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최대 1000명 접었지만…여전히 절박한 현장

김성일 2024. 4. 2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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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 사태 해결이 요원한 가운데 서울의 한 대학병원이 환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정부가 물러섰다. 의과대학 증원 규모 ‘2000명’을 내려놨다. 내년도 입시에서 의대 정원의 증원분을 50~100% 범위 안에서 각 대학이 조정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의사단체는 성에 안 찬다. 여전히 정부 증원책의 ‘원점 재검토’를 대화 전제로 내세우는 가운데 의료공백에 따른 의료진과 환자의 상황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 정부 “증원 자율 조정”…의사들은 냉담

19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한 뒤 가진 특별 브리핑에서 “의대생을 적극 보호하고 의대 교육이 정상화돼 의료 현장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실마리를 마련하고자 결단을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최근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곳은 증원 인원의 50~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했다. 해당 대학은 대입 전형 시행계획을 변경한다. 이어 허용 범위 내 모집 인원을 4월 말까지 결정한다. 이에 따라 2025학년도 증원 규모는 당초 예정됐던 2000명에서 최소 1000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충남대·충북대·제주대 등 6개 거점 비수도권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하면서 이뤄졌다. 한 총리는 “의료계의 단일화된 대안 제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민과 환자의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여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사단체는 “원점 재검토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차기 회장은 “의협이 움직일 만한 사안이 아니다”라며 “국립대 총장들이 증원 뒤 의학교육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할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전공의들도 고개를 내저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직 전공의는 “여론전을 위한 기망 행위에 불과하다”면서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일 전공의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전성모병원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씨는 ‘증원 원점 재검토’가 대화와 병원 복귀의 선행 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류옥씨는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행정부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전문가와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간청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의협은 정부가 의대 증원 등 의료개혁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대통령 직속 사회적 협의체인 ‘의료개혁 특별위원회’(특위)에도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정부위원, 민간위원을 포함해 총 27명으로 구성될 특위는 다음주 출범한다. 의협은 정부와 의사단체가 일대일로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의료현장 한계 직면…진료 축소에 의료진 추가이탈 조짐도 

정부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은 지난 2월19일 이후 잇따라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이탈했다. 의료공백은 두 달을 넘겨 이어진다. 앞서 정부가 필수의료 확충 등이 시급한 상황에서 ‘원점 재검토’나 ‘증원 유예’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표명한 만큼 사태 해결점은 다시 안갯속에 갇혔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A교수는 “만약 이번 사태가 4월을 넘긴다면 전공의들의 복귀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A교수는 “그간 전공의들이 떠난 자리를 대신해 피로가 극심해졌음에도 버텨왔는데, 사태가 더 길어질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며 “병원에 남아 연속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교수들 사이에서 추가 이탈 조짐이 보인다”고 짚었다.

또 다른 대학병원의 B교수는 “더 이상 중증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B교수는 “야간 당직 근무 뒤에도 외래진료, 수술을 도맡고 있다”면서 “정부의 비상진료체계로는 버티기 어렵다”고 했다. 정부는 공중보건의와 진료지원(PA) 간호사를 현장에 배치하는 등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있지만 의료공백을 메우기엔 한계가 있다.  

결국 20개 의대가 함께하는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19일 온라인 총회를 열고 신규 환자 진료를 축소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의대 교수들이 정신적, 신체적 한계에 부딪혀 외래와 입원 환자에 대한 진료를 재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료 축소 외에도 대학병원 진료가 더 힘들어질 이유는 또 있다. 오는 25일은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는 날로, 민법상 사직 의사를 밝힌 뒤 한 달이 지나면 자동으로 사직 처리가 될 수 있다. 전의비는 “정부의 적절한 조치가 없을 경우 예정대로 25일부터 교수 사직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의료공백에 따른 피해는 환자들이 떠안는다. 간신히 잡은 수술 일정마저 언제 연기될지 모를 일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료공백이 시작된 2월19일부터 4월18일까지 환자 피해지원 신고센터는 2,421건에 달하는 상담을 진행했다. 수술·입원 지연, 진료 차질, 진료 거절 등 피해신고는 681건으로 집계됐다. 환자단체들은 “입원은 물론 위급한 항암치료나 수술 등이 연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의사들의 복귀를 촉구하고 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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