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특별한 뮤지컬…시각장애인도 볼 수 있고, 청각장애인도 듣는다

이보람 2024. 4.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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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영(45) 보들극장 대표가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배리어프리 공연에 대해 설명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이보람 기자

2010년, 어렵게 얻은 ‘KBS 아나운서’ 타이틀을 입사 5년 만에 내려놨다. 연극과 뮤지컬이 좋아서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공부하던 2012년 아나운서 경험을 살려 팟캐스트에서 ‘라디오 뮤지컬’을 선보였다.

또 한 차례 인생의 변곡점은 팟캐스트를 하던 중 찾아왔다. “공연을 보러 가기 어려운데 덕분에 이런 작품을 즐길 수 있었다”는 한 시각장애인의 후기가 마음을 흔들었다. 유명 창작 뮤지컬 ‘빨래’를 시각장애인들도 즐길 수 있는 낭독공연으로 무대에 올리며 ‘배리어프리(barrier free·무장애) 공연’을 만든 지 10년. ‘시각장애인도 볼 수 있고 청각장애인도 들을 수 있는 극장’이란 뜻의 보들극장 대표 고태영(45)씨 이야기다.

19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만난 고씨는 “맨 처음 시각장애인 배우와 작업한 가요 뮤지컬 ‘당신만이’를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배리어프리 공연이란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이나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 등이 함께 제공되는 방식의 공연을 뜻한다.

고씨는 “공연이 끝난 뒤 이를 즐긴 장애인 분들이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뮤지컬을 처음 봤다. 너무 좋았다’고 해주셨다”며 “당시 출연한 시각장애인 한 분은 장애를 얻은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는데 ‘공연을 준비하면서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해주셨다. ‘이 일을 계속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설명했다.

보들극장의 대표작인 '아빠가 사라졌다' 공연 장면. 자막과 함께 수어통역이 진행되고 있다. 자료 보들극장


고씨는 기존 작품을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직접 창작 뮤지컬도 제작했다. 보들극장의 대표작 ‘아빠가 사라졌다’다. 그는 “여러 기획·제작사에 협업 제안을 했다가 거절 당하고 기존 작품을 수정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아 아예 처음부터 장애인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실험도 시도하고 있다. 공연의 주요 소품이나 무대를 직접 만져 볼 수 있는 ‘터치투어’를 진행하거나 글자에 다양한 시각 효과를 준 ‘키네틱타이포그래피’ 영상을 무대에 올리는 식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도 준비 중이다. 함께 작업했던 시각장애인 배우 이성수 씨의 작품인 ‘전설의 국가공인 안마사’ 제작 과정에 협업하는 방식이다. 장애인인식개선 교육도 보들극장의 주요 사업 중 하나다.

고씨가 배리어프리 공연을 만들었던 지난 10년 간 장애인 인권이 많이 신장하긴 했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문화생활 사각지대에 있는 ‘문화약자’다. 지난해 6월 발표된 서울문화재단의 ‘2023년 서울시민 문화향유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민의 최근 1년간 오프라인 문화예술 관람경험률은 69.1%였으나 서울에 살고 있는 장애인은 39.6%에 그쳤다. 서울시민들은 연간 4.6회, 10만1000원을 들여 예술 작품을 관람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장애인은 1.3회·1만6000원 수준이다.

고씨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에 문화·예술활동 차별 금지 조항이 있지만 공연 분야에서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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