한다.

탈레브는 특히 금융 산업을 강하게 비판했다. 금융업에서 사용하는 위험 관리 방법에 대해 ‘안일하다’고 지적했다. 모두가 ‘위기는 없다’고 외칠 때 홀로 금융위기에 대해 경고했다. 그 결과 2000년대 후반 금융위기 당시, 모두가 돈을 잃을 때 그는 큰 수익을 얻었다. 위기가 발생할 것을 예측한 덕분이다.

그는 위기를 관리하는 데 집중하는 것보다, 위기에 강한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블랙스완’에 강한 사회, 즉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에도 견딜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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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찬사,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자전적인 이야기와 단편 우화들을 빌어 쓰인 ‘블랙스완’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36주 동안 올라 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선데이 타임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책 12권에 ‘블랙스완’을 선정했으며,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을 비롯한 많은 학자가 찬사를 보냈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출간 1년 후인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며 전 세계인이 ‘블랙스완’을 몸으로 체감했다.

탈레브의 글을 읽을 때 놓칠 수 없는 매우 큰 특징은 그가 다른 학자나 이론, 혹은 학문 전체에 때때로 매우 비판적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경계를 당부했던 비현실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논리적 무오류성을 추구하는 실용성 없는 이론들, 통계학적 분석을 통한 현실 기망, 낮은 확률을 근거로 극도의 위험을 무시하는 의사 결정권자들을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신랄하게 공격한다. 이 탓에 강한 반발을 사거나 살해 위협을 받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의 의견을 개진하며 ‘블랙스완’을 포함한 5권의 ‘인세르토’ 시리즈를 집필했다.

자주 일어나지 않는 사건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자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보통’의 범위를 벗어나는 극단적인 현상이 우리의 기대보다 더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만 명을 재산 순서대로 줄을 세운다고 했을 때, 아마존 CEO인 제프 베이조스가 무리에 들어 있다면 그 한 사람의 영향으로 평균은 크게 증가할 테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재산을 다 합친 것보다 베이조스의 재산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우리는 평범의 세계를 상정하고, 그 안에서 살고 싶어 하지만 극단의 세계에 삶의 더 많은 부분이 걸쳐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극단적인 영향을 끼치는, 희박한 가능성의 돌발 사건을 대비한다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위험에 노출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까? 탈레브는 이에 대해 ‘아니오’라고 강조한다. 동시에 인간이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점을 지적한다.

극단적인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탈레브가 제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가 아는 것이 아닌 모르는 것으로 초점을 돌리는 게 우선이라는 것.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위험은 반드시 존재한다. 이를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뜨는 것만으로도 블랙스완에 휘말리는 일을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더해, 우리는 통계적 방법론과 좁은 시야, 철저한 논리성에만 집착하는 이론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특히나 극단의 왕국에서 정교한 예측에 의존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탈레브는 인간이 확률을 예측하는 것에는 약하지만, 그 결과는 비교적 정확히 그려낼 수 있음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에 대지진이 날 확률을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지진이 났을 때 얼마나 큰 피해가 발생할지는 예측해볼 수 있다. 결정권자들은 극단적인 상황의 확률이 아닌 발생할 시의 피해를 바탕으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 덧붙여, 극단적인 위험에 대비하는 한편 ‘긍정적인’ 블랙스완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손실은 작게 한정되지만 일단 성공한다면 대박을 달성할 수 있는 벤처 투자 기회와 같은 사건들 말이다.

‘블랙스완’에서 탈레브는 이론 체계의 논리적 무오류성에 집착하며 통계적 확률이 말하는 안전을 위안 삼는 금융 산업의 위험 관리 방식을 비판한다. 금융과 경제 시스템에 몸담고 있거나 이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세계관에 반드시 ‘블랙스완’의 가능성을 새겨야겠지만, 금융 경제와 거리가 먼 보통의 사람도 이 책에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경제학 박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5호 (2024.04.17~2024.04.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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