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하나만 뽑으려 했는데…‘웃음 담뿍’에 멜로도 3색 [홍종선의 명장면⑩]
‘눈물의 여왕’ 보며 왜 이렇게 웃고 있나 했더니…
코믹도 멜로도 되는 배우들 덕에 깔깔 대다 달콤~
‘눈물의 여왕’은 마치 성경처럼 고난 극복기다. 주인공이 재벌이다 보니, 또 인생 밑바닥으로 추락한 이 모두가 문제 해결에 나서지는 않다 보니,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넋 나간 이들이 대다수다 보니 당장은 고난 체험기로 보이지만 결국은 극복해 낼 것이다.
하긴 재벌 걱정할 일이 뭐 있겠는가마는, 그래서, 그걸 아는 박지은 작가는 모슬희+윤은성 VS 백현우+홍해인가(家)의 치열하고도 냉혹한 대결로 그리지 않는다. 가벼운 터치로 코믹 요소도 적절히 배치하고, ‘달달한’ 멜로도 담뿍 담았다.
코믹을 담당하는 이들은 주로 용두리에 있다. 백현우 부모와 남매,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은 어디서 이렇게 연기 잘하는 이들을 잘도 모아놨나 싶은 감탄을 안긴다. 배우 전배수, 황영희, 김도현, 장윤주, 김영민, 박정표, 심우성, 박성연, 이수지, 이지혜는 참으로 구수하고도 차진 웃음을 준다. 드라마의 긴장도가 높아질 때쯤, 재벌가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카메라를 용두리로 돌리면 꽉 막힌 고구마가 쑥 내려가다 못해 용두리 사람들을 보며 자꾸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재벌가에도 있다. 배우 김정난은 치고 나가는 능동적 인물 홍범자 역으로, 곽동연은 당해도 상대방 걱정부터 하는 수동적 순둥이 홍수철이 되어 눈물 콧물 빼는 웃음을 준다. 배우 나영희가 연기하는 고고한 사모님 김선화도 용두리에 가더니 코믹 연기를 뽑아 들었다, ‘옛날 배우’들은 역시 어떤 연기를 맡겨도 가능하다.
재벌가 언저리에도 있으니 그레이스 고 역의 배우 김주령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구경꾼이 아니라 굿판을 벌이게 하는 모사꾼을 시시각각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얄밉고도 귀엽게 연기하며 시청자를 피식피식 웃게 한다. 홍해인 곁을 지키는 의리파 나 비서는 마치 정보국 요원마냥 능력도 출중한데, 배우 윤보미는 자신이 모시는 상사 해인에게 입바른 소리도 지를 줄 알고 때로는 엄마처럼 토닥이며 빙그레 웃음 짓게 한다. 백현우의 친구이자 변호사 김양기를 맡은 문태유는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서도 유연석 옆에서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이더니 이번에도 김수현과 대등한 에너지로 친구의 적들을 향해 잘도 깐족거리며 고소한 웃음을 안긴다.
사실 배우 한 명 한 명의 연기를 얘기하자면 원고지 100매가 넘어가도 모자랄 만큼, ‘눈물의 여왕’ 출연진들은 물 샐 틈 없이 열연에 호연을 했다. 악역을 맡은 이미숙(30여 년의 계획과 실행으로 재벌가를 졸지에 사지로 내몬 모슬희 역), 박성훈(모슬희의 아들이자 내부의 적 윤은성 역)이 정말 표독스럽고 악랄해 보인다는 건 그만큼 연기가 좋다는 방증이다.
재벌 퀸즈그룹의 수장 홍만대 회장을 연기한 김갑수는 생을 마감하는 장면의 표정과 머금은 눈물만으로도 길게 말할 바 없이 명배우다. 홍대만의 장남,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 밑에서 무기력하게만 살아온 홍범준 역의 정진영은 부친의 사망과 딸의 불치병 앞에 출연의 이유를 보여준다.
멜로는 여러 인물이 크고 작게 보여주지만, 크게 세 커플이 ‘눈물의 여왕’을 멜로드라마로 이름값 하게 한다.
먼저 이제 막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풋풋한 커플, 범자(김정난 분)와 영송(김영민 분)이다. 모슬희도 무섭지 않은 퀸즈가 유일의 불도저 홍범자지만, 이름에도 호랑이가 있지만, 영송 앞에서는 다소곳해진다. 영송에게서 장국영을 겹쳐 발견한 때부터 볼 빨간 아가씨가 됐다. 엄마 찾아줘서 고맙다고 얼싸안는 영송의 손길을 휴머니즘이 아니라 멜로로 느낀다. 배우 김정난의 삐죽거리는 입술 하나, 치켜뜨는 눈꼬리 하나가 영송 앞에만 서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배우 김영민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이미 장국영이었다. 중국에서 잘 통할 것 같은 미남자의 면모를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장영우·김희원 감독은 대놓고 아련한 CF 같은 ‘영송 화보’를 찍는다. 미모만으로 멜로 주인공이 아니다. 내가 먹고살 만큼만 농사짓고 남는 건 이웃이나 어려운 이와 나누는 일상의 철학자다. 마음도 얼굴도 잘생긴 영송이 김영민의 선한 눈빛과 나긋한 말투에 기대 빚어졌다.
두 번째 짝은 순애보 자체, 홍수철(곽동연 분)과 천다혜(이주빈 분) 부부다. 순둥이 재벌 3세 등쳐서 인생 팔자 고치려 했던 다혜, 비자금 챙기고 금불상 챙겨 미국으로 떠나는 데 성공까지 했건만, 자꾸만 따스했던 수철이 생각나고 횡령 누명 쓰고 감옥 갈 남편에게 마음이 쓰인다. 수철은 믿었던 아내에게 제대로 배신당했건만, 원망과 비난은커녕 그저 살아 있는 건지만 알고 싶다.
배우 곽동연은 ‘눈물의 여왕’ 속 눈물의 왕이다. 멜로 연기의 기본은 눈물이라는 듯 눈시울이 빨개지며 잘도 쏟아낸다. 상대적으로 남자배우들이 눈물 연기에 덜 능한데, 곽동연은 진심 홍수철이 되어 황망했다 오열했다 굳세고 단단해졌다. 내가 기저귀 갈고 내가 안아 재웠으니 “내 아들”이라고 말할 줄 아는 부성, 사랑은 남자를 강하게 한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연기다. 배우 이주빈은 강한 척 못된 척하나 수철만큼이나 맹하고 순한 다혜를 예뻐 보이게 만들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철이 사랑해 마지않고 다혜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게 하는 매력이 이주빈에게서 나왔다.
세 번째 주인공은 당연이 백♡홍 커플이다. 남들은 다 부러워할 재벌가 사위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으려던 그때, 백현우(김수현 분)는 아내 홍해인(김지원 분)가 희귀성 뇌종양에 걸렸음을 듣게 된다. 위기의 순간에 친구를 알아본다고, 길고 길어 멀고 먼 식탁 길이만큼이나 멀어졌던 부부는 수면 아래 잠들어있던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는다. 여기에 모슬희와 윤은성의 계략에 길바닥으로 나앉자 원상회복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생긴 두 사람은 서로 한 번도 미워한 적 없고 계속 사랑해 왔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사랑에 늦은… 때란 없다. 어제 사랑했던 걸 사랑이라 하지 않고, 내일 사랑하게 될지 모르는 이들을 두고 연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랑은 현재형, ‘오늘의 일’이라는 것을 홍해인의 희귀병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무엇을 해서든 연인을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백현우의 노력이 오늘을 지킨다.
배우 김수현은 깎아놓은 밤톨 같은 외모로 해인을 지키는 철옹성 현우를 멋지게 연기했다. 뽀얀 피부와 멀끔한 수트 핏에 대한민국 뭇 여성들이 백현우에 설레고 김수현에 열광한다. 배우 김지원은 때로 도도하고 차갑게 때로 불같이 뜨겁게 감정을 표출하는 해인을 내내 사랑스럽게 표현했다. 완벽한 재벌가 3세 경영인과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허당 공주’를 자연스레 오가는 연기력에 남자 시청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반했다.
김지원과 김수현 두 배우는 진지하게 대립할 때도 앙증맞게 꽁냥꽁냥 할 때도 시청자를 설레게 한다. 마치 연인 사이에선 격렬함에도 평안함에도 잊지 않고 ‘사랑의 얼굴’이 깃들어야 한다는 듯이.
미처 소개하지 못한 배우까지, ‘눈물의 여왕’(연출 장영우·김희원, 극본 박지은, 제작 스튜디오드래곤·문화창고·쇼러너스) 모든 배우의 찰떡 캐릭터 연기로 탄생한 명장면을 볼 수 있는 회차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우 4회분, 오늘 그중 하나 13회가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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