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순규 노동자를 또 한 번 죽인 서명 대필 사건
[이향진 기자]
▲ 사문서위조 및 사문서행사 경동건설 규탄과 엄벌 촉구 기자회견 |
ⓒ 이향진 |
지난 18일 오후 2시 부산지방검찰청 앞에서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경동건설 규탄과 엄벌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은 경동건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정순규(57) 노동자의 유족과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부산운동본부, 생명안전 시민넷,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염원하는 탄원 참여 시민들이 주최했다.
고 정순규 노동자는 2019년 10월 30일 1시께 부산 남구 문현동 경동건설 리인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작업 중 비계 위로 올라갔다가 바닥으로 추락한 뒤, 이튿날 사망했다.
이후 법원은 2021년 6월 16일 정씨 산재 사망 사건 형사재판 1심에서 경동건설 관리소장과 하청업체 JM건설 권아무개 이사에게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 경동건설 안전관리책임자에게 금고 4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두 업체에 각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유족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주장하며 항소했지만, 2022년 2심 재판부는 원심을 유지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과 KBS 보도를 통해 원청과 하청 기업은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정순규씨의 서명을 허위로 작성해 1심 재판에 제출했다는 의혹이 드러났다.
고 정순규 노동자 사망 이후, 원청인 경동건설은 고인의 직접 서명했다는 '관리감독자 지정서' 서류를 법정에 제출했다. 작업장의 안전 보건 및 산업재해에 관한 제반 관리자를 현장 반장이었던 정순규씨로 지정한다는 내용을 밝히는 서류였다. 이 서류는 산업재해 과실 책임이 고인에게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서류는 하청 제이엠건설 권 이사가 임의로 작성한 서류였다. 이에 유족과 시민단체는 경찰과 검찰에 '사문서 위조' 혐의를 추가로 제기했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도 경동건설 산재 사망 사건과 사문서 위조 정황이 다뤄졌으나, 검찰은 추가로 기소하지 않았다.
▲ <시사직격>에서 방송한 관계자 인터뷰 |
ⓒ KBS |
또한, 재판 과정에서도 사문서 위조의 정황을 뒷받침하는 증언이 나왔다. 하청 제이엠건설 권 이사는 정씨 사망사건 재판 1심 공판에서 "관행상 남이 대신 안전교육 이수 서명을 해주기도 한다"고 진술했다. "대신 서명하는 것에 대해 원청 측에서 다 묵인 해주고 있었냐", "경동건설에서 이 서류를 대신 써달라고 했냐", ''안전보건교육 이수자 명단의 피해자 이름과 서명도 다른 사람이 작성했냐"라는 검사의 질문에는 모두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권 이사는 1심 재판에서 고 정순규 노동자에게 서명을 대신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진술을 했지만, 정씨에게 서류는 보여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순규씨도 원체 현장을 많이 다녔기 때문에 그런 서류가 있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2023년 5월 15일, 정씨 유가족과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부산운동본부는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경동건설과 JM건설을 고소했다. 부산 반부패 수사대는 원청과 하청 두 기업을 대상으로 '관리감독자 지정서'라는 서류를 조작한 혐의와 위조 서류를 법정에 제출한 경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2024년 1월 15일 부산 반부패수사대는 하청인 JM건설 현장소장만 기소의견으로 송치하고, 원청인 경동건설은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했다. 유가족 측은 경동건설의 사문서 위조 불송치 처분에 이의제기를 했다. 현재 사건은 부산지법 정성헌 검사에게 배당된 상태다.
▲ 고소 대리인 오민애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
ⓒ 이향진 |
이어 오 변호사는 "원하청 관계에서 암묵적으로 그래도 된다(대리 작성)는 동의가 없었다면, 하청업체에서 고인 명의의 문서를 임의로 작성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불송치 처분에 이의 신청을 해서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기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기자회견의 취지에 대해 언급했다.
▲ 기자회견에서 고 정순규 노동자의 아들 정석채씨가 발언하고 있다. |
ⓒ 이향진 |
그는 이어 "이후 부산 경찰청 반부패 수사대의 엄정한 수사를 기대했지만, 원청 경동건설은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로 옹호하고, 하청 JM건설만 송치하는 꼬리자르기식 수사로 종결됐다"며 "'불송치는 수사 결과가 무죄라고 판단되는 경우와 수사를 해도 유죄라는 혐의를 찾을 수 없는 경우뿐"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부산 반부패 수사대의 불송치 처분은 원청 현장소장의 '대신 적는 거야 그거 뭐 중요합니까? 대신 서명 다 하는 건데'라는 진술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며 "극악무도한 경동건설을 반드시 기소하고, 혐의가 인정되어 송치된 하청 또한 반드시 기소하길 촉구한다"는 말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 고 정순규씨 유가족이 탄원서를 제출하러 가고 있다. |
ⓒ 이향진 |
2020년 국정감사에서 정씨 산재 사망을 다룬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본인이 서명하지도 않은 서류에 가짜 서명을 넣어 사문서를 위조까지 한 것은 스스로 경동건설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검찰이 경동건설의 편에 서서 산재를 감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문서 위조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 기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유가족과 중대재해없는 세상만들기 부산운동본부, 생명안전 시민넷,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평택항 고 이선호 노동자의 아버지 이재훈, CJ 고 이한빛 노동자의 아버지 이용관은 1만 6700명의 시민들이 작성에 참여한 탄원서를 검찰에 전달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향진 기자의 블로그 <이향진 기자의 산재 로그온>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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