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개입'에 강달러 급한 불 껐지만…'국민연금 카드' 꺼내나
치솟던 환율이 외환 당국의 잇따른 ‘구두(口頭) 개입’으로 진정하는 모양새다. 당장 급한 불길은 잡았지만, 강(强)달러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라 국민연금공단과 맺은 외환 스와프를 활용하는 등 간접 개입이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며칠 새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이 잇따랐다. 지난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이 1400원대까지 떨어지는(환율은 상승) 등 ‘심리적 지지선’을 위협하면서다. 이날 외환 당국은 “특별한 경계감을 가지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지나친 외환시장 쏠림 현상은 우리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며 1년 7개월 만에 구두 개입했다.
이어 17일(이하 현지시간)에는 한국·미국·일본 재무장관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만나 “최근 원화와 엔화의 급격한 평가 절하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심각한 우려를 인지했다(acknowledging serious concerns)”며 “우리는 기존 주요 20개국(G20)의 약속에 따라 외환시장 진전 상황에 대해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는 내용의 공동 선언문을 채택했다. 직접 당사자가 아닌 미국까지 나서 구두 개입을 거들었다. 선언문 채택 소식이 알려진 뒤 달러당 원화값은 1370원대로 진정됐다.
19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소식이 나오자 달러 당 원화값이 잠시 1390원대로 떨어졌지만, 이내 1380원대로 돌아갔다. 잇단 구두 개입으로 일단 한숨을 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가(假)수요와 투기심리가 환율 상승을 부추겨 악화하는 것을 외환 당국이 구두 개입해 사전 차단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향후 환율 경로에 악재가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구두 경고로 꺾이지 않을 만큼 강달러가 장기화할 전망이다. 최근 미국이 경기 호황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기준 금리 인하 스케줄을 기존보다 늦출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중동 사태’가 격화할수록 달러 선호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
구두 개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단적으로 2022년 환율이 급등했을 당시 윤석열 대통령까지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효과가 미약했고, 결국 외환 당국이 달러를 파는 식으로 실제 개입한 뒤에야 진정됐다. 일본도 최근 엔화 가치가 추락할 때마다 강력한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한 외환 전문가는 “구두 개입을 남발하거나, 구두 개입만 하고 정부가 실제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경우 ‘양치기 소년’처럼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환 당국이 실제 달러를 사고파는 식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건 최후 수단이다. 미국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리스크(위험)가 있다. 구두 개입 효과가 떨어질 경우 ‘보조 수단’을 활용한 간접 개입이 주목받는 이유다.
대표적인 간접 개입이 국민연금과 맺은 외환 스와프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2022년 환율 급등을 겪은 뒤 지난해 4월 국민연금공단과 350억 달러 한도 내에서 외환 스와프 거래를 하기로 했다. 주식 시장 ‘큰 손’인 국민연금이 달러로 해외 주식을 사들이는 대신 외환 당국이 국민연금에 달러를 주고, 원화를 받는 식이다. 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줄면 환율 상승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외환 당국의 환율 방어 조치는 범위가 넓고, 종류도 다양하다”면서도 “다만 조치가 알려질 경우 시장을 왜곡할 수 있어 공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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