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리면 이런 느낌? 몸이 휘청거려도 아름다웠다

백종인 2024. 4. 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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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년의 역사 지닌 미국 텍사스주 과달루페산맥 국립공원

[백종인 기자]

▲ 엘캐피탄(El Capitan)이라 불리는 과달루페산맥 국립공원의 상징 자동차를 타고 과달루페산맥 국립공원을 지나 남쪽으로 약 10km를 가면 만날 수 있는 위풍당당한 엘캐피탄(El Capitan)은 우리 말로 장군바위다.
ⓒ 백종인
 과달루페산맥 국립공원(Guadalupe Mountains National Park)은 우리가 5일 동안 묵었던 뉴멕시코주 칼즈배드에서 남쪽을 향해 자동차로 약 80km를 달려야 나타난다. 뉴멕시코주에서 텍사스주로 주 경계를 넘어야 하지만, 칼즈배드는 과달루페산맥 국립공원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이고 휘발유를 넣을 수 있는 곳이다.
62/180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눈앞에 하늘이 활짝 열린 느낌이다. 아니, 하늘이 열렸다기보다 돔형의 거대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그야말로 사방팔방 아무것도 없는 메마른 평야만 보인다. 그곳 서쪽에 과달루페산맥이 성벽처럼 남북으로 길게 우뚝 솟아 있다. 
 
▲ 뉴멕시코주의 허허벌판 뉴멕시코주에서 텍사스주로 주 경계를 넘으면서 창밖을 보면사방팔방 아무것도 없는 메마른 평야만 보인다.
ⓒ 백종인
 과달루페산맥 국립공원에는 공원을 관통하는 도로가 없다. 따라서 공원을 즐기려면 주차장에 차를 놓고 짧거나 긴 트레일을 두 발로 오르내려야 한다. 약 13.5 km에 달하는, 텍사스에서 가장 높은 과달루페 정상(Guadalupe Peak: 2,667m)에 오르는 트레일과 6.2km의 악마의 회랑(Devil's Hall) 트레일 등을 비롯한 길고 짧은 그리고 외떨어지고 조용한 트레일이 여러 개 있다. 

과달루페산맥은 지질학적으로 고생대 페름기 시대에 속하는데, 페름기 시대란 약 3억 년 전에 시작하여 2억 5천만 년 전까지 이르는 시기다. 과달루페산맥은 숫자만 보아도 어지러운, 멀고 먼 옛적에 생성된 페름기 화석 암초로 이루어진 산인 셈이다. 1966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나 하이킹 이외에는 특별한 야외 활동을 할 수 없어서인지 미국 전체 63개 국립공원 중 12번째로 방문객이 적은 곳이다.

화이트샌즈 국립공원에서 이색적인 새하얀 트레일을 걸은 후,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긴장되고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과달루페 정상에 올랐다. 우리가 방문했던 3월 말은 얼었던 산봉우리의 눈은 녹고 강렬한 태양이 뜨거워지기 전이라 과달루페산맥을 오르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였다. 여기저기서 힘든 산이라고, 체력 안배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터라 점심용 샌드위치를 비롯한 물과 간식을 넉넉히 챙겼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오른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산이었다. 거리는 백무동을 거쳐 천왕봉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지리산 등반과 비슷하나 올라가는 높이는 지리산보다 500m 정도 낮다. 다만, 산이 나무 없이 노출되어 있고 자갈 바위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거칠고 메마른 산길에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세다는 점이 조금 더 힘들다고 할 수 있겠다.
 
 깊은 협곡 위로 보이는 바위로 이루어진 웅장한 산맥과 그 사이 계곡 넘어 보이는 평야와 하늘이 맞닿은 지평선이 까마득하다.
ⓒ 백종인
 과달루페 정상 코스는 파인 스프링스 트레일헤드(Pine Springs Trailhead)에서 시작한다. 편도 6.4 km 중 처음 2km 정도는 지그재그 오르막길로 가파르고 메마른 돌길이다. 가장 힘든 구간이기도 하다. 힘든 구간이 거의 끝나가는 지점에서 잠깐 숨을 고르며 산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깊은 협곡 위로 보이는 바위로 이루어진 산세가 웅장하고 심상치 않았다. 이게 '페름기 암초이던가'라 생각하며 계곡 넘어 평야를 바라보니 오는 길에 보았던 허허벌판과 그리고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이 까마득히 보였다.
오르막길은 1km 정도 더 계속되다가 산 뒤편의 그늘진 길로 접어들며 다소 편안해졌으나 이번에는 바람이 거셌다. 계곡에서 "휙~"하며 바람이 부는데 몸이 휘청하며 바위 쪽으로 쏠렸다. 
 
▲ 과달루페 정상 과달루페 정상 (Guadalupe Peak)은 텍사스주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 백종인
 길은 끝을 모르는 듯 계속되었다. 멀리 봉우리가 보여 정상으로 착각하고 반가워하였으나 산길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가파르고 아슬아슬한 지점을 지나자 사람 소리가 들리고 정상을 가리키는 삼각뿔 모양의 표식이 나타났다. 세 시간 만에 도달한 정상이었다. 텍사스에 살아본 적은 없으나 텍사스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올라간 셈이다.
 
▲ 자갈 바위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거칠고 메마른 산길 메마른 산길은 올라가기도 힘겹지만 내려가는 길 역시 긴장된다.
ⓒ 백종인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도 잠시, 다시 하산이라는 고달픈 일정이 남아 있었다. 예전에는 하산 길이 지루하긴 했어도 등산길보다 빠르고 쉬웠으나 언제부터인가 시간도 더 걸리고 긴장되고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정상에서의 휴식 시간까지 합쳐 6시간 30분 만에 과달루페 정상 코스를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우리는 과달루페 정상 코스를 다녀왔다는 뿌듯함으로 마음속 훈장을 달 수 있었다.

이튿날 우리는 다시 파인 스프링스 트레일헤드로 나갔다. 같은 곳에서 시작하는 악마의 회랑(Devil's Hall)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협곡을 통과하는 돌이 섞여 있는 흙길 1.6km를 오르내리니 다양한 모양의 커다란 바위가 가득 찬 메마른 계곡이 나왔다. 이 지점부터 사람들은 바위를 타고 넘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비가 와서 바위가 젖으면 좀 위험하겠지만 사실 가파른 산길보다 숨도 덜 차고 두 손과 두 발로 바위를 타고 넘는 맛이 재미있는 놀이 같았다. 스틱보다 장갑이 필요한 코스였다. 
 
▲ 떡시루처럼 납작한 바위가 쌓여있는 거대한 천연 계단 여러 개의 얇은 지층으로 구성된 천연 바위 계단으로 과달루페산맥에는 이러한 바위들이 흔하게 널려 있다.
ⓒ 백종인
  
▲ 바위 계단 참 사이에 있는 작은 연못 스무 개가 넘음 직한 천연 계단을 딛고 올라가니 천연 바위 계단 사이에 자그마한 연못이 있었다.
ⓒ 백종인
 1km 정도 바위 놀이를 즐기다 보니 떡시루처럼 납작한 바위가 쌓여있는 거대한 천연 계단이 나왔다. 협곡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던 여러 개의 얇은 지층으로 구성된 천연 바위 계단이 이곳에서 절정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곳을 다른 곳인 Devil's Hall로 착각할 수 있다는 글을 읽었기에 우리는 스무 개가 넘음 직한 천연 계단을 딛고 위로 올라갔다. 바위 계단 참 사이에 있는 작은 연못에 감탄하며 규모가 작은 계단을 계속 올랐다. 드디어 얇은 지층을 켜켜이 쌓으며 높이 솟은 석회암 절벽 사이로 60m 정도의 긴 골목이 나타났다. 바닥에 거친 바위가 널려 있는 것이 이름 그대로 진짜 '악마의 회랑(Devil's Hall)이었다.

한낱 작은 해프닝
 
▲ Devil's Hall 바닥에 거친 바위가 널려 있는 것이 이름 그대로 진짜 ‘악마의 회랑(Devil's Hall)이었다
ⓒ 백종인
 이 밖에도 우리는 스미스 스프링(Smith Spring) 트레일과 메키트리크캐넌(Mckittrick Canyon) 트레일 등 비교적 평탄한 트레일 두 개를 더 걸었다. 
과달루페 정상 트레일이 있는 파인 스프링스 안내소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5분 정도를 가면 왼쪽으로 비포장 된 작은 길이 나온다. 이곳에는 만사니타(Manzanita)라는 작은 연못과 과달루페산맥에 널려있는 돌로 지은 집이 있다. 1876년, 과달루페 절벽의 건조하고 낮은 경사면 가장자리에서 물을 발견한 레이더(Rader) 형제는 여기에다 집을 짓고 소를 키웠다고 한다. 인간 역시 소량의 물만 있어도 바위틈 사이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나무나 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연못에서 시작되는 4km 정도의 트레일은 힘들지 않고 상쾌했다. 이곳에서 보기 드문 개울을 만나 손도 적셔 보았다. 
 
▲ 만사니타(Manzanita) 연못 과달루페 절벽의 건조하고 낮은 경사면 가장자리에 자리한 작은 연못
ⓒ 백종인
 메키트리크캐넌(Mckittrick Canyon) 트레일은 12km의 비교적 긴 트레일이나 경사가 별로 없어 쉽다기보다 지루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노년의 등산객들이 눈에 띄었다. 트레일은 프랫캐빈(Pratt Cabin)을 지나 그로토(Grotto)라는 오묘하게 생긴 작은 동굴과 사냥꾼들의 휴식처였던 집까지 연결된다. 그로토 주변에는 야외용 식탁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흔한 얇은 지층이 있는 돌로 식탁만이 아니라 의자까지 만든 것이 인상적이었다. 
 
▲ 메키트리크캐넌의 그로토(Groto) 메키트리크캐넌 트레일에 끝나는 지점에는 오묘하게 생긴 그로코가 있었다.
ⓒ 백종인
 이로써 사흘간의 계획했던 과달루페산맥 트레일을 무사히 마쳤다. 퍼미안리프(Permian reef) 트레일을 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과달루페 정상을 다녀왔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싶다. 사막기후로 녹색의 촉촉한 숲 대신 수억 년의 역사를 지닌 화석 암초로 이루어진 과달루페산맥은 장엄했다.

과달루페산맥 앞에서 길어야 약 이십만 년 전 세상에 나와 고작 수천 년 전부터 자연을 지배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인간은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의 아파치 인디언과 미국 군대와의 치열했던 싸움도 과달루페산맥에는 한낱 작은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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